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
보육교사의 공무원화 공방이 뜨겁다. 경기도지사에 출마한 김진표, 남경필 두 후보는 열흘 째 치열한 설전을 벌인다. 수도권의 여야 대결도 거세져 각 당 지도부가 총출동, 경기도지사 선거 지원에 나섰다. ‘보육교사 처우’ 이슈가 순식간에 중앙당 차원의 불꽃 대결로 확대되고 있다.
김진표 후보가 제기한 보육교사의 공무원화는 교육공무원법에 보육교사를 포함시켜 2019년까지 보육교사 전원을 공무원 신분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인건비 예산분담을 중앙정부 70% 지방정부 30%로 하고, 법 개정 전까지 우선 경기도에서 교사 1인당 월 10만 원씩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경기도 보육교사 7만 명을 향한 ‘표 구걸’ 공약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육교사의 공무원화는 선심성-포퓰리즘을 능가한 ‘월권 공약’이다. 과연 지자체장에게 어느 한 직종의 신분까지 바꿀 권한이 있는가. 300명 국회의원이 심사숙고하여 법을 개정할 사안임에도 지자체장이 독단으로 기정사실화해도 되는가. 지자체장이 중앙정부에 대규모 예산지원을 자기 맘대로 강요할 수 있는가.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이 표를 얻기 위해 괴이한 요술봉을 휘두른다지만, 이젠 지자체장의 권한과 분수를 망각한 듯하다.
▲ 김진표 새민연 경기도 지사 후보(오른쪽)가 도내 보육교사 7만명을 공무원으로 채용하고, 급여도 인상해주겠다는 공약을 내놓아 포퓰리즘 논란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 남경필후보는 김후보의 공약을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다가 최근 보육교사의 임금을 50만원으로 올려주겠다며 맞불공약을 내놓았다. |
‘급조’된 티도 역력하다. 김진표 후보는 처음엔 ‘교육공무원’ 추진을 얘기했다가 비난여론이 빗발치자 사립학교 교원처럼 ‘준공무원 수준’이라며 한 발짝 물러섰다. 예산이 얼마인지 재원조달 방안이 무엇인지도 안 밝히다가, 상대 후보가 연간 1조3000억 원이라고 하자 그제야 소요재원이 2200억 원이라며 반박했다. 그러나 이 금액은 국가 지원을 전제로 지자체 예산 30%만 계산한 것이다. 유권자 눈속임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만약 TV광고에서 자동차 도면만 보여주며 “이 차가 실제로 제작-운행된다면 그리고 당신 부모님이 차 가격의 70%를 대준다면, 당신은 이 멋진 차의 주인입니다”라고 선전한다면 모두 ‘개콘’ 재방인 줄 알고 웃어넘기지, 누가 믿겠는가. 보육교사의 공무원화도 마찬가지다. ‘교육공무원법이 개정된다면’ ‘정부가 예산 70%를 지원한다면’ 두 개의 전제조건이 이뤄진 후에야 가능하다. 참으로 허황된 공약이다.
김상곤 전예비후보가 무상버스 공약을 내놓자 김진표 후보는 “새정치연합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정치인”이라며 맹비난했었다. 김진표 후보야말로 과연 ‘신뢰’라는 용어를 쓸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공약만큼 전염성 강한 것도 없다. 김진표 후보의 보육교사 공무원화를 헐뜯던 남경필 후보도 이에 질세라 무리한 공약을 내놨다.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월급을 교육공무원 수준인 월 190만원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는 ‘어린이집 준공영제’를 내걸었다. 게다가 며칠 전엔 사회복지사들도 ‘준공영제’에 포함시키겠단다.
졸지에 경기도지사 선거가 보육교사의 ‘공무원화’(김진표)와 ’처우개선’(남경필)간 대결양상으로 바뀐 셈이다. 그 바람에 보육교사 급여 인상과 지자체의 ‘닥치고 지원’은 누가 당선되든 추진될 전망이다. 이젠 ‘어느 공약이 더 현실성 있나, 예산이 적게 드나’의 경쟁으로 변질됐다. 보육교사의 처우개선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현실적 방안 논의는 생략된 채 말이다.
물론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고충은 심각하다.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처우는 열악하다. 하루평균 근무시간은 거의 10시간 정도인데, 꽤 경력있는 교사조차도 월 실수령액이 100여만 원 수준이다.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보육교사 호봉표가 있긴 하나 민간 어린이집 월급은 보육교사와 원장 간 계약으로 책정된다. 만 3~5세 누리과정 담임교사에게 정부가 월 20~30만원씩을 지원하더라도 이 수당만큼 월급을 제하고 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보육교사의 처우개선을 심각하게 논의할 시점인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하고 실질적 방안이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무상보육은 시행 초부터 지자체 보육예산 고갈로 수 차례 중단위기를 겪었고, 경기도 일부 기초단체는 지난해 누리과정 지원금과 양육수당이 바닥나 발을 굴려야만 했다. 문제에 대한 처방전이 뻔히 나와있더라도 예산이 부족하면 아예 중단할 수밖에 없다.
무상급식 사례에서도 봤듯이 학교 시설관리 예산이 삭감돼 학교안전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경기도지사 두 후보의 공약대로 보육교사의 인건비를 높이려면 다른 부문의 예산을 끌어와야 한다. 어린이집의 환경개선이나 시설보수, 교구지원 등의 예산이 줄어들 수도 있다. 가뜩이나 무상보육, 무상급식, 기초연금 등으로 지자체 살림은 여유가 없다. 무상시리즈 돌풍으로 지자체의 자치-보조사업 비중이 역전됐고 지자체는 자체사업을 거의 벌이지 못하는 형편이다.
경기도 보육교사 7만 명에게 월 10만원씩을 추가 지급하려면 한 해 860억 원이 든다. 특히 공무원신분으로 바뀌게 되면 단순히 임금인상만이 아니라 복지혜택, 연금지원 등 당장 보이지 않는 ‘예산 혹’들이 줄줄이 따라붙는다. 그 부담은 현재 보육교사들이 돌보고 있는 그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빚으로 남게 될 것이다.
지난 4,5년간 후보자-정당들이 선거기간 내내 보육공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무상보육의 전면 확대, 양육수당 지급, 그리고 지금 논의되는 보육교사 처우개선까지... 보육사업에 예산이 급격히 쏠렸다. 하지만 보육사업의 실효성과 평가에 대해서는 정부도 국민도 다들 말을 아낀다. 이번 지방선거가 끝나면 보육교사 처우개선 공약들도 분명 후폭풍을 맞을 것이다. 보육교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보육사업과 별개일 수는 없다. 보육교사 처우개선과 무상보육을 함께 테이블에 올려 보육사업 전반에 대해 재점검할 시점이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