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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규 싱글KT, 감원과 신사업 정리부터 하면...

2014-05-20 10:5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싱글(Single)  KT. 삼성이 싱글을 낳았고 싱글은 황창규 사장을 타고 와 KT혁신을 싱글주의로 정했다. 정부도 식은 땀 나는 2014년 5월 전대미문 균열을 국가개조라는 싱글주의로 극복하고자 애쓰고 있다. 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픈 싱글주의를 비장의 무기로 꺼내든 KT는 과연 정글 수만리 글로벌 미디어 생태계에서 서식해 나갈 수 있을까? 국가개조란 최종병기를 치켜 든 청와대는 악습 쉰내 나는 팔도 저잣거리를 한 방에 청소해낼 것인가? 싱글주의 내력과 착시, 환상을 들춰보면서 해법을 찾아보고 싶다.

싱글주의 연혁은 삼성에 있다. 인터넷 대중화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던 1998년 즈음, 삼성그룹 내부 전산망 인트라넷 이름으로 싱글(Single)이 전면에 등장했다. 당시 64개쯤 되던 삼성 계열사 수십만 임직원들은 직급이 다르고 직무도 다르고 사는 나라, 지역이 달라도 싱글이라는 둥지로 자연스레 깃들었다. 기능은 결제 올리고 메시지 공유하고 회의실 예약하는 지극히 사무적인 사내 포털 정도였지만 싱글은 운영 초기부터 구심점 허브이자 컨트롤 타워, 기업문화 지주로서 위력을 대대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 KT로고
이윽고 2000년 밀레니엄 시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싱글 삼성’이라는 마크가 모든 구성원들 뇌리에 굵게 아로새겨진 듯하다. 그 때부터 삼성은 소니와 노키아와 같은 전우들의 시체를 밟고 애플의 거센 태클을 피해가면서 초일류기업으로 급신장했고 한강의 기적에 버금가는 삼성 신화가 탄생했다. 그렇게 십 수 년째 세계시민들은 삼성신화를 목도하면서 한번 쯤은 ‘이상한 나라의 쌤썽(미국식 영어 발음)’을 떠올렸으리라 짐작된다.한국 사회, 한국 역사, 한국 사람이 곧 삼성인데 어쩔 땐 몹시도 심한 불일치가 드러난다는 얘기다. 나라도 분단되어 있고 정부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도 깊은 편에다 사회 소통이나 통합도 지리멸렬한 마이너스 후광효과를 삼성이 어떻게 극복해왔는가에 관한 호기심이기도 하다. 삼성을 연구하는 삼성학(學)을 논할 때 가장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이 바로 이 예외성이다. 삼성이 당연히 한국사회 부조리와 모순, 질곡을 반영하는 살아있는 유기체 조직임에도 결국 다르게 발전해온 원동력을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싱글 삼성으로 응집되어 나타난 이른바 ‘싱글주의’에서 답을 찾아보자.
 

   
▲ 황창규 KT회장
간단하진 않지만 싱글주의 핵심 가치는 인정(認定)이라고 본다. 삼성에는 창업주 선대 회장 때부터 전해오는 경구가 있다. 疑人勿用 (의인물용) 用人勿疑 (용인물의). 의심하였다면 쓰지 말고 사람을 쓰게 되었다면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과 만나 채용이나 협업이란 인연을 맺게 된다면 굳게 인정한다는 정신이다. 실력 본위로 평가해 재량권을 주고 뛰어나면 제일주의로 보상하는 인정 실천이 변치 않는 삼성의 맑은 공기로서 수십 년을 지탱해왔다.
 

이 인정의 힘은 참 대단하다.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철학자 헤겔도 인정투쟁이란 표현까지 해가면서 자기 존재를 보여주고 확인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을 꼬집어냈다. 바로 이 인정 경영에서 성공한 삼성이기에 관리의 삼성이란 애칭도 나왔다. 그룹 총수 병환이나 후계자 구도 지배구조 변화와 무관하게 오직 시스템이 일하는 삼성이라는 정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물론 이외에도 정도경영이나 신경영, 창조경영, 인재제일주의, 연구혁신 등 숱한 가치평가 항목이 있지만 우리사회가 닮고자 하는 싱글주의 핵심어로서 <인정>이라는 두 글자를 똑바로 봐야 하는 상황이 벼락같이 우리 곁을 찾아 왔다.
 

