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극 후보자 관련 KBS 보도는 저널리즘의 기본을 벗어난 악의적 보도 - 후보자 강연 발언 중에 매우 자극적인 부분만 발췌한 비맥락적 보도행태 - 진보적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사장퇴진 같은 지속적인 정치투쟁을 벌여온 KBS 노조 - KBS는 내부구성원들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사유화 도구’로부터 벗어나야 |
▲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가 20일 자유경제원이 주최한 'KBS사태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1. 추락한 저널리즘 윤리와 붕괴된 KBS 보도시스템
최근 ‘세월호 보도’ 여파와 청와대 압력설로 사장이 해임되고, 사장 부재상태에서 새 총리후보자에 대한 ‘막가파식 폭로’기사로 인해 온 나라를 혼동과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상황에 여기에 이르자, 그동안 잠수해있던 KBS의 문제점과 개혁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수신료거부와 공영방송 KBS의 존재이유까지 조차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문창극 총리후보 관련 KBS의 보도는 보도공정성 문제 뿐만 아니라 지금 KBS내부의 정치적 헤게모니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문창극 총리 후보자 관련 보도들은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도 저널리즘의 기본을 벗어나 악의적 보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총리후보자로 지명된 것이 중요한 뉴스이기는 하지만 총리후보자의 과거 발언내용을 폭로하는 기사가 헤드라인 뉴스로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실제 6월 11일 9시종합뉴스를 보면,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유병언 수사소식을 뒤로 밀어내고, 문창극 후보관련 폭로기사를 세꼭지를 연이어 보도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가 이 같은 ‘폭로성 기사(muckraking journalism)를 내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폭로성 보도는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의 한 행태로 비판받는 보도행태이고, 흔히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underground 언론사들이 주로 행하는 보도행태이다.
▲ KBS가 11일 저녁 9시뉴스에서 보도한 기사들의 제목들. |
둘째, 보도 내용을 보면, 문창극 후보자의 강연내용 중에 매우 자극적인 부분만 발췌해 보도하고 있다. 이는 저널리즘의 기본 윤리를 벗어난 왜곡보도의 전형이다. 언론윤리관점에서 보면 공정보도 혹은 바람직한 보도는 ‘특정 사건에 대해 맥락적 보도형태’를 지향해야만 한다. 이처럼 비맥락적이고 단절적인 보도는 시청자들에게 사건을 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인터뷰 내용 중에 앞뒤 짜르고 3~5초만 보여주는 극명하게 보여주는 soundbite를 문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번 문창극 후보 관련 KBS 보도내용은 전형적인 비맥락적 보도행태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게 주셨어. 저는 지금 와서 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주도 4.3 폭동사태라는 게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제주도) 반란을 일으켰어요."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와가지고 경제개발할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 우리 보다 일본이 점점 사그라지잖아요, 그럼 일본의 지정학이 아주 축복의 지정학으로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거란 말이에요."
셋째, 문창극 후보자와 관련된 폭로기사라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폭로하는 것은 보도 공정정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다. 특정인과 관련된 내용 특히 개인의 행동과 관련해서 논란의 소지가 있거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경우에는 이처럼 일방적으로 폭로해서는 안 되고, 보도 행위이전에 당사자의 반론을 반드시 들어야만 한다(아니 적어도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보도내용 어디에도 그런 흔적이 없고, 도리어 정치적 효과를 노려 기습적으로 보도한 느낌이 강하다. 한마디로 단순한 폭로기사가 아니라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만든 기획기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문창극 총리후보와 관련된 KBS보도는 공영방송으로서 KBS의 보도시스템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 조차 무시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편파보도가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사장 퇴진으로 사실상 공백상태에 빠진 KBS의 보도시스템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 자유경제원이 20일 KBS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KBS가 국민 지지를 받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열고 있다. |
2. 사태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지적되어 온 KBS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방만한 경영, 자사이기주의 등 수없이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아마 가장 많은 지적은 KBS가 과연 정치적으로 독립되어 있는가 하는 의문일 것이다. 이번 KBS 사장 퇴출사건 역시 그 근원에는 공영방송 KBS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쫓겨난 사장 =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자’이고 ‘사장을 쫓아낸 노조와 구성원들 = 정치적으로 독립된 자’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난 바와 같이, KBS 내부는 몇 차례의 정권교체를 겪으면서 철저하게 정치지형화되어 버렸다. 1998년 집권한 김대중 정부와 2003년 집권한 노무현정부는 자신들과 친화력이 강한 인사들로 KBS 조직을 재구조화하였다.
