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규태 기자]제주도에 들어와 난민인정 심사를 신청한 예멘인 486명에 대해 반대 여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사태의 근본원인으로 꼽히는 무사증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불거지자 예멘을 무사증 입국 불허국으로 지정해 급한 불을 껐다.
무사증 제도는 지난 2002년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도입한 제도로, 이에 따라 세계 180개국 외국인들은 비자 없이 제주도에 들어와 한달간 체류할 수 있다.
예멘인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의 중심에는 무사증 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불법 취업자들의 손쉬운 입국에 악용되고 이에 대한 추적이 어렵다는 지적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정부당국에 따르면 제주도에는 체류자격을 잃은채 출국하지 않은 불법체류자가 1만1000명이 넘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2016년까지 6만3319명에 달했던 국내 무사증 불법체류자(누적)는 2017년 8만5196명으로 2만명 이상 늘었다. 국내 총 불법체류자 25만 명 중 14만 명이 무사증이나 단기방문비자로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2017년말 기준).
김도균 제주출입국·외국인청장은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해 "취업 알선 등 무사증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대비할 기간이 필요했다"며 "기본적으로 무사증으로 제주에 들어온 외국인은 출도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난민 불인정이 나오는 경우에 대해 "불인정이 나오게 되면 돌아가야 하는데 이의신청 절차가 있다"며 "나머지 경우는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불인정 된 후 이의신청한 사람도 사유를 봐서 출도제한 조치를 풀지 결정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29일 이번 사태에 대해 무사증 제도 악용방지의 근거규정을 마련하고 향후 난민심판원을 신설해 난민 인정 심사에서 탈락한 신청자들의 이의제기 간절차를 간소화하겠다는 것을 골자로 대책을 발표했지만, 제도의 허점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정영섭 이주공동행동 집행위원은 "정부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무분별하게 무사증 제도를 확대하면서 최근 불법체류자 수가 대폭 늘었다"며 "정부는 불법체류 단속 강화에 힘쓸 뿐 무사증 제도 자체를 손볼 생각이 없다"고 지적했고, 이탁건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난민에 대한 국내 여론과 난민협약 가입국으로서의 책임이 충돌하고 있다"며 "정부가 적극적인 공론화를 통해 난민 수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난민 사태가 벌어진 제주도는 무사증 제도를 보완할 근본 대책으로 법무부에 전자여행허가제 도입을 요구할 방침이다.
전자여행허가제는 무사증(무비자)로 입국하려는 외국인이 사전에 자신의 개인정보 및 여행목적을 기재하면 이를 토대로 여행허가 여부를 판정하는 제도다.
제주도는 앞서 중국인 불법체류와 범죄 등 기존 무사증 제도로 인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도입을 건의했지만 법무부는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한 비판 여론은 일촉즉발이다. 일부 반대 시민단체들은 현행법상 난민 인정심사 신청 후 6개월 지나야 취업이 가능하지만 지난 14일 이들의 취업을 허가해준 박상기 법무부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할 방침을 밝혔고,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과 제주도에서는 대대적인 반대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일자리를 얻게 된 예멘 난민 중 일부가 취업 직후 줄줄이 그만두고 제주출입국을 상대로 '출도제한 취소' 소송을 제기해 반대 여론에 기름을 끼얹기도 했다.
법무부가 '난민 인정심사'를 신청한 예멘인 486명에 대해 오는 10월까지 엄격하고 신중히 심사를 마칠 계획인 가운데,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출도제한 조치를 해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은 난민협약에 가입하고 난민법을 제정해 예멘인 등 난민들을 보호할 국제의무가 있다.
향후 정부가 무사증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에 나설지, 사태의 추이에 따라 이슬람 및 난민 수용에 대한 혐오 목소리가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사진은 2016년 9월 국제이주기구(IOM)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사우디 인도주의구호센터(KSrelief)를 통해 예멘 난민들에 대한 안전한 보호지원조치를 하는 모습./사진=국제이주기구 홈페이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