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기업-친(親)노동의 국정 기조에 변화가 올 것인가? 미묘한 갈림길에 선 것이 지금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 복귀 첫날 "경제 활력을 찾기 위한 실사구시적 실천"을 주문했다. 실제로 그는 은산(銀産)분리 규제 완화를 스타트로 규제 혁신 드라이브를 걸었다.
좋은 징후는 그 말고도 있다. 삼성이 향후 3년 180조 원을 투자해 반도체-인공지능-5G에 집중하겠다는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역시 그 직전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찾았는데, 취임 후 처음으로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만났다. 기대했던만큼의 살가운 자리는 아니었으나, 만남 자체로 좋은 일이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기조가 자칫 뒷걸음질 치는 불행을 막아낼 수 있을까? 삼성에 구걸 말라고 청와대가 훈수를 뒀네 안 뒀네 하는 시시한 뒷말 따위를 지워 버리고 정권 내의 반(反)기업정서자체를 모두 바꿀 수 있을까? 얼마 전 여당 실력자가 "삼성전자는 협력업체 쥐어짜기로 1등이 됐다"고 망언을 했는데, 그런 못난 생각조차 시원하게 넘어설까?
그걸 위해 필요한 것은 몇몇 정책 입안-조정의 차원이 아니라 현대기업사를 균형감각 있게 공부하는 작업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포인트는 고정관념 내려놓기다. 일테면 1960~70년대 개발연대의 위대한 성공 스토리를 잊은 채 허울 좋은 경제민주화 타령을 늘어놓거나, 이른바 정경유착을 비판하는 행위가 얼마나 얼척없는가부터 깨닫는 게 먼저다.
그걸 새삼 확인시켜주는 게 대우의 사례다. 여전히 한국경제의 신화로 남아있는 그 그룹과 관련해 분명히 할 건 대우의 성장이란 정경유착과 무관하다는 점이다. 김우중은 자신의 회고록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해명하는데, 그게 진실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부에서 나한테 떠맡기다 보니까 수의계약이 된 거지요. 그리고 경제발전을 하려면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서 잘해야 돼요. 그걸 놓고 정경유착이라고 매도하면 안 됩니다.…장사꾼이 돈만 바라보고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준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66쪽)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 복귀 첫날 "경제 활력을 찾기 위한 실사구시적 실천"을 주문했다. 첫 과제로 은산(銀産)분리 규제 완화를 지시하며 규제 혁신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반기업·친노동정책의 국정기조에 변화가 올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청와대
결정적인 것은 그게 개발연대의 시대정신이자, 합의였다는 점이다. 그 시대를 이끌던 최고지도자인 대통령과 창업주 사이의 그런 교감을 우리는 정경유착으로 규정하기에 바쁘고, 수의계약은 특혜이며, 당연히 거액의 정치자금 거래가 있었을 걸로 가늠한다. 그 정반대로 하는 게 개혁이고 선진화이며, 경제민주화라고 그동안 우린 거대한 착각을 해왔다.
지금 정부- 기업이 소 닭 보듯 하며 적폐 타령을 반복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들이 막상 모르는 건 경제민주화란 관치경제를 극복하자는 의미가 없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평등에 대한 맹목을 뜻하고 '다 함께 못사는 앉은뱅이 사회'즉 저성장 국가를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힘들 때일수록 한 때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활발하던 우리의 옛 저력을 믿어봐야 한다. 그래서 '경제하려는 의지'를 북돋아줘야 옳다. 그러기 위해서도 국가발전을 내세우던 개발연대 창업주들의 위대한 사업보국의 DNA부터 되살려야 하는데, 대우그룹 훨씬 이전에 국가 이익 우선주의를 체득했던 건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이었다.
그건 창업세대의 사업보국 이념으로 요약된다. 상식이지만, 삼성 창업자 이병철은 1982년 미 보스턴대 명예 박사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기업의 존립 기반은 국가이며, 그래서 나는 지난 40년 사업보국을 주창해왔다"고 연설했다.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표적 어록인데, 이듬해도 그걸 강조했다.
"반도체 사업을 하기로 확정한다. 어디까지나 국가적 견지에서 삼성이 한다. 삼성 이익만을 생각해서가 결코 아니다." 이런 독특한 이타주의적 발상은 그의 어록집 <기업은 사람이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다. "내가 회의 때 강조하는 게 있다. 삼성이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냐? 국가가 중요하다. 국가가 부흥하면 삼성 같은 건 망해도 또 생긴다."
실로 가슴 뛰는 얘기가 아닐 수 없는데, 지금처럼 정부와 기업이 소 닭 보듯 하는 분위기에서 복기해볼 가치가 높다. <한강의 기적과 기업가정신>(북앤피플)을 쓴 저널리스트 김용삼에 따르면, 그건 한강의 기적 훨씬 이전 대한민국 건국 전후 창업자 세대 대부분이 가졌던 태도이기도 하다.
김연수의 경방, 한국의 석탄왕 정인욱 등에게도 사업보국과 애국심은 대단했다. 그런 사업보국의 DNA는 기업체 이름에도 내비친다. 기계공업의 선구자 김철호가 지은 기아(起亞)는 '아시아를 넘은 꿈'이었고, 조중훈의 한진(韓進)은 '한민족의 전진'을 말한다. 맞다. 확실히 세상을 움직여온 원동력은 기업이다. 기업 없는 국가는 부유할 수 없다는 게 상식이다.
지금 김동연 경제팀에겐 민관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 움직여도 힘든 판에 기업 배제의 분위기란 어불성설이란 비판이 쏟아진다. 미국-독일 등 경쟁국이 4차 산업혁명을 위해 뭘 하는지도 돌아보란 주문도 한다. 차제에 그에게 나는 좌승희 박사 경제학의 기본인 기업경제론을 들려주려 한다.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이끄는 시장경제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야 옳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기업이라는 '보이는 손'의 역할이다. 때문에 시장경제가 아니라 기업경제가 맞다. 시장-정부-기업 3자를 강조하는 삼위일체 경제발전론을 좌 박사는 개진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은 기업을 배제한 맹탕 정책이었다. 그걸 차제에 완전히 수정하길 바란다.
그래야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경제 활력을 찾기 위한 실사구시적 실천"이 가능하다. 경제가 뒷걸음질 치는 불행도 막을 수 있고, 최악의 경제재앙도 예방할 수 있다. 다행히 한국경제에는 사업보국의 DNA를 가진 위대한 기업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을 제대로 일깨워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