▲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 |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명예훼손(또는 모욕) 소송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형사사건이 그렇습니다. 조금만 비방성 발언이 나오거나 기분 나쁜 댓글이 올라오면 검찰에 고소할 생각부터 하는 것 같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서로 비방을 하다가 명예훼손을 걸어서 재판정까지 간 경우들이 있습니다. 의견을 말하기도 어려운 나라가 되어 버린 것이죠. 이번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재판정에 서게 될 것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전과자 리스트에 오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명예훼손을 그대로 방치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칼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죠. 우리의 말도 칼처럼 타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명예훼손이고 모욕입니다. 당연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또 피해자는 상처를 치유받아야 하죠. 하지만 저는 민사상의 배상이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입은 마음의 상처만큼 위자료로 보상을 받고, 가해자는 그 금액만큼 손해를 보는 것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죠. 검찰이 나서서 기소를 하고 전과자로 만드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민사재판을 제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형사 처벌이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사기나 폭력 사건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런 사건들의 경우 피해자가 범인을 잡기도 어려운 만큼 경찰이나 검찰이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또 이런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승소해서 배상판결을 받아낸다고 해도 범인이 배상금을 갚을만큼 재산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크지 않습니다. 감옥에라도 가둬두어야 사기나 폭력 같은 불법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런 불법행위는 민사와 더불어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 한국은 유난히 명예훼손과 모욕죄 소송이 많은 나라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형사처벌 소송이 러시를 이룰 전망이다. 이같은 소송러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가 있다.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는 민사상의 손배해상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유엔도 명예훼손죄는 폐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경우는 사기나 폭력과 그 특성이 상당히 다릅니다. 우선 명예훼손이든 모욕이든 누가 모욕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마음만 먹으면 가해자를 대상으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으로 장난삼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욕을 해놓고 도망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소송에 이르는 정도의 명예훼손이나 모욕행위자는 도망을 가거나 숨을 사람들이 아닐 것 같습니다. 또 웬만한 사람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에 따른 손해배상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빼돌릴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민사재판에만 맡겨 두어도 충분한 억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다 형사처벌까지 보태는 것은 지나칩니다. 형사처벌은 민사상의 손해배상 책임과 더불어 부과되기 때문입니다. 즉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징역형을 살았다 해도 여전히 피해자에게 손해배상할 책임은 남아 있다는 말입니다. 손해배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행위에 형사처벌까지 부과하는 것은 지나친 처벌이지요. 명예훼손이나 모욕이 사기나 폭력만큼 세상에 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유사회의 기본권 중의 하나가 표현의 자유 아닙니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자유입니다. 그런데 의견을 말한 것을 범죄로 처벌을 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것이죠.
사실 UN이나 OSCE(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Europe: 유럽안보협력기구) 같은 국제기관에서는 회원국들에게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 제도를 폐지하라고 권고해왔습니다. 민사재판의 대상으로만 삼으라는 것입니다. 형사처벌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나온 권고입니다. 우리나라도 그 권고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 사이의 말싸움에 검사님들까지 개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말 잘못했다고 죄인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호 프리덤팩토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