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윤성빈이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가슴 벅찬 일이다. 동계 스포츠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하지 않는 종목의 올림픽 금메달을 윤성빈이 대한민국 최초로 일궈냈다. 대단한 업적이다.
우리 나라에서 썰매 종목은 불과 수 년 전까지만 해도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이번 올림픽이 국내에서 열리고, 윤성빈이 유력 금메달 후보로 꼽힌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거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고 처음으로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이 무엇인지 알게 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직도 루지와 스켈레톤을 구분 못하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그런 생소한 종목 스켈레톤에서 어떻게 윤성빈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나와서 올림픽 금메달까지 획득하게 된 것일까.
윤성빈은 스켈레톤을 위해 태어난 듯 기본적인 자질이 매우 뛰어났다. 자질만 있다고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피나는 노력은 필수다. 윤성빈은 그 두 가지를 다 갖췄기에 '황제' 자리에 올랐다. 피겨 스케이팅 '여제' 김연아와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스피드와 순발력, 근력에서 매우 빼어난 자질을 갖고 있던 윤성빈이 왜 하필 이름도 생소한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을 선택하게 됐을까.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만난다.
'무한도전'은 지난 2009년 봅슬레이 특집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멤버들이 봅슬레이 기술을 배우고 실제 봅슬레이 경기가 열리는 트랙에서 직접 타보는 과정을 그려 크게 화제가 됐다.
그래서? 거의 10년 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켈레톤도 아닌 봅슬레이를 다룬 것이 윤성빈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은 대한민국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두 번이나 실패해 3번째 도전을 준비할 당시 방송됐다. 열악한 한국 썰매 종목의 현실,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분야의 도전에 나서 개척자의 정신으로 한국 봅슬레이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 얘기가 큰 울림을 전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을 겪으며 국내에 봅슬레이 트랙 하나 없어 일본까지 원정을 간 멤버들이 일본 선수들이 사용하지 않는 빈 시간을 빌려 봅슬레이를 타는 생고생담은 재미와 함께 큰 감동을 안겼다.
이후 큰 변화가 있었다. 봅슬레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종목에서 고생하는 선수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육성책 마련에 대한 여론이 기업체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변변한 장비도 없어 어려움을 겪는 대표팀을 위해 썰매를 제공하겠다는 기업체의 후원 소식도 전해졌다. 평창 올림픽 유치의 숙원을 이루고 부끄럽지 않게 대회를 치르려면 아이스 트랙 등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다양한 동계 종목에 대한 관심과 성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2011년, 평창은 3수 끝에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국내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됐으니 많은 스포츠 꿈나무들이 자신의 자질에 맞는 종목을 찾아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웠을 것이다. 윤성빈도 그 중 한 명이라고 한다면, '무한도전'과 연결고리가 너무 약하다.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 당시 한 인물이 주목을 받았다. 당시 봅슬레이 선수 겸 지도자로 활약하던 강광배(현 한국체육대학 교수)였다.
강광배는 한국 썰매 종목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원래 스키 선수였지만 무릎 부상을 당한 것이 계기가 돼 루지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스켈레톤도 타봤고, 봅슬레이까지 섭렵했다. 썰매 3종목에서 모두 올림픽에 출전한 유일한 선수가 바로 강광배였다.
'무한도전'을 통해 강광배는 한국 썰매 종목이 처한 현실을 널리 알렸다. 외길 인생을 살아온 그의 신념과 굳은 의지가 누군가에게는 훌륭한 교본이 됐을 것이다.
그런 강광배와 윤성빈이 만났다. 체대 입시 준비를 하던 윤성빈의 자질을 눈여겨본 고교 시절 체육교사 김영태 선생님이 강광배에게 윤성빈을 추천했다. 2012년 당시 강광배는 평창 올림픽을 대비해 썰매 종목 유망주를 찾고 있었다. 한눈에 윤성빈이 재목감임을 알아본 강광배는 윤성빈을 스켈레톤에 입문시켰다. 잘 알려진 대로 윤성빈은 이후 스켈레톤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4년여 만에 세계랭킹 1위로 올라섰고, 5년여 만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윤성빈의 성장 과정에서 기업체 후원은 든든한 힘이 됐다. CJ, LG 등이 낙후됐던 한국 썰매 종목의 후원에 나서 물심 양면으로 도움을 주며 윤성빈의 금메달 여정을 함께 했다. 윤성빈을 완벽한 '아이언맨'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무한도전'이 봅슬레이 특집을 하지 않았다면 윤성빈이라는 영웅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무한도전'에 강광배가 출연하지 않았다면 윤성빈이 진로를 선택할 때 그를 믿고 스켈레톤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무한도전'이 '쿨러닝'(자메이카 선수들이 봅슬레이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이상의 감동을 전하지 않았다면 기업들이 썰매 종목에 투자와 지원을 그렇게 해줬을까.
TV 예능 프로그램의 우연한(또는 잘 기획된) 공을 과대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융합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전혀 매치가 안되는 분야 같지만 융합을 통해 창의적인 발상을 하고, 아이디어를 찾아 미래 가치를 창출하자는 움직임이 대세다. 조금 억지스럽게 갖다 붙이기는 했지만, '무한도전'이 윤성빈의 금메달에 출발점이 됐다고 우겨보는 것은 이런 '융합'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런 걸 다 떠나서, 윤성빈이 스켈레톤에 도전해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하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바로 무한 도전 아니겠는가.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