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15일 새벽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464편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사진 MBC 화면 캡처
[미디어펜=최주영 기자]대한항공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국민들의 분노는 일주일이 넘도록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잘 알다시피 원인은 조현민 전무의 ‘갑질’ 논란 때문이다. 최근 그는 광고대행사와 회의 자리에서 해당 업체 광고팀장에게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향해 물을 뿌렸다(혹은 던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여론 뭇매를 맞고있다.
지난 14일에는 대한한공 직원이 조 전무의 음성으로 추정되는 파일을 언론에 공개하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현재 사태는 한진가 자녀들의 인성논란으로 번진 것도 모자라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의 전 운전기사까지 폭로전에 가세하며 오너 일가가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반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그 중 “대한항공의 사명을 바꾸라”는 주장은 가히 파격적이다. 대한항공에서 ‘대한’을 빼고 그 자리에 ‘한진’ 또는 ‘갑질’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전무의 갑질은 대한민국 국적사로서의 명예을 실추시킨 것이며, 이에 따라 대한항공의 국적사 지위를 박탈하고 사명에서 ‘대한’ 문구를 지워야 한다‘는 것이 그 논리다.
오너리스크로 사명 변경이 거론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삼성, SK, LG, 롯데, 현대 등 국내 유수 기업들의 오너리스크 이슈가 불거졌을 때도 국민감정이 격화됐었지만 이들 기업명을 바꾸라고까진 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의 상표 사용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상표법 7조1항 1호는 ‘대한민국의 국기, 국장, 군기, 훈장, 포장...(중략) 등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는 등록받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한’이라는 문구가 국기나 국장을 연상시킨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과 같이 국가나 현저한 지리적 명칭을 상표로 등록할 수 없다는 상표법 기준도 충족했다. 상표법 6조2항에 따르면 소비자에게 그 상표가 누구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을 표시하는 것인가 현저하게 인식된다면 지리적 명칭도 상표로 등록할 수 있다.
대한항공의 심볼마크 또한 태극문양을 응용한 것이지 태극문양 자체를 가져다 쓴 것이 아니다. 실제 대한항공의 심볼마크는 프로펠러의 회전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강력한 추진력과 무한한 창공에 도전하는 대한항공의 의지를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상표나 로고 등의 사용이 법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대한항공의 사명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이유는 다른 기업들의 사명만 봐도 그러하다. CJ대한통운이나 한국타이어도 '대한'이나 '한국' 등의 단어를 사명으로 쓰고 있다. 이들도 대한항공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국민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사명에서 대한이나 한국을 빼거나 다른 단어로 바꿔야 하는가?
결국, 대한항공이 적법한 절차를 통해 획득한 상표권을 국민 여론에 따라 회수, 변경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대한항공이라는 명칭과 태극마크 남용을 거부했으니 쓰지말라’는 주장은 감정을 앞세운 전체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조 전무의 개인적인 태도 때문에 회사 사명을 변경한다는 것은 더더욱 지양돼야 할 사고다. 물론 그가 오너의 딸이고 부사장이라는 책임있는 자리에 있었지만 대한항공 브랜드 가치와 동일시 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은 곤란하다. 개인의 일탈로 2만명에 육박하는 임직원들이 일하는 회사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물론 대한항공도 오너일가의 태도와 관련한 리스크를 반복했다는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전 세계 외신들과 경쟁사들로부터 이른바 ‘땅콩’ 항공사라는 조롱을 당한지 3년 만에 또 다시 조현민 전무의 ‘갑질’ 논란이 불거졌고, 대한항공을 향한 여론의 비난 수위는 현재 ‘최고조’다.
대한항공은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1969년 국영 항공사인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한 이후 유일한 국책항공사로서 글로벌 항공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같은 기업경쟁력이 없었다면 현재 재계 서열 10위권의 대한항공은 완성될 수 없었다.
오너 일가의 갑질을 이유로 국가적 민폐나 상표명 변경을 거론하며 기업가치를 훼손하기 전에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이 대한민국에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다.
[미디어펜=최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