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지역구는 경기도이다. 직접 투표권을 행사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여야의 대표 후보가 성향과 이력 상 양당의 기존 이미지와 달라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두 후보는 다채로운 공약을 내세우며 유권자 표심을 잡는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도권 주요 후보들에 대한 공약을 두루 살펴본 가운데,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복지 확대, 안전 보장, 환경 개선, 경제 활성화 등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약이 난무했다. 눈길을 끈 공약은 하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경기지사 후보의 ‘교육공무원’ 관련 공약이다. 민간보육교사 7만명을 교육공무원으로 삼겠다는 공약이다. 참고로 경기도 전체 교육공무원 수는 11만명이다. 김 후보는 이를 18만명으로 늘리겠다는 얘기다.
도 넘은 김진표후보의 매표행위
김진표의 공약은 특정집단을 향한 전형적인 매표(賣票)행위이다. 일각에서는 공약 실현에 따른 수혜가 보육교사 7만명을 비롯한 그들의 가족에게까지 갈 것이며 그 수는 20만명에 달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당신들 민간보육교사 7만명에게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겠으니, 나 김진표에 대한 자발적인 선거운동원으로 뛰어주시오”라는 구애의 몸짓이다.
▲ 새정치연 김진표 경기지사 후보가 23일 보육교사 교육공무원화 공약 질문에 소신을 밝히고 있다. |
열흘 남은 선거기간동안 경기도 보육교사 7만명은 주위 젊은 애기엄마들의 선택이 김진표에게 향하도록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게 뻔하다. 그들의 투표율은 100%에 가까울 것이다. 유권자의 투표권은 이런 식으로 정치인에게 팔리고 있다. 투표권은 이렇게도 가볍고 솔직한 것이었나 자문해 본다. 투표권, 더 나아가 선거권-참정권은 국가발전 향방을 가르는 국민의 선택이다. 정해진 임기동안 나라와 지역을 이끌 지도자를 선출하기 때문이다.
현대는 보통선거의 시대
6.4 지방선거가 열흘도 남지 않았다. 성인 남녀노소면 누구나 소중한 참정권을 행사하는 시간이다. 대한민국에서 선거연령은 만 19세 이상이다. 현대 모든 국가에서는 만 21세 이상의 모든 성인에 대해 선거권(選擧權, 유권자로서 투표를 할 수 있는 참정권)을 부여한다.
부여 기준은 인종, 성별, 지능지수, 외모, 거주지, 종교 등에 있어서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는다. 현대는 바야흐로 보통선거의 시대이다. 반면 과거 대부분의 나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 글을 아는 사람,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 백인, 남성, 재산을 소유한 사람, 군인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했다. 물론 아직까지 일부 국가에서는 현역 군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지 않기도 한다.
선거권과 참정권의 보장, 그리고 보통선거
선거권은 넓게 보아 참정권에 속한다. 참정권(參政權, suffrage)은 국민이 국가 정책이나 정치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전반을 가리키며, 선거권 및 피선거권, 공무담임권 등을 포함한다. 참정권은 공민권(公民權)이라고도 불린다.
▲ 2007년 18대 대선, 충북 옥천군 옥천읍 제5투표소에서 고영창씨가 목발을 짚고 투표에 참여했다./뉴시스 |
근대적인 참정권은 13세기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에 귀족 계급의 참정권을 명시한 이래로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참정권의 확대는 신분 계급의 철폐로부터 시작되었다. 신분의 철폐와 맞물려 재산권에 따라 참정권의 행사가 법적으로 명시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는, 여성 해방 운동과 함께 남성의 보통투표에 이은 여성의 참정권 또한 많은 국가들에서 차례로 보장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1948년 헌법제정을 통해 성인남녀의 참정권 및 보통선거제도가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보통선거란 연령과 성별 이외의 자격 조건을 두지 않고 국민 모두에게 선거권, 즉 참정권이 주어지는 선거를 말한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도 보통선거이다. 여성 참정권이 일반화된 현재에는 연령만을 투표에 참여할 자격조건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보통선거라도 경우에 따라 범죄자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보통선거의 역사, 재산권의 보장과 맞물려
1776년 독립선언을 발표한 미국의 선거 제도는 보통 선거가 아니었다. 미국의 초기 선거법을 보면, 참정권은 백인, 남성, 21세 이상, 재산 소유자, 납세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부여되었다. 1832년 법개정 전까지 영국 농촌지방에서는 연 40실링 이상의 생산이 있는 토지를 소유한 자에게만 참정권이 주어졌다. 개정 이후에도 영국은 도시 시골을 가리지 않고 일정 금액 이상의 부동산 소유자나 기준 이상의 지대를 지불하는 임대주에게 한하여 참정권이 부여되었다. 1861년 통일된 이탈리아도 초기 참정권은 재산이 있는 21세 이상의 남성으로 글(이탈리아어)을 아는 자에게만 부여하였다.