우선 첫 상황은 싱글 KT다. 신임 사장이 삼성 DNA를 심고자 싱글주의를 쳐다봤지만 첫 막 첫 장은 명예퇴직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20년 이전 근속자들 상당수도 몇 억이네 하는 돈을 인정하고 회사를 의심하며 굿바이 했다. 회사는 이전 정부, 이전 사장 사람들을 솎아내는 의심의 향연을 벌였다. KT가 승부를 봐야 할 IPTV나 스카이라이프 위성방송, OTT(over the top) 같은 첨단 미디어 플랫폼 등 사업들은 죄다 급격한 조직개편이라는 교체비용으로 말미암아 가라앉고만 있다.

KT는 싱글삼성과 같이 착착 뛰는 기업혁신을 자신하겠지만 사람부터 줄이자는 강박으로는 싱글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너무한 명예퇴직 이벤트는 인정투쟁을 갈구하는 인간 본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새 사업으로 일하고 인정받을 기회를 주지도 않고 퇴직 동문들만 양산하면 살아남은 자들까지 인정불인정 염려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맹목적 싱글주의 환상이 낳은 또 다른 패착은 청와대다. 여도 야도 좌도 우도 많은 이들이 내각총사퇴하고 거국내각 만들고 책임총리제하고 비서관 스태프들 싹 물갈이해야 한다고 떠든다. 화답해야 할 청와대로서는 이제 각론만 빼고 총론은 다 들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이런 급격한 기울기와 요동침을 지켜보면서 삼성이 본의 아니게 뿌려 놓은 싱글주의라는 폐해를 맞닥뜨리게 된다. 대통령이나 리더가 새 비전을 띄우면 그저 한 방향으로 쫙 줄 서고 달라지리라는 맹신이라면 이는 곧 거짓 싱글주의로 자라난다.

이건희 회장처럼 가부장제적 절대 권위를 가진 총수가 발언하면 복지부동하던 거대 조직이라도 일거에 각성하고 혁신하여 초일류가 될 수 있다는 착각도 싱글주의 환상이다. 여기에는 삼성도 한국도 다 같이 유교문화 충효사상에 뿌리 내리고 있어서 누구 리더가 강력하게 몰아붙이면 구성원 대중은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희망사항도 섞여 있다. 그래서 삼성도 성공했고 인천공항도 세계 최고가 된 것처럼 정부도 정치도 일단 국가개조 폭죽 한 방 터뜨리면 잘 풀릴 거라는 맹신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이런 정부 몸짓이나 싱글 KT를 작위해낸 발상도 안쓰럽지만 죄다 도박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잘못 받아들인 싱글주의 성공에 대한 착오에 다름 아니다. 원조 싱글 삼성을 제대로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싱글주의는 강력한 리더십이나 멋진 청사진, 혁신 이론 따위와는 상관없었다. 회사가 처음부터 임직원을 인정하며 시작하고 임직원은 더 나은 성과를 보이기 위해 치열한 인정투쟁을 유감없이 벌이게끔 만드는 상식이 관건이다.

퇴직 구조조정부터 하고 옥석 구분없이 총사퇴 총정리부터 할 요량이라면 기업과 나라에 충성할 목숨은 남아나지 않는다. 채용해놓고 의심해 내치는 기업, 임명해놓고 의심하며 싸잡아 묶어 단죄하는 정부라면 무너지는 망조를 피할 수 없다. 아무리 큰 위기가 와도 자기사람 한 명 한 명 지키지 못하는 경영자나 지도자를 반길 인심은 없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관심가는 <인정하고 인정받기>에서 출발해 초일류기업이 된 삼성 싱글주의를 정확하게 배워야 할 이유다. 요 사이 광고에서도 화제가 된 ‘의리’도 인간 상식과 본성이 묻어나는 공감에 목마른 코드 아닌가.
 

KT도, 정부도 자기사람이나 가까운 인연, 같이 고생한 동료에게 지·못·미(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변명 내뱉는 파탄만은 말았으면 좋겠다. 책임 엄중히 묻고 과거 악습을 도려내되 필요 이상 의심하여 진짜 일꾼과 충신들을 내모는 뼈아픈 실수만은 범하지 않기를. 변치 않는 진짜 싱글주의라야 좋은 사람 모으고 신명나게 만들어 힘든 기업과 나라를 살려낼 수 있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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