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취업비리를 둘러싸고 국민의 분노가 거세다. 연줄과 배경을 바탕으로 공공기관에 대거 채용됐다는 것에 대해 "이게 나라냐!"라고 뜻있는 젊은이들이 화를 낸다. 문제는 아랫물이 아니라 윗물이 문제다. 윗물이 흐린데는 아랫물도 흐릴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갬코더 인사(갬프, 코드, 더불어민주당)'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권력을 배경으로 공공기관에 대거 진입하는 것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취임 일성에 맞는 것일까.
한 마디로 '내로남불' 인사의 전형이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국정 철학이라고 운운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부끄러움이다. 신입사원 입사의 공정을 부르짖으면서 경영진은 그야말로 '캠코더' 낙하산의 세상이다. 공기업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최소한의 원칙도 없다. 전문성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경험칙도 없는 인사들이 줄줄이 낙점되고 있다.
'적폐 청산'이란 이름하에 과거 공기업의 채용비리를 샅샅이 먼지털듯 하고 있다. 과거 정부의 비리를 내세워 현 정부의 도덕성을 과시하고 있다. 그 마음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는 청렴인사여야 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임기가 남은 공영방송의 사장들은 모두 옷을 벗었다. 금융권을 비롯해 공기업의 사장들은 모두 '캠코더' 인사다. '캠'이든 '코'든 '더'든 하나씩은 모두 줄이 닿아 있다. 의혹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불신을 낳는다. 불신은 인사의 최대 적폐다.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도 지나치다. 전 정권은 최소한 한국항공우주산업, 코레일 등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는 해당 부문 전문가나 관련 부처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관료들을 보냈다. /사진=청와대
공기관 사장의 임명 절차는 공모(公募) → 임원추천위원회 → 공공기관운영위원회 → 장관 제청 → 대통령 임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특정인을 내정해 놓고 위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내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대통령의 임명권은 보장되어야 하며 어차피 행사할 임명권을 좀 일찍 내정단계에서 쓰는 것뿐이다. 다만 내정을 공모절차로 포장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 불씨가 된다.
첫째, 부적격 낙하산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장관은 공운위까지 거친 후보자를 대통령에 제청하는 단순 징검다리 역할만 한다. 그렇다고 임추위, 공운위 위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개별 위원이 대세를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며, 시도할 용기를 내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다. 청와대는 아예 책임이 없다. 애당초 공식적으로는 내정이란 없는 것이다. 대통령은 아름답게 포장된 절차를 거쳐 제청된 사람을 임명하는 것뿐이다. 누구도 부적격 낙하산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마음 놓고 부적격자를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내정자 결정과정도 문제다. 공기업 사장이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밀어 줄 후견인에게 인사 청탁을 한다. 내정은 결국 후견인 간 힘겨루기로 결판난다. 이렇게 내정된 사람이 역량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다. 우연은 불행하게도 가뭄에 콩나기 보다 어렵다.
셋째, 간혹 내정자가 없는 경우에도 공모로 적임자를 골라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적임자 중에는 짜고 치는 고스톱의 들러리가 될 우려에 마음을 접는 사람이 많다. 그 일을 가장 하고 싶은 사람이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의욕과 능력은 엄연히 다르다.
넷째, 불필요한 행정력을 낭비한다. 긴 임명절차에 서너 달은 기본이고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 제도는 청와대 의중에 있는 사람을 모양 좋게 임명하려는 절차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책임성이 약화되어 부적격 낙하산의 가능성이 커지고 불필요한 비용만 소모하고 있다.
이 같은 인사 적폐의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 명확한 책임이 변화의 첫 걸음이다. 내정의 발원지는 청와대이므로 대통령 비서실장이 공운위에 내정자를 추천하고 공운위의 검증결과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공운위 위원장인 기재부 장관에 검증을 의뢰하는 형식이라 현실성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국회가 검증하게 되면 행정비용이 더 커진다.
결국 부처 장관이 책임질 수밖에 없다. 장관에게 3명 내외의 기관장 후보를 순위와 함께 공운위에 추천케 하자. 공운위는 후보자 중 결격자를 제외하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은 순위대로 사장직 수행의사를 확인하고 임명장을 주면 된다.
장관의 책무성 강화를 위해 자신이 추천한 사장의 경영평가 점수를 집계하여 공개하자. 물론 청와대는 부처 장관에게 특정인을 1순위로 추천토록 요구할 것이며 장관은 이를 따를 것이다. 그러나 장관이 추천에 대한 공식책임을 지게 되면 청와대도 부적격 인사를 1순위로 추천하라고 장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다.
둘째 공모절차는 그대로 두되 지원하지 않은 사람도 장관이 추천할 수 있게 하자. 장관은 헤드헌팅 회사를 활용할 수도 있다. 장관은 공모지원자와 헤드헌팅사가 뽑아 준 인사 중 3명을 순위를 매겨 고르는 것이다. 장관의 힘이 강해지는 것은 사실이나 권한이 있어야 책임도 생긴다.
지금은 권한을 흩어 놓아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공기업 사장보다 더 중요한 장관직도 공모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현재 정부에서 개방형으로 실국장을 뽑을 때에도, 공모 없이 적임자를 스카우트 하는 방식을 허용하고 있다. 장관에게 추천 책임을 주고 헤드 헌팅으로 공기업 사장 뽑자. 그래야 부적격 낙하산이 줄어든다.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도 지나치다. 전 정권은 최소한 한국항공우주산업, 코레일 등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는 해당 부문 전문가나 관련 부처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관료들을 보냈다.
지금 문재인 정부하에서는 이런 원칙도 지켜지 않고 있다. 비전문가가 판치는 공기업 인사에서 누가 그 결정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참 정치 잘한다'고 말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세금을 먹고 자라는 것이 공기업이다. 국민의 주머니를 내 주머니인양 우습게 여기는 게 적폐중의 적폐다. /김필재 정치평론가
[김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