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사익편취’로 규정했다.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를 ‘사익편취 규제’라고 다시금 명명하며 이와 관련된 행위 일체를 ‘범죄화’ 시킨 것이다.
일각에선 공정위가 기업의 경영 전략 중 하나인 기업 계열사 간 내부 거래를 ‘사익 편취’로 규정한 것은 엄연한 언어도단이라고 지적했다. 모든 내부거래를 ‘사익 편취’라고 명명해 ‘비리’로 모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이다.
공정위는 지난 25일 ‘사익 편취 규제’ 도입 이후 내부 거래 실태 변화를 분석한 결과, 규제 도입 후 잠시 주춤했던 내부 거래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2013년 15.7%였던 규제 대상 회사의 내부 거래 비중은 규제 도입 직후인 2014년 11.4%로 감소했다가 2017년에는 14.1%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거래 규모도 2013년 12조4000억 원에서 이듬해 7조9000억 원으로 줄었다가 2017년 14조원으로 증가했다.
또 총수 일가 지분율을 29%대로 낮춰 규제의 화살을 비껴간 상장사의 경우 내부 거래 비중이 21%로 규제 대상 기업보다 6%가량 높았다.
이에 공정위는 “제도 도입 당시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규제 격차를 둔 것은 상장사의 내부 감시 장치를 염두에 둔 것이지만, 실태를 보면 실제로 작동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익 편취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내부 거래 ‘사익편취’로 규정…기업 집단 범죄화 시키는 것
당초 기업 계열사 간 내부 거래는 ‘일감 몰아주기’로 불리며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대기업 집단 계열사끼리 내부거래를 하고, 그 거래의 이익이 총수 일가에게 흘러가는 것은 잘못됐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이 연 매출의 30%를 넘는 법인(일감을 받은 기업)의 지배주주 중 3% 이상 지분을 보유한 이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상적인 거래든, 그렇지 않은 거래든 거래 비중이 30% 이상이면 일감을 몰아준 것이라고 보고 세금을 매기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 정부는 내부거래 증여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 역시 내부거래 자체를 ‘사익 편취’라고 못 박았다. 이는 모든 내부 거래를 총수의 편법으로 몰아가는 것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다분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처럼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 일가가 편법으로 지배력을 확대해 나가고, 경영권 승계를 강화시킨다는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중소기업 경쟁기반의 침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추측도 포함돼 있다.
내부 거래든 외부 거래든 기업의 '선택'으로 남겨 둬야
‘내부 거래’에 대한 오해는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이 ‘계열사 구조’로 돼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긴밀하게 연결된 계열사들 간의 거래는 기업 경영 전략의 하나일 뿐 ‘비리’로 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내부 거래든, 외부 거래든 해당 거래가 ‘정상적인 시장가격’에 근거하고 있는 한 범죄로 규정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계열사 간의 거래를 모두 ‘사익 편취’로 규정해선 안 된다”며 “일감몰아주기의 위법 여부는 기업의 소유구조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정상가격에 의거해 이뤄졌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내부 거래로 그룹 내 경쟁력이 약해지거나, 부당한 거래를 통해 피해가 발생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사익 편취’로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조 교수는 또 내부 거래가 편법 증여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주장에 대해 “이는 상속세 회피의도 등 다른 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며 “증명되지도 않은 증여수단을 근거로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막는 것은 기업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