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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비온 뒤 무지개 기다리는 STX·성동조선 '희망 놓지 않아'

2018-03-18 22:04 | 박유진 기자 | rorisang@naver.com
[미디어펜=박유진 기자] 비온 뒤 땅이 굳고 무지개가 온다고 했던가. 지난 16일 오전 9시 경. 경상남도 창원시에 위치한 STX조선해양은 공사기간를 맞추기 위한 생산 작업으로 분주했다.

이른 아침까지 비가 내린 탓인지 작업장은 침체돼 있었지만 동요하는 직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각 공장 한켠에 울려퍼지는 쇳소리로나마 서울에서 온 손님에게 간간히 생존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라인딩 작업에 분주한 STX조선해양 근로자의 모습/사진=미디어펜


"배를 인도하기 전 후행 작업으로 드라이도크에서 안벽 작업을 진행하는데 쉽게 말하면 여기다 배를 띄워놓고 물을 채워넣은 다음에 케이블 결선, 파이프 용접 등을 테스트 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걸 거치면 시운전에 들어가고 이상 없으면 배가 최종적으로 인도되죠."

공두평 총무보안팀 부장은 조선업계 출입이 처음이라는 기자의 말에 물이 차 있는 드라이도크장 앞에서 직접 안벽 작업의 원리를 설명했다.

이날 작업장의 공정률은 40% 단계인 선행 작업만 진행중인 상태였다. 도크게이트에서 선박의 완전한 형체는 볼 수 없었지만 1만1000t급 PC선이 제작되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STX조선은 이 선박을 무사히 인도한 뒤 추가로 수주받은 PC선 물량도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도크게이트에 선박 없이 물이 차 있는 모습./사진=미디어펜



야드를 한바퀴 돌고 난 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공 부장은 서류더미부터 내밀었다. 회사의 생산현황과 실적, 경쟁력 분석 등이 담긴 내용이었다.

그는 "중형조선소로는 지식재산권 출원 건수가 1151건으로 세계 4위권 안에 들고 가스선과 관련된 특허 등록 기술도 33건이나 된다"며 "중형 탱커인 4만~8만t급의 LR1, MR 등에서도 수주 물량이 세계 1~2위를 다투는 만큼 향후 대형 선박 대신 중형선 위주로 수주에 나설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정부가 중형 탱커 수주 면에서 STX조선의 건조 경험을 높게 샀던 만큼 RG발급(선수금환급보증)만 제대로 된다면 경영 정상화에는 무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노사협약서 제출과 관련해서는 어두운 모습을 보였다.

생산직 인원의 75%를 감축하는 문제에 대해 아직 노사간 협의가 끝나지 않았고, 2013년부터 이어진 대대적인 구조조정 탓에 한때 4000여명에 달하던 직원 수가 올해 초 1300여명까지 줄어드는 등 기존 인력 추가 해고 시 공정에 한계가 있어 확약서 제출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확약서 미제출 시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은 추가 수주 물량에 대해 RG발급도 불허한다는 방침이라 걱정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에 그리스 선사로부터 발주받은 PC선 물량에 대해 옵션 계약분 4척의 추가 발주 의사가 왔지만 RG발급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계약 협의에 나서고 있다"면서 "정부와 채권단은 컨설팅 직후의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확약서 제출로 일정을 또 다시 미뤄 우리도 4월 말까지 수주 계약을 미뤄달라고 요청중인 상태다"고 말했다.

작업이 이뤄지지 않아 천막으로 덮여져 있는 강재의 모습./사진=미디어펜



STX조선해양에서 약 1시간을 달려 통영시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에 도착했다. 정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선박 제작의 기본이 되는 강재가 천막을 덮은 채 작업 재개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현재 성동조선해양의 모든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정부의 법정관리 방침이 발표된 지 8일이 지난 시점에서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도 모두 끊겨 당분간 신규 수주도 불가능하다.

"남들은 땅을 파서 그 위에 물을 채워넣고 선박을 건조하는 드라이도크를 채택 했는데 우리는 육상건조 기법을 사용했다. 물을 뺏다 넣었다 할 필요없이 육지에서 바로 건조하니 환경오염도 줄고 생산률도 우수했다.

야드를 돌며 드라이도크와 육상건조의 차이를 설명하는 성동조선해양 관계자의 목소리에는 '세계 최초 육상건조 공진수 개발사'라는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방문 취재 요청에 전날까지만 해도 한사코 거절 의사를 밝혔던 이였다.

성동조선은 지난 2007년 육상에서 선박을 종방향으로 로드아웃하는 빙식을 개발해 다음해 12월 17만dwt 벌크선의 건조에 성공했다. 당시 현대중공업 등도 육상건조 기법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종방향으로 로드아웃 한 시도는 세계 최초였다.

성동조선이 육상에서 셔틀탱커(해상시추선에서 육지로 원유를 운송하는 배)를 건조한 모습/사진=성동조선해양 제공


그러나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조선업의 시황도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조선사의 수주 잔고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밀려나는 발주 물량을 제때 소화하고자 만들었던 육상건조 기법도 자연스레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넘쳐나는 수주 물량에 공기(공사기간)를 맞추기 위해서 육상건조를 개발한건데 물량이 뚝 끊기니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면서 "현대중공업도 결국 2009년에 육상건조를 중단했고 우리도 2016년에 건조에 필요한 설비(플로팅도크)를 매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어둑했던 하늘에 차츰 먹구름이 걷히면서 빛이 내렸지만 야드는 여전히 적막했다. '배 반 사람 반'이어야 할 조선소에 배도 사람도 없으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바닥에는 작업을 기다리듯 유지보수된 흔적들이 역력했다. 아직까지 수주 물량이 5척 남아 있어 2월까지 틈틈이 유지보수를 했다는 게 성동조선해양 관계자의 설명이다.

법정관리 이후 사실상 휴동상태에 들어선 성동조선해양의 모습/사진=미디어펜



현재 성동조선에 출퇴근하는 인력은 200여명 정도다. 유지보수팀과 영업팀, 설계팀, 총무보안팀 등은 비상근무를 서고 나머지 직원 1000여명은 모두 유급휴직 중에 있다.

휴직 인력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통해 급여의 70% 정도에 달하는 비용으로 생계를 유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디어펜=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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