참정권의 시초인 영국 마그나카르타의 주요 조항 중 일부를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과세 혹은 봉건 지원금은 귀족들의 자문을 거치지 않으면 부과할 수 없다. 자유민은 동등한 신분을 가진 자에 의한 합법적 재판 혹은 국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체포, 감금, 추방, 재산의 몰수 또는 어떠한 방식의 고통도 받지 않는다.
▲ 마그나카르타(사진=국가기록원 기록문화 국가브랜드화 추진단 제공) |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참정권 역사를 살펴보면 읽을 수 있는 동일한 코드가 존재한다. 바로 재산권이다. 모든 이가 안전하게 자신의 재산을 향유할 수 있으며, 아무리 하찮은 사람이라도 최고 권력자로부터 억압받지 않고, 누구도 만족스러운 대가를 받지 않는 한 어떠한 것도 빼앗기지 않는다는 정신 말이다.
요컨대 국가와 정부는 선거라는 행위 이전에 존재했으며, (자연법에서 비롯되는) 재산은 정부 수립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재산을 소유할 권리는 왕이나 정부의 변덕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산권이 모든 권리의 기반이기에 정부의 최우선적인 목적은 재산권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이에 관하여 1721년 영국 정치 평론가 존 트렌차드는 “모든 인간은 재산을 획득하고 보호하려는 열정에 활기를 띤다. 왜냐하면 재산이 독립성을 가장 잘 지탱해주기에 모든 사람이 재산을 열정적으로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참정권의 의미, 개인의 재산을 어떻게 보호하고 더 잘 키워나갈지에 대한 고민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자유, 땅, 즉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를 만들었다. 재산권이 없다면 참정권을 포함한 다른 권리가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참정권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투표는, 국민이 (생계에 여념이 없는) 본인들을 대신할 대표자에게 정해진 임기동안 재산 보호에 대한 관리를 위임한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투표권, 선거권, 참정권 등은 개인들의 재산을 어떻게 보호하고 더 잘 키워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전제로 삼아 국가 및 지역에 대한 발전방향을 정하는 선택이다. 선거는, “조세 과정을 거쳐 개인 재산 일부를 떼어 적립한 국가자산, 지역자산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키워나갈지”를 대리하는 자산관리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선출된 자산관리자는 계약기간동안 국민(지역민)의 공동자산을 관리하고 사용을 주관한다. 영화에 나오는 집사처럼 말이다.
매표행위, 보통선거를 해치고 참정권 의미 훼손
유권자들은 조만간 공복이 되기를 소망하는 집사들의 수많은 공약을 살피고 나름의 기준에 입각하여 선택할 것이다. 그 기준은 개인별로 다양하다. 주로 정치적 가치기준이나 후보자의 이념 선호도에 따라 정하지만, 또 다른 상당수의 시민들은 어떤 후보를 뽑아야 본인의 삶이 얼마나 더 나아질 수 있는지 여부 등 현실적인 기준으로 접근한다.
▲ 지방선거 공식 선거 운동이 전국적으로 시작된 2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동 주민센터에 부착된 선거벽보를 유권자가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
어느 선택이든 근본적인 기준은 지역민의 공동자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잘 쓸 수 있을 것인가이다. 어느 지역이든 쓸 수 있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자원으로는 한정된 일 밖에 하지 못한다. 자산관리자의 재량권은 자원을 사용하는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다. 앞서 예로 든 김진표 후보는 그 우선순위에 있어서 경기도 천만 도민 보다 7만 보육교사를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보통선거’의 정신을 해치는 짓이다.
지방선거를 통해 국민의 공복으로 거듭날 당선인들의 수준은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 시민들의 수준에 달려 있다. 일부 후보들의 매표행위에 편승하는 것은 유권자가 본인들의 공동자산은 물론이거니와 참정권의 의미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다. [미디어펜 =김규태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