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 비핵화를 협상하면서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협상카드로 활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북미 정상회담 직후 단독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엄청난 돈을 군사훈련에 쓰고 있다”며 한미 군사훈련 중단 의사를 밝혔다.
이후 실제로 한국과 미국은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으며, 청와대는 19일 우리의 자체 비상대응 훈련인 을지연습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따른 북한의 상응 조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 비핵화 의지를 실천적이고 선제적으로 보여준 측면이 있다. 비핵화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대화가 유지되는 한 군사연습도 유예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이날 발표로 볼 때 한미군사훈련 중단이 과거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 조치의 일환이었다면 이제는 북한의 성의 있는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변화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당장 8월로 예정됐던 연례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유예하기로 한 것은 물론 우리 정부의 을지연습도 중단하는 것은 북한을 자극할 행동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비핵화를 촉구하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한미군사훈련은 한미동맹의 한 축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연합군사훈련을 비용 문제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 한국은 물론 미국 일각에서도 우려 섞인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도 비용 문제와 연관시켜왔으며 이는 ‘가치 동맹’으로 여겨져온 한미동맹을 한낱 ‘이익 동맹’으로 전락시켜 스스로 동맹의 중요성을 손상시킨다는 지적도나왔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과 동맹에 대한 공약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잠재적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합훈련 등이 북한과의 협상카드가 되면 동맹이 확실히 훼손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국내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도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잇단 발언과 관련해 “앞으로 동북아에서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대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북한이 비핵화와 개혁개방 의지를 보이자 러시아는 중국과 더욱 긴밀한 공조를 보이면서 대 한반도 영향력 제고와 경제적 이익 확대를 위한 기회를 포착하려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평가이다.
반면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협상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도 한미연합훈련이나 주한미군의 필요성이 언급되고 있으며, 특히 한미동맹 문제가 비용 문제로 평가되는 상황에서는 그 가치가 크게 하락시킬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역대 미국 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에 미군을 배치하고 군사협력을 강화해온 것은 동남아시아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의 핵심 정책 결정권자들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군비 지출을 삭감해야 하는 상황마다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바로 중국이 남중국해 분쟁 수역의 난사 군도와 시사 군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조성해 향후 남쪽 해상 진출의 ‘징검다리’로 삼고 싶어하는 중국은 동중국해에 이어 남중국해에서도 방공식별구역 선언을 노리고 있다. 이런 중국과 우리나라는 이어도 영유권을 놓고 갈등해온 것이 사실이고, 서로가 각각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는 방식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동맹은 앞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통일이 이뤄지기 전까지 대북 차원에서 필요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 국가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군사력에서 미국과 중국에 크게 밀리는 상황에서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양국이 우리나라에 끼치는 힘의 균형을 조절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빅터 차 외에도 마이클 그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은 미국의 체제보장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그는 17일 ‘미국의소리’ 방송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하고 주한미군의 철수도 원한다고 말한 것을 언급하며 “동맹국에게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옳은 방식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국이 (국방을 위해)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다면 한국 경제는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이 한국과의 무역을 거부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이행할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 청와대는 미 국방부와 의회, 싱크탱크 등과 협력해 동맹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을 가졌다./사진=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