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 누굴 뽑아야 하나, 누굴 낙마시켜야 하나?
안전불감증 재정파탄공약자들 표로 심판해야, 박근혜정부 심판론은 지방선거와 동떨어진 것
▲ 박종운 미디어펜 논설위원 |
물론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이 3~4개월 주어진데다가,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은 온라인이나 모바일 환경 속에서 충분히 홍보가 이루어졌기에, 그 기간의 의미가 예전만큼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온라인 환경에서는 능동적으로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들만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모바일 환경에서도 친구 등록을 해놓은 경우만 그 소식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역단위로 벌어지는 선거에서 길거리 선거운동의 의미는 여전히 있다. 더구나 그간의 과정에서 각 당의 예비후보들 중에서 당내에서 엄선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각 당이 내놓은 ‘그래도’ 믿을만한, 또 사후에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을만한 후보로 압축되었기 때문에, 본선의 의미가 중요하다.
특히 올해는 4.16 세월호 참사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희생되어 다수 국민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또 관심을 집중시켰기 때문에, 6.4 지방선거는 마치 새로이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대형 해상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의 정과 최대한의 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대리해서 지방자치단체를 이끌거나 감시할 사람들을 뽑는 일에도 결코 등한시 할 수가 없다. 북한 김일성의 침략으로 일어난 6.25 전쟁의 와중에서도 지방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가 치러졌을 정도로, 우리 국민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을 잘 해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지방자치에 대한 높은 관심이 중요
민주주의를 압축적으로 가장 잘 드러낸 구호는 미국 독립혁명의 과정에서 나온 “대표 없이 조세 없다!”는 말이다. 영국 왕이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에 각종 세금을 ‘임의로’ 부과하려고 하자,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대표제”를 요구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아메리카 대륙의 주민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고대 로마의 제도를 본 따서 민주공화국을 만들었다. 정치에서도 민주주의의 르네상스가 이루어진 것이다.
▲ 지난 2일 서울지하철 2호선 상왕십리역에서 발생한 추돌사고는 박원순시장의 서울시가 무상급식등에 예산을 펑펑 쓰느라 지하철 안전예산을 전액삭감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됐다고 서울지하철노조가 주장했다. 6.4 지방선거는 우리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된 풀뿌리민주주의 선거다. 이런 점에서 안전불감증에 걸리거나, 재정을 파탄낼 후보자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지하철 사상 처음으로 추돌사고를 일으킨 2호선 상왕십리역 사고현장. |
그런데, 미국의 독립혁명 직후 미국을 방문한 프랑스인 알렉시스 드 또끄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적절하게 묘사했듯이, 이 미국의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였다. 타운 단위, 그 위에 구성국(state) 단위, 그리고 그 위에 구성국 연맹(1789년 이후 연방)으로 올라가는 민주주의였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시작인 타운 단위의 민주주의였다. 신문이 발달하지 않은 프랑스에서 온 또끄빌은 비록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미국인들은 매일 같은 신문을 읽고, 같은 주제의 토론을 하고, 의사결정을 해나갔다.
미국의 독립혁명 성공과 민주공화국 수립은 프랑스혁명의 발발에 큰 영향을 끼쳤다. 마찬가지로 또끄빌의 책을 통해서 소개된 미국의 민주주의도 (불행하게도 주기적 왕정복고가 프랑스를 좌충우돌하게 만들었지만...) 프랑스의 민주정치에 큰 영향을 끼친 모범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주체가 누구인가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지방자치의 이런 역사적 기원을 보건대, 정치에서 우선 순위 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이고, 또 나와 주변 사람들의 생활 개선을 위한 공동 노력에 관한 것이다. 주민들이 “세금을 내는 이상, 대표를 뽑는데도 적극 나선다”는 것은 쟁취해냈던 권리이기도 하다. 이 권리는 원리적으로도 “대표 없이 조세 없다”는 정신으로부터 직접 도출된 권리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도 이승만 대통령을 위시한 건국의 지도자들이 신탁통치반대탁(그리고 즉시 독립)운동으로 미국 등을 설득해내어 자유민주주의 총선거를 통해 건국 및 독립혁명을 성취한 1948년 이후, 새로 만든 헌법에 따라 지방자치 선거도 실시하기 시작했다. 비록 민주 헌정이 굴절을 거치면서, 1960년대 들어 지방자치가 폐지되는 운명을 겪었지만, 1987년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다시 지방자치가 부활되었고, 1991년,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방자치 선거가 실시되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건국이후 현대사를 보아도 지방자치가 잘 이루어지는가 여부는 민주주의의 안착 정도를 잘 가늠해주는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이다. 다행히 1991년 이후에는 큰 굴절이 없는 것으로 보아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를 잘 내리고 있다고 보여진다.
지방자치의 건전성을 뒤흔드는, 재정을 거덜낼 선심성 공약들을 솎아내자
요즈음은 아파트 동대표 선거도 장난이 아니다. 관리비 규모가 크다보니 관리비 사용에 대한 감시 통제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에 주민들의 관심도 뜨겁다. 그런가하면, 통장 선출도 선거에 가깝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동대표와 통장 선출에서 꼼꼼히 살림을 할 여성들의 진출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이처럼 가장 작은 단위들에서 주민들의 관심이 커지다보니, 동네를 대표할 시군구 의원 선거, 그리고 그 지역을 관장할 시장 군수 구청장 선거에 대한 관심도 커가는 듯하다.
