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서지현 창원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연희단거리패 등 연기예술계를 중심으로 종교계·미술계 및 대학가·사법부·서울시에 이르기까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전방위로 커졌지만, 가해자들을 법적으로 처벌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직접 고소하거나 목격자가 고발하더라도 법원은 피해자에게 불리한 법정 증거주의를 내세우고 있어 형사처벌이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결론까지 가려면 감안해야 할 요건이 적지 않다.
법조계는 가해자 처벌을 위한 장애물로, 고소제기 시점·공소시효·친고죄 등 사건의 시간적 요건을 비롯해 미성년인 경우·가해자 죄질(행위) 수위·합의 여부 등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관계적 요건이 가장 크다고 보았다.
성폭력은 성희롱·성추행(강제추행)·성폭행(강간) 유형으로 나뉘는데, 이중 면전에서 음란한 농담으로 성적 수치심을 주는 등 사회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성희롱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가현법률사무소 대표인 장수혁 변호사는 이에 대해 "형사처벌은 불가하지만 경우에 따라 민사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며 "위계에 따른 권력형 성희롱 배상액은 3000~5000만 원까지 높아졌지만 역시 공소시효를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해자 처벌을 위한 첫번째 장애물은 이를 고소하는 시간적 조건이다.
법조계는 "민사 손해배상의 경우 성범죄가 발생한 사건일로부터 10년 내 혹은 피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내로 해야 한다"면서 "2013년 6월 폐지된 '성범죄 친고죄(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 조항을 감안하면 그 이전 성범죄는 피해자 고소가 없다면 공소시효 내라도 기소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형사처벌은 민사 손해배상 청구와 요건이 일부 다르다.
상습강제추행죄를 적용하면 2013년 6월 전에 일어난 성폭력에 대해 1년 내에 고소하지 않았어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잇다.
2010년 4월15일 상습범을 가중처벌하기 위해 형법에 신설된 상습강제추행죄는 피해 신고가 잇따르기만 해도 검찰이 단순강제추행 혐의가 아닌 상습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2013년 6월 이전 범죄에 대해서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
피해자가 미성년자인지 여부도 공소시효를 가늠하는 요건이다. 공소시효가 10년을 넘겼어도 성폭력을 당했던 시점에 미성년자라면 고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피해자가 성년이 된 후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된다.
서울중앙지검은 2일 연극연출가 이윤택씨 사건을 서울지방경찰청 성폭력범죄특별수사대에 보내 수사하도록 지휘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파문을 일으킨 이씨가 2월19일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공소시효를 충족해 가해자를 피의자로 세워 법정 공방으로 넘어가면 증거 여부와 진술의 신빙성이 가장 큰 관건이 된다.
장 변호사는 이에 대해 "피해자와 가해자 둘 사이에 어떠한 녹취도 없이 이루어진 은밀한 행위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양쪽 진술 중 누구의 진술이 더 신빙성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목격한 증인들의 구체적인 진술과 행위 수위, 양측 변호사-검사의 능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법조계는 "사과를 요구하는 문자나 전화 통화를 해서 그것을 남긴다든지 현장에 있던 증인들을 먼저 확보하는게 가장 중요하다"며 "자기 진술의 신빙성만 갖고 할 경우 기억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둘만의 장소에 있었다면 장소의 특징을 잘 기억해 구체화해서 진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가 가해자의 유죄를 인정한 뒤 처벌하는 수위는 죄질을 비롯해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가 중요하다.
법조계는 양형이 10년 이하인 성추행 사건 대부분에는 벌금형이 내려지지만 최근 들어 징역 등 실형도 상당수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징역 3년 이상인 성폭행의 경우 죄질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하는지 여부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처벌 양쪽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보았다.
한편,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 가해자의 성폭력을 제3자인 목격자가 대중에게 고발하거나 피해 당사자가 SNS 등에 밝히려면 몇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가해자를 특정하지 말아야 하고, 특정하지 않더라도 누가 봐도 가해자를 알 수 있는 정보를 게재하는 경우는 위험할 수 있다.
법조계는 "허위사실을 포함한 명예훼손,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이 있기 때문에 제3자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자신이 당했던 일을 그대로 쓰더라도 SNS에 자신을 도와달라는 사실관계만 적시하는 것은 괜찮지만 가해자를 특정하는 건 최대한 삼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디어펜=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