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의 문향(文香)이 있는 낚시여행-안흥 신진도 우럭낚시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문학박사 |
물고기를 잡아서 먹기 위한 낚시는 아마도 선사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낚시가 성행했고, 조선 후기의 정약용 같은 이도 낚시를 매우 좋아해 그의 소박한 꿈은 작은 배를 타고 한강에서 이른바 장박낚시를 하는 것이었다(장박낚시는 여러 날 하는 낚시를 말한다), 전통적인 낚시는 혼자서 비교적 간단한 장비로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럭선상낚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럭선상낚시는 강이나 바닷가 호수 등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개인적인 낚시가 아니다. 낚싯배가 있어야 하고 혼자 배를 타면 경비 부담이 많음으로 여러 명이 출조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적극적인 레저 활동이란 개념이 생겨야 가능한 낚시다. 낚시꾼, 낚싯배, 출조 항구, 또 이를 엮는 낚시회 등 여러 인프라가 갖추어져야 가능한 낚시가 바로 우럭선상낚시인 것이다. 1968년 한 기사를 보면 자못 흥미롭다.
드릴 만끽- 6척의 낚시배로 40여명의 조사 바다낚시 즐겨
돗대기 시장을 방불게 하는 경향의 저수지에 싫증난 동호인들에게 보다 넓고 드릴있는 재미를 맛보게 하기 위해 국내 유일의 바다낚시회를 조직한 평화낚시회는.... 인천으로 출조하여 준치, 우럭이, 조부락 등 큼직큼직한 고기를 10여수 내지 3, 4관씩 잡았다고....(1968.6.18. 매일경제 기사)
이 기사는 몇 가지 사실을 알려주는데, 1968년 당시 이미 여러 저수지에는 사람들이 몰려 바글바글 했다는 것이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평화낚시회가 조직되어 1968년 40여명이 첫 출조를 했다는 것이다. 이 당시는 물론 전문 낚싯배가 없었을 것이니 어선을 이용했을 것이고, 준치와 우럭, 노래미 등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3, 4관씩 잡았다는 것이 놀랍다. 3관, 4관이면 11kg에서 15kg 쯤 된다. 10여수 잡았다고 했으니 마리당 1kg에서 1.5kg 쯤 된다. 그것도 인천 앞바다에서! 이 당시 여러 기사를 추적하면 당시의 낚시 풍경을 알 수 있다.
1969년에는 낚시회가 4개로 늘어나고, 출조지도 영흥도, 팔미도 등으로 확대된다. 아마도 폭발적인 조과가 보장되니 바다낚시에 눈을 돌리는 낚시꾼도 상대적으로 민물낚시에 비해 많아졌을 것이다. 요즘 장비가 발달하고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10kg 이상 잡는다는 것은 일 년에 한 두 번도 힘든데, 당시는 어떻게 보면 그냥 고기가 지천으로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우럭선상낙시는 인천의 남항부두와 만석부두가 우럭낚시의 메카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안흥(신진도), 오천, 안면도의 여러 항구, 홍원항, 군산, 격포 등지로 출항지도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이중에서도 태안군의 안흥항과 신진도항은 새로운 우럭낚시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태안 신진도항 전경 |
▲ 신진도항 좌측등대, 주말에는 낚시꾼들로 늘 붐빈다. 우럭 노래미 등이 잡히고, 밤에는 붕장어도 올라온다. 가을 이후에는 고등어, 학꽁치 등도 잡힌다. 접근성은 좋으나 씨알은 잘다. |
낚시장비도 혁명적으로 발전했다. 자세 채비에서 스피닝릴로, 스피닝링에서 장구통릴로, 또 전동릴로 바뀌었고, 또 낚싯줄도 나일론 줄에서 첨단의 합사줄로 바뀌었다. 배도 목선에서 철선으로, 또 요즘의 FRP 소재의 스피디한 배로 진화했다. 과거에는 섬 주위의 여밭에서 낚시를 했지만 이제 여밭에서 잡히는 고기는 씨알이 잘기에 인공어초와 침선 등에서 낚시한다. 획기적인 변화로는 선장이 경험에 의한 목측으로 포인트를 찾던 것이 이제는 각종 첨단 장치, 이른바 GPS와 어군탐지기로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럭선상낚시의 조과는 과거에 비해 점점 떨어진다. 그만큼 많이 잡아내기 때문이다. 우럭과 광어의 치어를 꾸준히 방류하지만 워낙 많은 낚시꾼들이 잡아대니 자원은 점점 고갈된 것이다. 이제 5kg만 잡아도 대박 수준이고 10kg 잡으면 거의 로또 당첨 수준이다.
