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귀의 행복한 고전읽기 (15) - 철인 황제의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의 성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의 『명상록』
현대는 지식이 넘치는 사회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있는 ‘지혜의 가뭄’ 시대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복잡화 전문화될수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타당한 지혜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전에는 역사에 명멸했던 위대한 지성들의 삶의 애환과 번민, 오류와 진보,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고전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지혜의 가뭄을 해소하여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와 ‘미디어펜’은 고전 읽는 문화시민이 넘치는 품격 있는 사회를 만드는 밀알이 될 <행복한 고전읽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
▲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
나아가 이 책은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의 연륜이 높아지면서 더 자주 손길이 가는 책이기도 하다. 인생의 의미를 예리하게 통찰해 내고, 삶을 조망하는 폭넓은 시야로 인생을 성찰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생의 귀감으로 삼을 책 가운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으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이 널리 사랑받는 만큼 수십 종의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하지만 그리스 원전 번역의 대가인 천병희 선생님이 2005년 그리스 원전을 번역한 이 책이 가장 충실하게 저자의 철학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청년기에 중역본(重譯本)으로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오십이 훌쩍 넘어 이제 다시 읽으니, 노(老) 황제의 달관의 인생철학이 가슴에 더욱 절절하게 와 닿는다.
이 책은 로마 5현제 중 최고의 철인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비망록이다. 그의 사후 100여년 후에 발견되어 전해진 이 내밀한 사적 기록은,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고 다잡아 나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기록한 고백 일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한 주제로 길게 서술된 산문이 아니라, 짧으면 한 두 줄, 길어도 몇 단락 정도의 짧은 글들이 열거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짧은 비망 기록의 묶음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인격과 지혜는 물론 철학적 사유의 폭과 깊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가 황제이기 이전에 에픽테토스, 세네카와 더불어 대표적인 후기 스토아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근거를 알게 해준다.
짧은 잠언들을 관통하는 그의 철학과 인생관의 바탕에는 자연적 본성과 섭리에 대한 숭상,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는 물론, 삶과 죽음을 초월한 그의 사생관(死生觀), 공동체의 목표에 헌신하는 그의 인간상이 두텁게 깔려 있다. 그는 끊임없이 자연의 본성과 인간의 지배적 이성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하고 질책하면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도록 자신을 독려하고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흉상, 뮌헨 박물관 소장, 사진 Glyptothek |
이 책에서는 황제의 오만한 그림자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평범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규범과 도덕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겸허한 철학자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황제 티를 내거나 궁중 생활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러기가 쉽기에 하는 말이다. 따라서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철학이 너를 만들려고 했던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 신들을 공경하고 인간들을 구하라. 인생은 짧다. 지상에서의 삶의 유일한 결실은 경건한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다.”(6장 30절)
그가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 인간상을 유지하기 위해 ‘지배적(hegemonikon) 이성’을 강조했다. “‘나’라는 존재는 육신과 짧은 호흡과 ‘지배적 이성’에 불과하다.” 따라서 변화하고 소멸하는 육신의 충동이나 쾌락에 제압되지 말고 오로지 이성으로서 자기 자신 전체를 지배할 때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절제와 질서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초탈하다. 탁월한 사람이나 범인(凡人)이나 모두 언젠가 죽게 된다며, 이런 덧없는 인생, 필연의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죽음 앞에선 권력과 부, 신분의 귀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나 그의 노새 마부나 죽은 뒤에는 같은 처지가 되었다. 그들은 둘 다 똑같이 우주의 생식력이 있는 이성으로 환원되었거나 아니면 원자들로 분해되었기 때문이다.”(6장 24절)
그는 죽음을 우주의 순환운동의 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죽음이란 고통이 아니라, “감각적 인상과 충동에 따른 조종과, 마음의 방황과, 육신에 대한 봉사로부터의 휴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에 무관심하거나 조급하거나 거만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자연의 한 과정으로서 기다리는 것이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맞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추한 집착을 버린 진정한 철학자다운 모습을 잘 보여준다.
