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되었다. 현 정부에 들어서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동시에 수감되는 부끄러운 꼴을 전세계에 보이게 되었다. 구속 사유는 다르지만 20여 년 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함께 구속되었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이 나라 전·현직 공직자 중 사람을 표적으로 끈질기게 파헤치고 몰아붙이는 표적수사를 감당해 낼 사람이 있을까마는, 우선 이 전 대통령 구속 사유로 입에 오르내리는 폭로들이 낯뜨겁고 너절하다. 그것도 대통령 재임 당시의 최측근이란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불어대면서 나라와 국민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전직 국회의원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3가지 중 하나"라며 진보성향 라디오방송에 폭로한 비리가 "부인이 명품백 한 개와 미화 3만 달러를 받았다"는 것이다. 혐의 당사자나 폭로자나 한심하고 쪽 팔리긴 마찬가지다. 여염집 아낙네 한 사람과의 악연이 대통령 본인은 물론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뒤집어놓은 비극에 이은 우리의 또 하나의 낯뜨거운 모습이다.
며칠 전 니꼴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전 프랑스 대통령이 경찰에 구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모델 출신의 가수였던 부인 브루니(Carla Bruni)와 해변에서 여름 휴가를 즐기던 모습들이 먼저 떠올랐다. 대통령 부인이 '명품백 한 개와 3만 불'을 뇌물로 받았다는 우리의 옹색한 상황과는 대조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직전 당시 카다피 리비아 대통령으로부터 최대 5000만 유로(약 660억 원)의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연구위원이자 아시아 전문가인 역사학자 마이클 오슬린(Michael Auslin)은 2017년 1월 출간된 그의 저서 'The End of the Asian Century'(2017. 6. 국내에서 '아시아 세기의 종언'으로 번역 출간)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일을 밀어붙이는 능력 덕택에 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던 대통령이었지만, 나라를 경영한다는 것이 회사의 이사회를 운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줬다…이 전 대통령도 퇴임 후 친인척과 정치적 동지의 부패스캔들로 곤혹을 치러야 했다."고 썼다.
110억원대 뇌물 수수와 340억원대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서 나와 서울동부구치소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부패 문제는 새삼스런 일도 아니지만,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의 절망한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조국을 "살아있는 지옥(Hell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스스로 자기는 우파도 좌파도 아니며 중도실용주의자라고 했다. 광우병 사태로 전국이 요동칠 때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들었다"며 보수우파 정서와 거리를 뒀다. 그 결과 이 전 대통령이 검찰에 불려가고 구속, 수감에 이를 때까지 그를 위해 단 한 명의 태극기 국민도 나서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 측근들마저 줄줄이 등을 돌렸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구속, 재판 때와는 달리 좌·우파진영 모두로부터 고립무의(孤立無依)의 처지가 된 모습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젊은이들이 자조적으로 외치는 '헬조선'이란 말이 새삼 떠오른다. '헬조선'이란 '지옥(Hell)'과 암울한 우리의 과거를 암시하는 '조선(朝鮮)'을 합성한 단어이다. 필자는 취업난과 비정규직 문제 등 청년층의 절망과 암담한 현실이 담겨있는 이 신조어에 공감해본 적이 없다.
'헬조선'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대체로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와 일치한다. 일본에서의 '욘사마' 열풍과 '한류붐'에 대한 역풍으로 한국을 혐오하는 움직임의 하나로 2004년경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의미로 '헬조센(ヘル朝鮮, Hell+朝鮮)'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곧이어 한국에서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힘든 처지를 비하하는 뜻으로 쓰기 시작했다.
전임 대통령 두 명이 구속된 모습을 보면서 '헬조선'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헬조선'이란 페시미즘(pessimism)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발아(發芽)하여, 광우병 소동의 이명박 정부와 대통령이 탄핵된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뿌리를 내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핵과 사드 문제, 탈원전 논란, 최저임금 인상, 청년일자리 정책 등 '좌파 포퓰리즘'이 한계를 보이는 가운데 대통령 주도의 개헌 추진 논란으로 '헬조선' 풍조가 만개(滿開)에 이를 지도 모른다. 핵을 앞세운 북한의 기고만장 앞에 기진맥진한 '헬조선'이 위태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놓고 야권은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고 여권은 "정치보복"으로 맞서고 있다. 적폐란 그야말로 '오랫동안 쌓여온 관행, 부패, 비리 등의 폐단'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 국민과 정치권의 의식 수준, 도덕성과 준법정신, 정부 조직과 제도, 업무처리 관행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교육, 의식개조, 제도혁신 등의 차원의 문제이지 개인의 비리를 "적폐"로 몰아가려 해서는 안 된다. 우선 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집요한 표적수사 모습도 정치적 보복성 '적폐'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헬조선'이란 오명을 스스로 털어내려면 퇴임 후 전직 대통령들의 이런 참담한 모습들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차제에 다른 대통령제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현황을 비교해 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 국가 의전서열(Order of precedence)이 대통령, 부통령(상원의장이 겸직), 주지사(해당행사지 주지사), 하원의장, 연방대법원장, 전직 대통령 및 미망인의 순으로 명시되어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대통령, 총리, 상원의장, 하원의장, 전직 대통령의 순이며, 대부분의 대통령제 국가의 의전서열도 이와 유사하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의전서열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여당 대표, 야당 대표 등의 순으로 전직 대통령은 의전서열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 예우의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