지방자치가 계속되면서 지방자치 경영을 잘 해내는가가 문제로 되고 있다.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무리한 개발의 후폭풍으로 인해 파산지경에 이르렀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파산선고를 받으면, 상급 단체에 귀속되거나, 인근 지방자치단체에 흡수, 합병되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관리 편의상으로 그어진 지방자치단위의 구획선이 파산 선고 등을 통해서 변경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주민들의 지방자치 선거에서 후보자가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을 잘 해나갈 사람인가 여부를 가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지방자치에는 재원인 세금과 관련하여 커다란 제약들이 있다. 그 하나는 국회의 입법권을 넘어 주민에게 부담을 지우는 조례 제정의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이런 제약으로 인하여, 그나마 지방자치에서 세금부담의 증대를 둘러싼 문제가 선거의 현안이 되지는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먹을 것을 도시에서 다 구입하여 다 싸들고 다니는 국내여행 패턴으로 인해 산과 계곡 등의 청결한 관리를 위해서 ‘관광세’를 신설하자는 논의가 있다. 관광세의 도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세금이 세목별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배분이 되어 있어서, 지방의 재원이 빈약하고 지방재정이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방소득세의 신설로 소득세의 1/10을 부과하는 개선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많이 미흡한 상태다. 중앙정부의 재정지출 중에서 교부세 양여세라고도 부르는 지방에 대한 교부금과 양여금이 있는데, 이를 더 늘려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두 문제는 모두 지방자치단체장 연합회가 국회와의 협상을 통해서 중앙 정부의 동의를 얻어 달성해야 할 문제들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주어진 제약 하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토대로 살림을 잘 해나갈 사람들을 대리인으로 뽑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는, 특히 연도별로 들어오는 세금을 토대로 예산을 집행하는 현실에서, 세계경제는 물론 국가경제의 어려움이 세수의 감소로 이어져,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상 어려움으로 직결된다. 이러한 때에 부채 규모를 늘리지 않고 살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시점에,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아닌 (거두었다 나눠주는 비용만 유발하는) 보편적 선심성 복지정책을 남발하거나, 부채로 문제를 미봉하면서 넘어가려는 사람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때 무상급식으로 재미를 보았던) 김상곤이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나서면서 내세웠던 무상버스 공약이 차가운 반응을 얻었던 것은 정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끔찍한 해양 참사를 계기로, 안전불감증 후보자도 퇴출시키자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각에서 정권심판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정권 심판으로 연결시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방선거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것이고, 인과관계와도 맞지 않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정권심판론을 보면, 자기 책임의 원리상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선장과 선원들에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단기적 이익에 급급해서 무리한 증축 및 개조를 한 청해진 해운이라는 선사에 있다. 또한 뇌물(?)에 눈이 어두워 선사의 로비에 넘어간 감독기관 종사자들 개개인들에게 있다. 구조책임의 경우에도, 목포해양경찰서장 및 서해지방해양경찰청과 해경 123경비정 간의 대화에서도 보여지듯이, 당시로서는 내부진입 구조는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외부에서 멀리 있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선내로 진입해서 인명을 구조해내지 못했던 상황이었을까 하는 데 대해서는 의문도 아쉬움도 있지만, 일단 현장 구조책임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마치 정부가 살해 방조를 한 것처럼 책임을 지우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 대단히 크다.
책임의 인과관계를 정치권에서 따지려면 다른 사례를 들을 경우에 더 정확해진다. 5.2일 벌어진 서울시 지하철 사고의 경우, (서울메트로지하철노동조합 포스터의 주장에서 보여지듯이) 서울시가 2014년 안전예산을 0%로 전액 삭감한 결과로 보여진다. 이 주장이 맞다면, 이런 예산을 짠 서울시장에게 이번 지하철 사고에 대해서 지휘책임을 묻는 것이 논리적 인과관계 면에서 타당하다. 그런데도 그 서울시장은 자기 책임임에도 (협찬인생의 대가답게) 정부가 돈을 주면 지하철 안전을 도모하겠다는 식으로 과녁을 정부로 돌려버렸다.
그는 전에도 인디밴드 출신을 서울대공원장으로 임명했고, 그런 비전문가의 지휘 하에 곤충사육사가 호랑이 사육사로 임무가 바뀌고 결국 호랑이에 물려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 사고를 인사시스템의 고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그 경우 잘못된 외부인사 발탁 행정을 한 임명권자는 현 서울시장이었다. 안전한 지역사회를 만들려면 인과관계상 정확한 이러한 책임들에 대해서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은 어디엔가 세월호의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겠는데, 그러지 못해서 답답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과관계와는 무관하게 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정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가 책임을 물을 진짜 당사자들은 지금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내 주변의 안전을 점검해보고, 안전예산을 전액(!) 삭감하고도, 정부에게 핑계를 돌리는 서울시장의 예에서 보듯이, 오히려 저런 안전불감증 의식을 가진 후보자들을 솎아내는 행사로 만들어야 지방자치가 한 단계 성숙될 수 있다. 그렇게 책임져야 할 사람을 제대로 심판해갈 때, 비로소 우리는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한 표 한 표로 안전한 우리 동네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미디어펜=박종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