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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P연재]소설 손양원:용서-아홉가지 감사-6

2018-04-12 09:5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이념의 전선이 판치던 시절,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입적해 키우며 진정한 용서의 길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목회자 손양원. 분열과 갈등, 증오로 치닫는 이 시대에 그가 던지는 울림은 감동을 넘어 가슴 묵직한 과제를 던진다. 미디어펜은 소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신용구 원장의 '소설 손양원:용서'를 연재한다. 소설을 통해 진정한 용서와 화해 그리고 우리사회의 병폐인 갈등과 증오를 치유하는 길을 묻는다. 필자인 신 원장은 용서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준 손양원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독자들 역시 손양원 목사의 인생을 통해 용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한번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편집자 주]


아홉가지 감사-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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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순천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동인·동신 형제가 세상을 떠난 지 엿새째 되는 날로  이들 형제의 발인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념 대결의 희생양이 된  두 형제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파가 새벽부터 각지에서 쉴 새  없이 몰려들어 발인식이 열리는 동도(動島)는 무려 천오백 명이 넘는 조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청명한 하늘에서는 이들 형제가 자신들이 저승으로 가는 길에 자리를 함께 해 준 세상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듯 300장이 넘는 만장이 펄럭이며 동도 하늘을 뒤덮었고, 땅에서는 이에 화답한 순백의 두루마기와 하얀 소복이 대지를 덮어 온 세상에 흰 국화송이를 점점이 뿌려 놓은 것 같았다. 

이처럼 외양만을 볼 때면 이들 형제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지켜보는 추모의 열기가 참으로 뜨겁게 느껴졌지만, 왠지 주변 분위기는 살얼음판으로 걷듯 조심스럽고 어딘지 모르게 을씨년스런 삭막한 느낌도 들었다. 

사람들의 얼굴도 다소 겁을 먹은 듯 위축이 되어 보였고 잔뜩 긴장을 하고 있어 분명 엄숙하기만 한 여느 장례식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나흘 전에 상강이 지나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 진 탓도 있었지만 이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남해를 가슴으로 품고 있는 신풍리는 한 겨울에도 얼어 죽은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겨울을 모르는 따뜻한 남쪽나라였다. 

그러므로 발인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있는 이유는 날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다만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눈을 돌려 주변을 한순간만 살펴보아도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무장 군인과 무장 경찰이 발인 식장 곳곳에서 경계를 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인 식장에 참석한 대다수 사람들은 순수한 조문객들이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는 일부 불순한 생각을 가진 이들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주로 박태수를 용서하고 풀어주도록 사령관에게 청원을 넣은 손양원의 처사에 대해 크게 반발한 극우파들이었는데, 이들은 박태수에 대한 계엄 사령부의 처분까지 수용하길 거부하며 자신들의 손으로 박태수를 꼭 처단해, 어떤 일이 있어도 좌파들이 벌인 행동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한 대가를 꼭 치르게 하고 말겠다는 강력한 보복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들이 당국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르지 않고 개별 행동에 나선 것은 공산당에 대한 이들의 개인적인 증오심 탓이 컸다.

이들 극우파들의 상당수는 북한 공산 정권에서 실시한 강제 토지개혁으로 자신들의 땅을 무상으로 빼앗기고 월남한 사람들이었다. 수백 년 동안 삶의 터전을 삼아 온 땅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잃어버린 처지다 보니, 이들이 공산당 알기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튼 이들이 소속된 서북 청년단은 손양원이란 목사 때문에 폭동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여 사형 위기에 처한 공산당원이 사형 일보 직전에 방면이 된 기상천외한 사건이 호남에서 벌어진 것을 알고는 어이없어 하며, 자신들의 원한에 대한 앙갚음은 물론이고 흐트러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공산당에게 본때를 제대로 보일 필요가 있다는 대의명분에 따라 박태수 처단을 위해 단원 여러 명을 이곳에 급파한 상태였다.

