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최주영 기자]정부가 한진그룹 저비용항공사 진에어 면허취소를 유예한 대신 항공사들에 ‘갑질’ 재발방지책을 대거 내놓자 항공업계가 '냉가슴'을 앓고 있다.
국토부가 진에어 사례를 본보기삼아 항공사 대표이사 경력과 자격 기준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항공사 관리감독 강화 방안 및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는 자칫 항공사 기업업활동을 억압하려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B737-900ER /사진=대한항공 제공
1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주요 항공사들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 시작될 항공사업법 개정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토부는 올 하반기부터 항공사업법 개정에 착수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국토부에 따르면 개정안에는 총수일가의 항공사 대표 겸직을 제한하고, 갑질논란을 일으킨 기업에 운수권 배분시 불이익을 주는 등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대표이사의 경력과 자격 기준을 신설하고, 등기임원 제한 요건에 기존 '금고형' 외에 3개법(형법·공정거래법·조세범처벌법) 위반한 경우도 추가했다.
기존에는 항공관련법으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사람에 한해 등기임원에 3년간 취임할 수 없도록 했지만 5년으로 기간도 강화했다. 대형 항공사가 선점한 슬롯을 자기 계열사에 교환·지원하는 사례를 엄격히 관리하고, 슬롯 회수의 법적 근거 또한 마련해야 한다.
당초 국토부는 진에어에 대한 제재 수위를 이날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유보했다. 대신 범위를 넓혀 항공업계 전체를 중심으로 갑질 항공사 제재방안 등 기업경영과 직결되는 사항에 불이익을 주는 등 사실상 ‘무더기 규제’를 쏟아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결국 항공업계 전반에 적용될 거라는 점에서 "민간기업에 대한 지나친 개입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대표이사와 등기이사 기준을 강화하고 겸직을 불허하는 등 조치는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침해하는 조치"라며 "정부가 기업경쟁력을 어떻게 키울까보다 어떻게 하면 '갑질' 문제를 키우지 않을지 더욱 염려한 조치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항공사들은 그렇다고 정부의 방침에 이렇다 할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기를 들 수도 없는 실정이다. 자칫 항공사 영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노선 슬롯(운항시간)과 운수권 배분에 불이익을 당할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갑질을 저지른 기업에 한해 노선 슬롯(운항시간)과 운수권 배분에 차등을 두고 최종 결정에 관여한다는 방침을 정한 이상 경영환경도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스케쥴을 파는 항공사 입장에서 고객에게 더욱 다양한 패턴을 제공해 소비층을 넓힐 수 있다. 이는 곧 항공사의 경쟁력이 되며, 경쟁 항공사를 견제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아무리 국제항공운송사업 면허를 받았더라도 운수권이 없으면 해당 국제선 노선에 정기편을 취항할 수 없다.
현재의 시스템은 항공사들이 서면으로 배분 신청을 하면 국토부가 이를 공지 후 해당 항공사가 정기편 및 부정기편을 띄웠는지, 취항시기 및 운항시간대, 운임경쟁력, 기존 노선과의 연계 및 통합성 등 기준을 토대로 부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여도가 추가되면, 운수권 배분수칙 상으로 항공사 간 점수 차이가 별반 나지 않거나 동일할 경우 취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회적 기여도는 현재 100점(인천공항 노선의 경우 110점) 만점의 국제항공운수권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로 미미하지만 정부가 이를 지렛대삼아 노선배분 등에 최종 활용하겠다는 방침을 선포한 이상 가중치가 상당할 것이란 관측이다.
항공업계는 사실상 시장경쟁 촉진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선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갑질 논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경쟁에서 배제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날 거라는 지적이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진에어에 예고했던 (처벌 수위) 결론 발표를 미룬 대신 다른 항공사들에 대한 무더기 규제만 쏟아낸 셈“이라며 "한진그룹 오너일가 이슈로 제보 채널이 활성화 된 상황에서 우리도 공정위·복지부·고용부 등 3개부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A350-900 /사진=아시아나항공 제공
[미디어펜=최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