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일본의 후지사와 사츠키가 뛰었다. 그러자 한국의 김은정은 날았다. 그 결과는 한국의 아슬아슬하면서도 짜릿한 승리였다.
여자 컬링 한국 대표팀이 일본에 설욕전을 펼치며 결승전에 올랐다. 금메달까지 바라보게 된 자랑스런 한국 대표팀이다.
'팀 킴' 한국은 23일 열린 '팀 후지사와' 일본과 준결승에서 연장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8-7로 이겼다. 한국은 예선 2차전에서 일본에 당했던 5-7 역전 패배의 아픔을 고스란히 되갚으며 결승행 문턱을 넘어섰다.
한국 선수들 모두 잘 싸웠다. 스킵 김은정을 중심으로 '영미' 신드롬의 주인공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의 호흡이 척척 맞았다. 후보로 대기하며 응원의 기를 보낸 김초희도 있었다.
그래도 역시 이날 한일전 승부의 하이라이트는 양팀 스킵(주장) 김은정 대 후지사와 사츠키의 멋진 대결이었다.
한국은 초반부터 줄곧 앞서 나갔다. 일본전 설욕과 반드시 결승에 가겠다는 의지로 뭉친 한국은 대단한 집중력을 보였다. 김은정의 리드도 좋았고 김경애 김선영의 샷 감각도 좋았다. 김영미는 몸 상태가 안좋음에도 열심히 스위핑을 했다.
그러나 한국이 점수 차를 크게 벌리지는 못했다. 일본 역시 후지사와의 리드 속에 계속 추격을 해왔다. 한국은 6-4로 앞서던 7엔드 후공에서 한 점 낼 수 있음에도 무득점으로 흘려보냈다. 8엔드와 10엔드에서 후공을 잡아 승리를 굳히겠다는 전략이었다.
8엔드에서 한국이 1점을 얻어 7-4로 앞서며 작전은 잘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일본에는 후지사와가 있었다. 9엔드 마지막 샷에서 절묘한 드로우로 2점을 뽑아냈다.
한국이 여전히 한 점 앞선 채 맞은 10엔드. 한국은 수비적으로 경기운영을 잘 해 유리한 상황으로 끌고갔다. 하지만 후지사와의 놀라운 마지막 샷이 한국을 어렵게 만들었다. 후지사와는 고도의 정교한 샷을 구사해 1번 스톤 자리를 차지하면서 쳐내기도 어렵게 배치를 시켰다. 김은정 스킵이 이 어려운 샷을 해결해줘야 한국의 승리였다. 김은정은 신중하게 스톤을 굴렸고 정확하게 일본 스톤을 밀어냈다. 그러나 힘 조절이 조금 안돼 우리 스톤이 조금 더 옆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승리가 확정된 줄 알고 손을 번쩍 치켜들었던 김은정은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한국 선수들 모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일본에 역전패를 당했던 예선 경기가 떠오를 만했다. 예선 때도 일본이 역전승할 수 있었던 것은 후지사와의 막판 정교한 샷이 잇따라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10엔드에서 점수를 뽑아 동점을 만들며 승부를 연장으고 끌고가자 기뻐하는 후지사와. /사진='더팩트' 제공
연장에서도 10엔드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한국이 후공으로 유리했지만 양팀은 치열한 머리싸움으로 끝까지 알 수 없는 승부를 이어갔다. 후지사와의 마지막 샷이 다시 한 번 빛났다. 일본이 1번 스톤을 만들었고, 가드 뒤에 숨어 쳐내기도 여의치 않았다.
이제 한국이 이기는 길은 김은정이 완벽한 드로우로 일본 스톤 옆에 붙이면서 1번 스톤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피마르는 긴장감 속에서도 김은정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을 던지며 샷을 했고 동료들은 라인을 봐가며 있는 힘을 다한 스위핑으로 스톤을 안내했다. 그렇게 한국의 스톤은 원했던 곳에 정확히 가서 멈추며 한국에 극적인 승리를 안겼다.
잘 싸웠으나 패배한 후지사와는 평소 해맑던 미소를 거두고 안타까운 눈물을 쏟았다. 잘 싸운데다 마지막 승부 샷을 성공시키며 한국의 결승행을 이끈 김은정은 평소 냉정하던 얼굴을 거두고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은 이렇게 한국이 이기며 명암이 갈렸지만, '팀 김은정'과 '팀 후지사와'는 명승부를 남겼다.
연장전 마지막 샷을 절묘하게 구사해 한국의 승리를 이끌고 울먹이는 김은정. /사진='더팩트' 제공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