▲ 아카시아철 우럭 출조의 아침. 뒤로 뜨는 해가 보인다. 꾼은 무엇을 생각할까? |
나는 미리 오랜 단골인 안흥 신진도의 태풍투어랜드의 용궁호에 예약을 해 두었었다. 서해 낚싯배의 경우 낚시가게와 낚싯배가 연결되어 있다. 낚시가게 소속(?)의 배가 여러 척 있고, 예약 사항이나 홍보는 낚시가게가 맡아서 준다. 낚시가게는 그 대신 채비나 미끼를 팔아서 수익을 올린다. 즉 낚시가게가 고객관리를 하고 선장은 조황을 올리는 데 전념하는 일종의 분업체계가 오래전에 이미 정착되어 있는 것이다.
태풍투어랜드는 인흥 신진도에서 대여섯 척의 배를 관리하는 낚시가게고 이 태풍투어랜드 소속의 은양호, 영복호, 항공모함호, 용궁호, 부길호 등은 낚시꾼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배들이다. 이 선단은 멀리 나가지 않고 주로 근해에서 포인트를 찾지만, 족집게 같이 포인트를 잘 알고 있고, 또 선상에서 매운탕을 끓여주는 등의 선상 서비스도 좋다. 무엇보다 선장들이 경험이 많고 여유들이 있어서 좋다.
▲서해의 궁시도. 활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궁시도다. |
아침 5시 30분 경 설레는 마음으로 배를 탄다. 오늘은 분명 조과가 좋을 것이다, 라고 예상한다. 상당 부분 그 예상은 틀렸지만 늘 아침에는 그런 생각으로 배를 탄다. 배는 호기롭게 신진항을 벗어나 바로 앞 가의도 부근으로 간다. 옹도나 궁시도 부근 어초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배는 선장 맘대로 가는 거다. 여기에 고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가는 거겠지 하고 선장을 믿고 신호가 오자 미끼를 담근다. 하지만 입질이 없다. 10m 어초에 소식이 없자 선장은 몇 차례 자리를 옮긴다. 10m 높이의 어초라면, 봉돌이 바닥에 닿고 난 뒤 8,9m 정도 릴을 감아서 올리는 것이 정석이지만, 좀더 수심을 깊이 줄 수도 있고, 덜 줄 수도 있다.
요컨대 우럭어초낚시의 핵심은 수심을 얼마나 주는가 인데, 이것에는 정석은 없다. 그날그날 상황에 다라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잘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날은 고기들이 어초 바로 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초 높이가 5m라면-선장이 스피커로 알려준다-봉돌이 바닥을 치고 5m 감고 있으면 입질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카시아꽃이 만발할 때면 수온이 적당해서 우럭이 뜨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필자가 올린 제법 큰 씨알의 우럭 쌍걸이. |
가의도 부근 어초에서 첫 입질이 온다. 작은 녀석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올리고 나니 쌍걸이다. 하지만 씨알이 작다. 선장은 씨알을 보더니 바로 배를 이동시킨다. 궁시도 부근이다. 이미 여러 척의 배가 떠 있다. 이곳에는 어초가 많아 여러 척의 배들이 각각 저마다의 어초를 뒤진다. 수심이 40m 쯤 되었을까. 5m를 올리고 기다렸더니 강한 입질이 온다. 제법 큰 씨알의 우럭이다. 게다가 또 쌍걸이다. 이렇게 오전 10시까지 부지런히 우럭을 올린다. 대부분 씨알도 좋다. 이런 날은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없다.
