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
싱글주의 연혁은 삼성에 있다. 인터넷 대중화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던 1998년 즈음, 삼성그룹 내부 전산망 인트라넷 이름으로 싱글(Single)이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64개쯤 되던 삼성 계열사 수십만 임직원들은 직급이 다르고 직무도 다르고 사는 나라, 지역이 달라도 싱글이라는 둥지로 자연스레 깃들었다. 기능은 결제 올리고 메시지 공유하고 회의실 예약하는 지극히 사무적인 사내 포털 정도였지만 싱글은 운영 초기부터 구심점 허브이자 컨트롤 타워, 기업문화 지주로서 위력을 대대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 KT로고 |
▲ 황창규 KT회장 |
이 인정의 힘은 참 대단하다.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철학자 헤겔도 인정투쟁이란 표현까지 해가면서 자기 존재를 보여주고 확인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을 꼬집어냈다. 바로 이 인정 경영에서 성공한 삼성이기에 관리의 삼성이란 애칭도 나왔다. 그룹 총수 병환이나 후계자 구도 지배구조 변화와 무관하게 오직 시스템이 일하는 삼성이라는 정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외에도 정도경영이나 신경영, 창조경영, 인재제일주의, 연구혁신 등 숱한 가치평가 항목이 있지만 우리사회가 닮고자 하는 싱글주의 핵심어로서 <인정>이라는 두 글자를 똑바로 봐야 하는 상황이 벼락같이 우리 곁을 찾아 왔다.
우선 첫 상황은 싱글 KT다. 신임 사장이 삼성 DNA를 심고자 싱글주의를 쳐다봤지만 첫 막 첫 장은 명예퇴직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20년 이전 근속자들 상당수도 몇 억이네 하는 돈을 인정하고 회사를 의심하며 굿바이 했다. 회사는 이전 정부, 이전 사장 사람들을 솎아내는 의심의 향연을 벌였다. KT가 승부를 봐야 할 IPTV나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 OTT(over the top) 같은 첨단 미디어 플랫폼 등 사업들은 죄다 급격한 조직개편이라는 교체비용으로 말미암아 가라앉고만 있다.
KT는 싱글삼성과 같이 착착 뛰는 기업혁신을 자신하겠지만 사람부터 줄이자는 강박으로는 싱글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너무한 명예퇴직 이벤트는 인정투쟁을 갈구하는 인간 본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새 사업으로 일하고 인정받을 기회를 주지도 않고 퇴직 동문들만 양산하면 살아남은 자들까지 인정불인정 염려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맹목적 싱글주의 환상이 낳은 또 다른 패착은 청와대다. 여도 야도 좌도 우도 많은 이들이 내각총사퇴하고 거국내각 만들고 책임총리제하고 비서관 스태프들 싹 물갈이해야 한다고 떠든다. 화답해야 할 청와대로서는 이제 각론만 빼고 총론은 다 들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이런 급격한 기울기와 요동침을 지켜보면서 삼성이 본의 아니게 뿌려 놓은 싱글주의라는 폐해를 맞닥뜨리게 된다. 대통령이나 리더가 새 비전을 띄우면 그저 한 방향으로 쫙 줄 서고 달라지리라는 맹신이라면 이는 곧 거짓 싱글주의로 자라난다.
이건희 회장처럼 가부장제적 절대 권위를 가진 총수가 발언하면 복지부동하던 거대 조직이라도 일거에 각성하고 혁신하여 초일류가 될 수 있다는 착각도 싱글주의 환상이다. 여기에는 삼성도 한국도 다 같이 유교문화 충효사상에 뿌리 내리고 있어서 누구 리더가 강력하게 몰아붙이면 구성원 대중은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희망사항도 섞여 있다. 그래서 삼성도 성공했고 인천공항도 세계 최고가 된 것처럼 정부도 정치도 일단 국가개조 폭죽 한 방 터뜨리면 잘 풀릴 거라는 맹신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이런 정부 몸짓이나 싱글 KT를 작위해낸 발상도 안쓰럽지만 죄다 도박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잘못 받아들인 싱글주의 성공에 대한 착오에 다름 아니다. 원조 싱글 삼성을 제대로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싱글주의는 강력한 리더십이나 멋진 청사진, 혁신 이론 따위와는 상관없었다. 회사가 처음부터 임직원을 인정하며 시작하고 임직원은 더 나은 성과를 보이기 위해 치열한 인정투쟁을 유감없이 벌이게끔 만드는 상식이 관건이다.
퇴직 구조조정부터 하고 옥석 구분없이 총사퇴 총정리부터 할 요량이라면 기업과 나라에 충성할 목숨은 남아나지 않는다. 채용해놓고 의심해 내치는 기업, 임명해놓고 의심하며 싸잡아 묶어 단죄하는 정부라면 무너지는 망조를 피할 수 없다. 아무리 큰 위기가 와도 자기사람 한 명 한 명 지키지 못하는 경영자나 지도자를 반길 인심은 없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관심가는 <인정하고 인정받기>에서 출발해 초일류기업이 된 삼성 싱글주의를 정확하게 배워야 할 이유다. 요 사이 광고에서도 화제가 된 ‘의리’도 인간 상식과 본성이 묻어나는 공감에 목마른 코드 아닌가.
KT도, 정부도 자기사람이나 가까운 인연, 같이 고생한 동료에게 지·못·미(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변명 내뱉는 파탄만은 말았으면 좋겠다. 책임 엄중히 묻고 과거 악습을 도려내되 필요 이상 의심하여 진짜 일꾼과 충신들을 내모는 뼈아픈 실수만은 범하지 않기를. 변치 않는 진짜 싱글주의라야 좋은 사람 모으고 신명나게 만들어 힘든 기업과 나라를 살려낼 수 있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