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영민 기자]문재인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통신비 인하' 문제를 논의해온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가 9차례의 회의를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협의회는 정부, 업계, 시민단체, 전문가 등이 참여해 통신비 인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차만 재차 확인했을 뿐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2일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가 마지막 9차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애초부터 합리적인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워낙에 이통업계와 휴대폰 제조업계를 뒤흔들 굵직한 현안들을 논의하는 자리여서 입장차를 좁히기 힘들었을 것이다.
협의회가 다룬 주요 현안은 보편요금제, 단말기 완전자급제, 기초연금 수급자 통신비 감면 등이다. 이중 국민 대다수의 통신비에 영향을 주는 보편요금제와 단말기 자급제 도입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통사들은 보편요금제 도입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익이 줄 것이 뻔한 보편요금제를 찬성할리 만무하다.
보편요금제는 2만원대 요금제에서 음성통화와 데이터를 보편적인 수준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음성통화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GB) 이상을 제공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음성통화 무제한, 데이터 2GB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통사들이 필사적으로 보편요금제 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는 수익과 직결되는 월평균 가입자당매출(ARPU)의 감소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되면 이통사의 ARPU가 3만원대 중반에서 2만원대로 1만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핵심 현안인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완전자급제 도입은 이통사들의 핵심 마케팅 수단인 단말기 판매 권한을 빼앗기는 것이어서 시장의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단말기 지원금이 사라져 이통사의 마케팅비용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삼성전자 등 제조업체다. 보통 휴대폰을 구입할 때 이통사 약정 등을 통해 단말기 지원금을 받아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데 완전자급제를 도입하면 지원금 없이 단말 가격 그대로 다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휴대폰 판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보편요금제와 단말기 완전자급제는 도입과 동시에 관련 시장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의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
결국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따라서 정치적 논리에 의해 통신비 인하 정책이 결정되는 안타까운 일을 생길까 우려된다. 보편요금제, 단말기 완전자급제에 대해 국회의원들도 의견차가 커 합리적인 방안이 도출되기 보다는 자칫 정치적 논리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요금제 도입은 정부나 국회가 민간기업의 서비스 가격을 설계하고 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보편요금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정책 사례다. 이통사들은 정부의 보편요금제 도입 압박에 일부 요금제의 혜택을 늘리고 있다. 강압적인 요금 인하보다는 경쟁을 통한 자연스러운 인하를 유도하는 것이 맞다.
'고가단말기'를 사기 위해 '고가요금제'에 가입해 통신비 부담이 높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처럼 자신에 맞는 요금제를 잘 선택하면 통신비 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 이통사도 요금제에 제공하는 음성통화, 데이터 등 혜택을 점차 확대해야 한다. 고화질, 고음질 시대에 데이터 사용량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어 통심비 부담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불법보조금으로 혼탁해져 있는 휴대폰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완전자급제 도입은 필요하다. 하지만 단계적 추진을 고려해야 한다.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휴대폰 유통점은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따라서 제조사 중심의 휴대폰 유통구조를 정착시키려면 유통점을 제조사의 판매점으로 전환하는 등 후폭풍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현 정부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보편요금제,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강제적으로 도입하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관련 업계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방안부터 마련하는 것을 선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