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밝힌 게 지난해 10월인데, 그건 재판 불복선언이었다. 이후의 공판 과정이란 정치보복의 요식행위로 전락했지만, 문제의 재판부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검찰은 지난 27일 궐석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사실상의 종신형인 징역 30년과 함께 벌금 1185억 원을 구형했다.
그렇다고 법의 엄정함을 체감했다고 말하는 국민은 전무하다. 외려 사법권력 남용의 저 무자비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맥베스처럼 피의 냄새를 풍기는 권력찬탈 정부의 실체를 재확인했다. 안타까운 건 그게 3.1절 태극기 집회처럼 시민-정치인의 분통으로 표출되고 마는 점이다.
일테면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통진당 이석기에게 20년을 선고하고 박 대통령에게 30년을 구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외쳤다. 그 전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박 대통령을 석방시킨 다음 공정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자유한국당 당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아직 메아리가 없다. 차제에 큰 시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박해를 통찰할 시점이다.
검찰은 구형 때 박 전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고 헌법가치를 훼손했다"고 했지만, 말은 똑바로 하자. 헌정질서-자유민주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건 바로 당신들이 아니었던가? 이 나라엔 지금 살벌한 체제전쟁이 진행 중인데, 그걸 사법권력이 더 분칠하고 악화시키고 있다. 그게 진실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당신들이 구사한 논리란 억지다. 보라. 적법하게 설립된 재단을 당신들은 하루아침에 범죄단체로 둔갑시켰다. 뇌물죄로 기소당한 대통령이 1원 한 푼 받았다는 증거가 없자 경제공동체로 뒤집어씌웠다. 또 통치행위-행정절차를 직권남용으로 둔갑시켰고, 포괄적 심증만 가지고도 기소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 이전 탄핵을 주도했던 국회-특검-헌재부터 오류를 저질렀다. 박근혜-이재용-최순실을 직권남용, 뇌물수수, 경제공동체로 단정하다니…. 그런 게 경제공동체라면 2000년 당시 김대중-김정일-정주영이야말로 완벽한 경제공동체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나만의 판단이 아니다.
그런 견해를 최근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자기 책 <우리시대 모순과 상식>에서 개진했다. 당시 김대중은 현대그룹으로부터 5억 달러를 뜯어내 남북정상회담을 구걸했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에 의한 직권남용이자, “김대중-김정일 사이의 이적행위에 가까운 뇌물수수”(82쪽)다. 그런데도 김대중은 노벨평화상이고, 박근혜는 탄핵에 30년 징역형이라니….
검찰은 지난 27일 궐석 재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사실상의 종신형인 징역 30년과 함께 벌금 1185억 원을 구형했다. 박 전대통령은 이런 중형에 해당하는 부정축재를 한 바 없고, 적과 내통해서 안보위협을 초래한 바도 없기에 여론재판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백번 양보해도 노골적 '좌익 무죄', '우익 유죄'의 이중 잣대일 뿐이다. 이런 중형에 해당하는 부정축재를 한 바 없고, 적과 내통해서 안보위협을 초래한 바 없는 박 전 대통령을 두고 우린 대체 왜 이 미친 짓인가? 전 국가수반에 대한 최악의 사법권력 남용을 어찌 설명해야 옳을까?
의외로 자명하다. 권력 찬탈정부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이전 권력자가 사악하다는 걸 국민에게 입증해야 하고, 사법부가 그걸 위해 목매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자. 지금 이뤄지는 재판은 대한민국 거대한 자해(自害)드라마일 뿐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그걸 주장해왔다.
때문에 28일 자 중앙일보 사설이 퇴임 대통령이 법정에 서는 현대사의 비극을 언급하며 "이 땅에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다"고 개탄하는 걸 그야말로 입에 발린 헛소리로 본다. 일테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5.18특별법 소급입법에 따라 무기징역을, 노태우 전 대통령은 1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세 명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박해란 별도의 것이 아니다.
전-노, 두 대통령에 대한 구속 수사과정이 지금 박 대통령에 대한 박해와 어찌 그리 같은지 놀랍고, 정치권-검찰-언론이 한 편이 되어 벌이는 여론재판까지도 닮은꼴이라서 다시 놀란다. 그리고 지난 20~30년, 상황은 훨씬 나빠졌다.
퇴임 권력(전-노)을 상대로 싸우며 힘을 키워온 그들은 지난해 살아있는 권력 박근혜를 탄핵하고 구속재판을 시키며 악마적 위력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그 여력으로 검찰은 조만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도 소환을 통보할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건 여론조사 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에 70% 넘는 사람들이 찬성한다는 점이다.
이건 마친 짓이다. 한국의 불행한 정치풍토 어쩌구의 차원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우익-우파 대통령을 찍어내고, 역사에서 송두리째 지워내려는 음모가 무섭게 관철되는 과정으로 봐야 옳다. 김영삼 이후 한국사회는 해체 국면에 돌입하는데 지금 그게 자해 단계를 지나 자살의 가쁜 숨을 몰아쉬는 중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여기에 좌익운동권의 보이지 않는 손도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즉 촛불 폭민(暴民)정치(mobcracy)의 마지막 장이 지금 쓰여지고 있으며, 그래서 더욱 격렬하고 예측 불가하다. 당신이 느끼는 답답함은 그 때문이다. 어떤 인터넷 댓글이 "박 대통령 탄핵은 저 같은 주부를 투사로 만들었지만, 대통령에 대한 연민은 내게 고통"이라고 고백했다.
3.1절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압도적인 수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박 전 대통령 탄핵과 재판 앞에 연민과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탓이다. 그리고 그건 권력을 찬탈한 문재인 정부의 운명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판단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단언컨대 나는 박 전 대통령 재판이 일상적인 법률 공방의 차원에서 대강 마무리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4월 선고 재판 일정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3~4월, 평양이 깨지거나 서울이 무너지거나 하는 진실의 순간 즉 한국정치의 혁명적 재편과정 속에서 박 전 대통령 문제가 마무리될 것이다. 즉 둘 중 하나다.
반 대한민국 세력이 북한 김정은과 함께 최종승리를 거두며 한반도가 최악의 어둠에 잠길 수 있고, 숨죽여온 자유민주 세력이 극적으로 복권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운명적이다. 그가 보수를 분열시켰고, 좌익에 권력을 빼앗겨 지금의 국가위기를 초래했다는 식으로 함부로 말하지 말자.
대한민국에 운명적인 정치인인 박근혜의 앞날과 행보 하나하나에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고 느낄 때가 올 수도 있다. 최소한 지금 한반도 최악의 위기상황에서 퇴행과 위선의 정치를 반복하는 무리가 온전하게 발 뻗고 살 수 없어야 한다. 현대사의 변곡점에서 알곡과 껍데기가 구분되는 과정이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