죽음에 대한 달관의 깨달음은 그의 현세의 삶의 태도를 더욱 겸손하고 진지하게 만들어 준다. 그가 진실로 두려워한 것은 누구나 맞게 될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지배적 이성’이 잠들어버려 육체적 자극과 쾌락에 자신이 제압당하거나, 고통에 굴복하는 상황이다. 그의 비망의 글들은 바로 이런 굴욕적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자책과 각성의 자기 주문이다.
“지배적 이성은 자신 속으로 물러나 자신에게 만족하고, 설사 그것이 비이성적인 반항이라 해도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불패(不敗)이다. 하거늘 그것이 어떤 사물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신중하게 판단을 내린다면 어떻겠는가? 그러므로 정염(情炎)에서 자유로운 마음은 성채이다. 그곳으로 피신하면 앞으로는 함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자는 무지한 자이고, 알면서도 그곳으로 피신하지 않는다면 불운한 자이다.”(8장 48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세계 대제국 로마의 황제로 무한권력을 가졌다. 그는 원하는 쾌락은 어떤 것도 취할 수 있었고, 그의 감성과 욕망, 방종과 무뢰를 제어할 현실적 제약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 규정한 자신의 모습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철저히 감독했다. 모든 것을 가진 그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자신을 곧추세우는 수신(修身)에 매진했다는 점에서 그의 고귀한 인간성이 더욱 빛난다.
“너 자신에게 선하고, 겸손하고, 진실하고, 지혜롭고, 공감하고, 고매하다는 이름을 붙인 다음에는 다른 이름이 붙여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리고 그런 이름들을 잃게 되면, 서둘러 그런 이름들로 돌아가라.”(10장 8절)
그가 자신을 다잡으며 그토록 정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내면의 수양을 통한 인격의 완성 그 자체가 삶의 의미의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연마시켜 자신의 현실의 사회적 의무 실행의 동력으로 연결시키고자 했다.
이성적인 존재는 공동체적 존재이기도 하므로 국가 공동체에서 시민들의 지적 능력과 이성과 법의식이 더욱 다져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인격 수양 노력은 개인의 소극적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위한 리더로서의 품성을 갖추고자 했던 더 높은 차원의 적극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마상, 로마 ⓒ박경귀 |
“나는 나와 동종인 부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공동체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 모든 노력을 공동체에 유익하도록 조절하고 그와 반대되는 것을 삼가게 될 것이다. 이런 원칙을 지켜나가면, 동료 시민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나씩 실행해 나가고 공동체가 부과하는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민의 삶이 행복하리라고 네가 생각할 수 있듯이, 삶은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10장 6절)
그가 재위하던 2세기 말은 페스트가 크게 유행하여 시민적 삶이 피폐해지고,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군사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등 내우외환으로 로마의 전성기가 저물어가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외적과의 방비에 헌신해야 했고, 사회의 기강과 도덕성을 바로세우고자 부심했다. 그는 도나우 강변 전선의 진중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현실의 적은 물론 자기 내면의 적과도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 장군의 갑옷을 입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상, 그는 늘 외적에 시달려 전쟁터를 전전해야 했다. 그리스 올림피아 고고학 박물관 소장, ⓒ박경귀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인간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자였던 황제의 호방한 기개, 카리스마, 넘치는 오만과 독선의 자취를 발견하기 어렵다. 자연의 섭리를 마음으로 수용하고 경건한 삶의 자세로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로마의 국가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려 애쓰던 위대한 철인 황제의 모습이 그의 비망과 잠언에 절절하게 배어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희구하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도덕적 인간의 전형을 보여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현대의 지성인, 사회지도자들이 자신을 비추어보고 성찰하는 거울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6.4 지방선거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의 지도자들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오로지 “공동체에 유익한 것만을 네 행동 목표로 삼아라”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경구(警句) 한마디라도 거듭 되새겼으면 좋겠다. /박경귀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추천도서 :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2012, 2판 1쇄), 23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