이를 사전에 파악한 당국이 행여 있을지도 모를 불상사를 막기 위해 계엄군 가운데 1개 중대 병력과 여수 경찰서와 순천 경찰서 관내의 유용 가능한 경찰 인력을 총동원해서 이곳에 보낸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어 언제 총구가 뜨거운 불을 뿜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아무튼 이 발인 식장엔 단순한 추모 분위기와는 다른 공포와 두려움, 증오와 분노, 복수와 용서, 존경과 경악, 안타까움과 절망이라는 다양한 빛깔의 대립된 감정들이 혼재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더해 볼썽사나운 또 다른 이질적인 불편한 감정이 하나 더 있었다. 이것은 질투와 시기라는 감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박태수를 용서한 손양원의 대범한 행동에 대해 예수의 심장을 가진 성인이라 그를 칭송했지만, 반대로 손양원의 행동을 두고 색안경을 낀 채 입방아를 찧어대는  일부 몰지각한 무리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주로 해방 전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손양원에 대한 목사 안수를 외면했다가, 해방이 되자 화들짝 놀라 손양원에 대한 목사 안수를 추진했던 일부 교계 인사들이었는데.

손양원 때문에 자신들이 여러 번 망신을 당하고 체면을 구기다 보니 차마 내색은 못했지만 그에 대한 눈길이 평소 곱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손양원이 박태수를 용서한 사실을 두고 세상 사람들이 갑론을박하며 시끄러워지자 그를 헐뜯을 목적으로 손양원이 세상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그가 담임 목사를 맡고 있는 애양원 교회의 세력을 더 크게 확장할 욕심으로 자식의 죽음을 이용해 쇼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고, 결국 생각이 다른 여러 세력이 충돌해 이 발인식이 난장판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는  묘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 은근히 흥미로운 눈으로 발인식의 시말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듯이, 손양원의 이름이 난 이름이 되고 여기에 덧붙여 사안의 특수성까지 겹치다 보니 사람들의 시비에 휘말리는 일을 피하기는 밧줄을 바늘귀에 끼우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는 일이었다.

영화 'MY WAY' 스틸 컷.


발인식 사회는 교회의  온갖 궂은일은 마다하지 않는 박 집사가 역시 맡았는데, 행사 진행을 일상적으로 해왔던 탓에 여수가 생긴 이래 초유인 천오백 명이나 되는 엄청난 문상객과 삼엄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박 집사는 행사를 차분하게 진행했다.

여수경찰서장이 대독한 계엄사령관의 추모사에 이어 순천 사범 동기들의 추모사가 막 끝이 났고, 드디어 박 집사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상주 대표의 답사가 있을 것이라 소개를 하자 지금까지 가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일제히 앞으로 쏠렸다.

식장 맨 앞자리에 자리한 손양원 목사 한쪽 옆엔 그의 아내 정양순이 또 다른 한쪽엔 뜻밖에도 동인·동신 형제를 죽인 박태수가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박 집사의 호명에 상복을 입은 손양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도(東島)의 넓은 풀밭을 가득 메운 문상객을 향해 허리 굽혀 정중한 인사를 한 다음, 앞쪽에 자리를 잡은 내빈석에도 가볍게 목례를 올리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병색이 짙은 그의 아내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잃은 슬픔에 통 먹지를 못해 그의 혈색도 병자처럼 몹시 파리했지만 목소리는 항상 그러했듯이 카랑카랑 한 게 힘이 넘쳤다. 

"존경하는 내빈 여러분, 농사 일로 한창 바쁠 이 시기에 만사 제쳐두고 제 아들놈의 장례식장에 발걸음을 하여 주셔서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앞서 많은 분들이 이 이야기를 했기에 제 아들의 죽음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그 경위는 다시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군 병력과 경찰 인력까지 동원이 되어 이 발인식에 경계를 서야 할 만큼 이 발인식의 성격이 복잡해졌다는 것이 상주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소치라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기왕의 일이 되었으니 외람되지만 이 일에 대해 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손양원이 손짓을 하자, 박태수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손양원 곁에 다가가 섰고, 손양원 옆에 선 그가 동인·동신 형제를 죽인 박태수란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고요하기만 했던 발인 식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지지 시작했다.

"저 새끼를 죽여라, 죽여!"