▲선상우럭파티. 늘 나의 사진모델이 되어주는 고등학교 동창인 오라클의 백성목상무. |
10시가 지나면서 입질이 뜸하다. 재빨리 잡은 우럭 녀석 서너 마리로 회를 뜬다. 바로 옆에서 낚시하는 꾼들에게도 회를 권한다. 그들도 동참하여 소주 몇 잔과 함께 회를 먹는다. 이때부터 모두가 친구가 된다. 화제는 온통 낚시 이야기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큰 고기를 잡았다는 것이 주된 이야기인데, 6하 원칙에는 부합되지만 대부분 별 신빙성은 없는 이야기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주 이야기 하다보니까 스토리는 더욱 번듯해지지만, 과장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 필자의 우럭조과물 |
정오 무렵 선장은 매운탕을 끓여 점심을 먹는다. 선장의 매운탕이 썩 훌륭하다. 용궁호 최현일선장은 안흥 신진도 토박이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다고 한다. 방학이 되면 아버지를 도와 뱃일을 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천안에서 IMF가 터질 때까지는 천안에서 판금 일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IMF 후 생계가 막막해지자 전세금을 빼내 낚싯배를 마련하고 이 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작년에는 새로운 낚싯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최선장은 늘 즐겁게 일을 한다.
▲용궁호 최현일선장. 신진도가 고향이다. |
낚시꾼들은 생계를 위해 낚시를 하지 않으니까 즐거움이 먼저다. 선장이 즐거워야 꾼들도 즐겁다. 낚싯배의 선장은 어업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업에 종사한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 태풍투어랜드 선단 선장들이 생래적으로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한다. 은양호 선장은 낙천적이고 항공모함 선장은 진취적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럭선상낚시 선장은 포인트를 잘 알아야 하고 정확히 포인트에 배를 대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요즘처럼 우럭 자원이 고갈된 때에는 선장의 포인트 경험과 배 대는 실력이 조과를 좌우한다.
최선장의 배 대는 실력은 뛰어나다. 배를 대고 나서 포인트에 닿지 않아도 모르는 척하며 그냥 지나가는 선장도 많이 있지만, 최선장은 그럴 때면 방송으로 안내를 하고 다시 배를 댄다. 경험이 좀 있는 꾼들은 배가 제대로 포인트에 들어가는지 아닌지 좀 지나면 알게 되어 있다.
오후에는 궁시도에서 배를 이동해서 좀더 먼 바다로 나간다. 몇 마리를 건진다. 씨알이 좋다. 쿨러를 보니 반 이상 차 있다. 이만하면 대박 수준이다. 10여 명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회를 좋아하는 어머니께 충분히 효도하고도 남을 분량이다. 오늘의 우럭은 서해 용궁에서 용궁호를 통해 준 어버이날 선물인 셈이다.
신진항에 도착해 회를 떠서 가기로 한다. 신진항이나 안흥항에서는 낚시꾼들을 위해 회를 떠주는 가게들이 여러 곳 있다. 대개 kg당 3천원을 받는다. 저울에 달아보니 잡은 우럭이 16마리에 총 10kg이다. 근래에 보기 드문 호황이다. 역시 아카시아꽃 피고 물때가 좋고 날씨가 좋고 실력있는 선장을 만났으니 조과가 좋다.
낚시꾼이 한 일은 별로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을 조합했을 뿐이다. 마지막 조합을 완성시키기 위해 상경하는 중에 몇 군데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은 몇몇 사람은 자연산 우럭 맛을 볼 것이다. 우럭낚시의 완성은 역시 먹는 것에 있다. 그리고 우럭 맛의 완성은 역시 매운탕에 있다. /하응백 휴먼앤북스대표, 미디어펜 낚시 대기자.
▲매운탕을 먹고도 남은 우럭 서더리는 이렇게 우럭 간장조림을 해도 맛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