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북한 외무성이 12일 폭파를 통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일정을 발표하면서 전문가 참관 없이 기자단 취재활동만을 허용하겠다고 밝혀 그 배경을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달 29일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공개하면서 "북한이 한미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해 핵실험장을 폐쇄할 계획"이라고 언급했지만 이와 다를 뿐더러 정작 비핵화에 대한 면밀한 사찰·검증 작업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포괄적핵실험금지기구(CTBTO)와 같은 국제기구도 포함되지 않아 비핵화 진정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앞으로의 비핵화 검증에 한계가 있고 재활용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북한이 폭파 방식으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기로 한 것에 대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국제전문가들에 의해 사찰 및 충분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는 폐쇄는 비핵화의 핵심조치"라며 "이들에 의한 충분한 사찰과 검증이 필요하다. 추가세부사항을 더 알길 고대한다"고 밝혔고, 청와대 관계자는 "풍계리 4개 갱도를 모두 폭파하고 막아버린 후 인력 모두 철수시킨다는 것은 미래 핵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올리 헤이노넨 전 IAEA 사무차장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콘크리트로 갱도들을 완전히 메워 잔여 핵물질에 대한 접근 일체를 막아야 한다"면서 단순 폭파로 실험장 갱도 입구만 막는다면 재생해 다시 활용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실험장 갱도들을 완전히 메우는 방식이 아니라 폭파하는 것은 핵실험 흔적을 없앨 뿐더러 향후 검증시 갱도 내부에 대한 접근을 차단해 사찰 과정에서 북한측 신고에만 의존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나섰다.
전성훈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이렇게 자의적으로 핵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증거 훼손, 증거 인멸 행위나 다를 바 없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폭파를 통한 핵실험장 폐기에 앞서 증거물 확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이 핵실험 후 지하터널에 남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 핵물질 시료를 채취하는 과정 또한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실제로 한미일 정보 당국은 과거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 핵종을 포집하기 위해서 특수정찰기를 상공에 띄우거나 이동식 탐지장비를 가동했지만, 2006년 1차 핵실험 당시에만 제논을 검출했고 이후 2~6차 핵실험에서는 핵종 포집에 실패해 어떤 물질이 사용됐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비핵화는 현존하는 핵무기·핵시설·핵 운반수단(ICBM)의 폐기와 아울러 핵무기 제조원료인 핵물질의 제거를 포함하고 있다.
트럼프 미 정부는 이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이에 따라 북한의 핵 활동 의혹에 대해 어디까지 사찰하고 검증할 수 있느냐가 비핵화 검증 성패를 가늠할 척도로 꼽히고 있다.
한미 정보당국이 예상하는 북한 보유 핵물질은 고농축우라늄 758kg·플루토늄 54kg에 달하지만 이는 추정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공정에 따라 핵물질 생산량 편차가 커, 결국 풍계리 핵실험장의 핵물질 시료를 채취해야 지난 핵실험에서의 사용량과 현재 남아있는 재고량을 추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는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북한이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이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신고하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다뤄야 한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는 의식을 23~25일 진행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1월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는 모습./자료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