평소 동인·동신 형제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며 저주를 퍼부었고, 그를 처치하고자 몰래 발인 식장에 잠입한 서북단원들과 이들의 준동을 막고자 나선 경찰의 은밀한 대응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었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 이 엄숙한 발인 식장은 여차하는 순간 쑥대밭이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의 흥분과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손양원은 흔들림 없이 자신이 준비해 온 인사말을 차분히 전했다.

"여러분, 오늘 이 발인 식장이 여느 발인 식장과 달리 경찰까지 출동하게 된 이유를 다 아시는지요? 다 아이 때문입니다, 제 아이들을 죽인 바로 그 녀석입니다."

손양원의 말에 다시금 장내가 술렁거렸지만, 손양원의 한 마디 말에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장내가 다시금 숙연해졌다.

"그런데 저는 이 아이를 제 아들로 삼았습니다." 

손양원은 곁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박태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말을 계속했다.

"이 아이를 죽이기 위해서 오신 분이 있다면 이 아이의 목숨을 빼앗기 전에 먼저 제 목숨부터 앗아가 주십시오, 저는 아들을 한번은 잃었지만 두 번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에 어떤 분들은 이 자리에서 제가 아주 거룩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일단 저는 그런 재주는 없습니다. 오로지 아버지 된 자로서 아들이 지은 죄와 허물에 대해 여러분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마이크에서 손을 뗀 손양원이 갑자기 땅바닥에 엎드렸고 박태수도 덩달아 함께 엎드려 사죄의 큰 절을 사람들에게 올렸다.

사람들은 살인자와 그에게 죽임을 당한 피살자의 아버지가 부자지간이 되어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하는 전대미문의 이 기이한 장면에 할 말을 잃은 듯 모두 멍한 얼굴을 하고 이들이 올리는 사죄의 인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꼬챙이처럼 비쩍 마른 그의 아내 양순 씨 역시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아들로 받아들이게 된 이 현실이 기가 막힌 듯 볼품없이 쪼그라든 앙상해진 가슴을 토닥이며 소리 없이 눈물만 훔치고 있었다.

살인자를 용서한 것도 모자라 그를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인 손양원의 파격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듯 모두의 눈이 하나 같이 휘둥그렇게 변해 있었다.

호주머니 속의 권총을 만지작거리며 기회를 엿보던 서북청년단 단원들 역시 놀란 나머지 어찌해야 좋을지 상황 판단이 서지 않아 슬그머니 권총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피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발인 식장에 박태수를 참석시킨 것도 그가 참석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사람도 손양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박태수를 굳이 발인 식장에 얼굴을 내밀게 한 것은 특별한 상황은 그에 맞는 특별한 방식으로 돌파하지 않으면 문제해결이 지지부진 어렵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손양원의 역발상이 주효했던지 부자지간이 된 두 사람이 넙죽 절을 올리고 나서부터는 순식간에 장내 소란이 자취를 감추었고 모두가 손양원의 입을 주목하며 그의 말에 귀만 기울였다.

손양원은 박태수를 일으켜 세운다음 다시 제 자리로 돌려보내고는 사람들의 당혹스런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고 있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여러분, 제 자식을 죽인 아이를 제 자식으로 삼은 저의 행동이 여러분은 참으로 납득이 안 될 것입니다. 사실 제 아내도 제가 그 생각을 입에 올렸을 때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라고 펄쩍 뛰면서 화를 냈습니다.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이 아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평생 한 번도 입에 대지도 않았던 독주를 아내 몰래 취하도록 밤새 마셔도 보았습니다. 술병을 들고 나발을 불고 토하고 주정뱅이처럼 하느님을 원망도 해 보았습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따져 물었습니다.

