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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거목 레이건의 위대한 리더십 그립다

2014-06-03 09:5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레이건 사망 10주기, 레이건 리더십을 재조명하다

   
▲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오는 6월 5일은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1911.2.6.~2004.6.5.)의 사망 10주기이다. 그는 일리노이 주의 작은 마을에서 구두 판매원의 아들로 태어나 영화배우의 길을 걷다가 정치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거듭된 도전 끝에 1981년 70세 나이에 그는 마침내 미국 역사상 최고령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잠자던 미국을 일깨워 강력한 국가로 재건시킨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사람들이 레이건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로 꼽으며 그를 기억하는 것은 소련을 붕괴시키고 미국을 유일한 강대국으로 재탄생시켰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그가 백악관으로 유명 피아니스트를 초청해 연주회를 열었다. 그런데 연주회가 끝난 뒤 무대로 올라가던 낸시가 실수로 발을 헛디뎌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빨개진 아내를 보고 레이건이 큰소리로 말했다. “여보, 분위기가 무지 썰렁해서 박수나 웃음이 필요할 때 넘어지기로 하지 않았소?” 그 순간, 많은 사람이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로널드 레이건은 이처럼 유쾌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대통령이었다. 그는 타인을 늘 긍정적으로 보았고 친화력이 탁월했으며, 부정적인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 낙관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대통령으로써 무한한 지지와 신뢰를 얻었다. 소통에 있어서는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그는 대화를 잘 이끌었다. 탁월한 언변 실력은 모두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레이건은 ‘배우’ 출신이라는 편견도 완전히 깨면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재선까지 성공하며 8년 동안 미국을 이끌었다.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바탕으로 미국경제를 회복시키고, 옛 소련 등 공산권을 붕괴시켰다.

레이건 대통령은 반공보수주의자이자 자유 시장경제 노선의 상징적 리더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젊었을 때만 해도 정치의식이 뚜렷하지 않았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철저한 뉴딜 정책의 신봉자가 되어 정부 개입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노선이 완전히 바뀌어버리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바로 배우 시절을 몸담았던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발생했던 사건 때문이었다. 그가 영화배우 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던 때에 좌익 세력이 주도한 파업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 파업이 노동조건 개선이나 올바른 목적을 지닌 것이 아니라 다른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것임을 레이건은 간파했다. 그는 배우조합에 보고서를 제출했고 공산주의자들의 온갖 협박에 시달렸지만, 결국 영화배우조합에서는 그의 보고서를 받아들여 파업을 무시하기로 결의했다. 그 후 레이건은 영화배우조합의 회장으로 선출되어 오랜 시간을 연임했으며 이 일은 그가 반공주의자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레이건은 변질된 민주당에 큰 실망을 느꼈고, 사회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주의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리고 마침내 1965년 공화당으로부터 다음 해에 있을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를 권유받으며 50이 넘은 나이에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어떠한 정치경력도 없고 나이도 많았던 배우 출신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58개 선거구 가운데 55개 선거구에서 승리를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레이건은 공화당과 민주당의 긍정적인 측면을 받아들인 새로운 보수주의자였다. 그는 고립적이고 폐쇄적인 공화당의 전통적 노선과 달리 변질되기 전 민주당의 윌슨주의적 전통과 닿아 있으면서도 미국 전통의 자유주의 노선을 분명히 했다. 덕분에 그는 보수 세력부터 민주당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세력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레이건은 1980년 50개주 가운데 44개주에서 승리하여 카터를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미국의 4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경제, 외교 등 모든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추락하던 미국은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집권한 지 8년이 되는 동안 다시 놀라운 회복세를 보이며 세계 강대국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가 가장 좋은 사회라는 신념이 있었고, 미국은 그 철학을 구현시킨 국가라고 확신하며 공산주의를 밀어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그는 공산주의를 이기는 길은 자유주의의 힘을 통하는 것이라고 믿었으며 항상 낙관적인 생각으로 비전을 가지고 미국을 이끌었다.
 

결국 레이건은 전쟁 없이 냉전을 끝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자본주의를 세상의 지배이념으로 삼아 장기간의 평화롭고 정의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소련을 중심으로 했던 공산주의 국가들은 모두 패망의 길을 걷게 됐으며 자유주의적 전통을 지킨 미국은 세계를 이끄는 국가로 우뚝 섰다. 보수주의 세력은 물론이고 진보 진영의 사람들조차 레이건을 인정했으며 그의 놀라운 친화력과 설득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했다.

레이건은 젊었을 때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여러 경험을 통해 자유주의라는 올바른 깨달음을 얻어 보수주의 정치 노선을 갖게 되고,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간 사람이었다.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미국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고 자유주의가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대통령으로써 권위적이고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 늘 먼저 다가갔으며 탁월한 언변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줄 아는 위대한 소통자였다.
 

레이건은 추락한 미국을 다시 세우고 국민들을 일깨운 위대한 대통령이자 리더로 일컬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레이건과 같은 위대한 리더가 필요하다. 부정적인 말들과 거짓된 선동에 흔들리지 않는 뚜렷한 주관과 확신이 있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추진력 있는 리더, 낮은 자세로 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리더, 그리고 세상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러한 리더가 필요한 때다. 그가 사망한 지 어느덧 10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미국인들을 비롯한 세계인들은 위대한 지도자였던 그를 그리워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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