하느님은 대답이 없었고, 제가 아무리 울부짖으며 소리를 쳐도 제 고통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아니면 일부러 외면하시는지 하여튼 하느님께서는 냉정하게도 엄한 아버지처럼 침묵만 지키고 계셨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 헤매어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저는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하느님과 세상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고 화를 삭이지 못해 속을 끓였습니다. 욕을 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이젠 지쳤는지 불현듯 제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를 깨닫고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경상도 말로 덩치가 작은 사람을 보고 모타리가 작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저는 모타리가 아주 작아 쥐새끼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목사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평소 저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얼 보고 저에게 그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베풀고 관심을 가졌을까요? 아마 잘은 모르지만 저의 어느 한구석에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무언가 있어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죽은 아들 때문에 가슴을 치며 울고, 사람이 밉고 세상이 미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제 모습을 한번 되돌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 상상이 되시는지요? 저는 이거야 말로 날라리 개목사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날라리 목사를 사람들이 존경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저는 쥐구멍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습니다. 명색이 목사인데, 정말 목사로서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을 어리석게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에게 매질을 하고 엄하게 야단을 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미워서이겠습니까? 아니면 자식이 올 바르게 자라도록 깨우쳐주기 위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 때문이겠습니까?

내빈 여러분 어느 분도 제 말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의 매는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연히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육친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창조한 자신의 피조물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고통을 주거나 시험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어리석게도 제 고통에 빠져서 이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시련 속에 숨겨 놓은 깊은 하느님의 뜻을 보지 못한 채 단지 지금 제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고 화만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배고픈 아이가 당장에 빵을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원망하며 떼를 쓰는 것과 제 행동이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두 아들이 죽음을 통해 제가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무려 아홉 가지가 넘는 감사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손양원은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잠시 말을 멈추었고, 그가 호흡을 조절하는 사이에 사람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손양원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진솔한 자기 고백은 삼인삼색 처한 입장과 처지에 따라 생각이 각기 달랐던 사람들의 눈과 귀를 열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이것은 그 어떤 강력한 권력도 소박한 진실의 힘을 이길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러분, 제가 믿고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는 구원을 약속하는 종교입니다. 동시에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인들이 말입니다, 제일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순교입니다. 하느님의 성스러운 말씀을 세상에 전하다가 죽게 되는 순교입니다. 그런데 이 형편없는 엉터리 목사의 아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 죽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영광스런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제가 첫 번째로 감사히 여기는 일입니다.

둘째로는 순교라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순교의 귀한 자식을 제 아들로 둘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어찌 또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는 가장 귀한 조상의 제사상에 제일 귀한 제물을 올려놓습니다. 우리의 제사의식이 이러하듯 여러 자식 가운데 가장 애정을 많이 쏟았던 맏이와 둘째를 거룩한 순교의 제단에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또한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손양원이 보물 보따리를 풀어놓듯 자식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새로이 깨닫게 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씩 꺼내어놓자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흘러 나왔고, 손양원은 사람의 영혼을 연주하는 연주자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다보면서 그들의 가슴을 쥐락펴락 하며 이들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 대었다.

"네 번째는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한 일인데 두 아들을 영광스런 제단에 바치게 되었으니 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섯째는 예수 믿다가 병들어 누워 죽어도 복이라 했는데,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 제 아들이 죽었으니 이 또한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섯 번째는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큰 아들이 죽어서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으로 가게 되었으니, 이것을 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얘기가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흐느낌이 서서히 비탄으로 바뀌었고, 끝내는 그가 꺼내 놓은 일곱 번째 감사의 말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참말이지 감사할 일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무런 실익도 없는 깊은 슬픔에 빠져 제 자신을 학대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어리석은 짓만을 일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것을 용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 아들을 죽인 그 아이를 용서하고 회개시켜 제 큰 아들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랑을 마음을 제게 허락하신 주님께 또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의 저의 일곱 번째 감사입니다.

여덟 번째는 제 아이들이 순교를 하고 이것이 새로운 열매를 맺어 앞으로 무수히 많은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을 생각하니 이 또한 감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고, 고통과 시련을  통해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고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주셨으니 이 또한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손양원의 아홉 가지 감사에 대한 유가족 답사가 끝나기도 전에 박태수를 처치하러 왔던 서북 청년단 요원들은 할 말을 잃어버린 굳은 표정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떴고, 손양원의 답사가 끝나자 문상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일어나 천지간을 울리는 요란한 박수로 손양원의 위대한 사랑에 경의를 표했고, 하늘을 메운 300개의 만장도 바람에 힘차게 휘날리며 이들의 박수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계속> /신용구 소설가·정신과전문의  

[신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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