실제 김대중정부 시절에는 외부 신문사 출신들을 등용하였고,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말’ ‘시사저널’ ‘한겨레신문’ 등 출신들을 경력직으로 대거 채용하였다. 이들은 현재 KBS 좌파조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사원행동’의 주 구성원들이다. 아울러 조직효율화를 이유로 ‘수직적 직제’를 폐지하고 ‘직급과 관계없이 순환보직형태로 팀장이 주도하는 팀제’를 도입해 간부직원의 책임성과 수직적 통제력을 크게 약화시켜버렸다.
이 때문에 2008년 보수정권이 집권하고 새로운 사장을 임명했다고 이렇게 철저하게 착근되어 있는 정치지형화가 고쳐지지 않았던 것이다. 도리어 진보성향의 노조가 사장퇴진, 프로그램 투쟁 등을 통해 정치적 갈등만 더 증폭되었다. 실제 ‘인민해방군가 작곡가인 정율성’을 미화시키는 특집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이승만대통령 특집 프로그램 반대 등 다양한 정치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 같은 KBS 사내 좌파진영의 정치적 투쟁의 백미는 2012년 총선투쟁에서 진보노조가 야당과 연대해 장기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당시 파업출정식에 야당지도부가 참여하고 노조위원장이 ‘야당과 손잡고 정권을 잡자’고 선언하고, 노조간부가 야당 선거공조대책회의에 참석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번 KBS사장 퇴진 사건은 이 같은 KBS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드러난 것이지, 정치적인 사장과 KBS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구성원들 간의 갈등이라는 이분법적 선악구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에 문창극 총리후보 관련 보도는 사장 퇴진이라는 공백상태에서 좌파노조가 주도하고 있는 KBS 보도시스템이 주도한 전형적인 정치적 편파보도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KBS보도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정치지형화와 자사 이기주의가 결합된 형태가 현재 KBS 문제의 핵이라 할 수 있다. KBS가 정치권력이 바뀌고 정치지형도가 바뀔 때마다 정치적 독립성과 보도공정성 문제가 항상 다시 제기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특히 2008년 보수정부 재집권 이후, KBS 노조(언노련 KBS본부노조)는 진보적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보도공정성 뿐만 아니라 사장퇴진 같은 지속적인 정치투쟁을 벌여왔다. 이번 KBS 사태는 이러한 내부의 KBS 구성원들 간의 헤게모니 쟁탈구도가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3.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영방송 KBS를 국민들의 품으로 다시 돌려주는 것이다. 지금처럼 KBS가 진보/보수를 떠나 내부구성원들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사유화 도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영방송 거버넌스 시스템 개혁이 절대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정치권에서 논의된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논의는 주로 ‘KBS의 이사구성에 있어 여야안배 비율’과 ‘집권여당이 일방적으로 독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장선출 방식의 강화’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때문에 여야간 이해득실이 분명한 상태에서 쉽게 합의되지 못하고 허무한 정쟁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문제는 과연 KBS 같은 공영방송을 실질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비상임조직체로 한 달에 한두번 회의 때 보고받고 의결하는 형태로는 KBS 안에 착근되어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알 수도 제어할 수도 없다. 이번처럼 사장과 보도국장이 추악한 난투극을 벌이고 방송사가 마비될 상황인데도 중재나 조정할 수 있는 의지도 권한도 없는 명사조직 같은 상태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이사 구성에서 KBS출신자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처럼 ‘오랜 기간 한 솥 밥을 먹은 식구’이면서 동시에 ‘지난여름에 한 일을 서로 잘 알고 있는 관계’에서 구조적 개혁을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관피아’ 보다 ‘자기들끼리 만들어 놓은 마피아’의 폐해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결국 답은 ‘민주적이면서 실효성 있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다. 실효성 담보를 위해서는 KBS이사회 같은 경영기구가 상시적 기구이어야만 한다. 물론 이사회 구성 역시 KBS의 내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어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처럼 무기력한 사실상 사내 조직처럼 되어 버린 KBS이사회에서 탈피해, 진정 공영방송 KBS를 감시하고 규율할 수 있는 ‘공영방송위원회’같은 독립규제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이 기구는 공영방송의 재원과 실질적인 감시역할을 연계해서 국민들의 큰 저항을 받고 있는 KBS 수신료 해법도 모색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런 독립규제기구 논의가 벽에 부딪쳤던 이유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내걸고 외부로부터의 어떤 감시도(솔직히 국민의 감시조차도) 받지 않겠다는 KBS 종사자들의 강력한 저항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지금처럼 어떤 외부 견제나 감시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송사 안에서 평온하게 안주하겠다’는 속내를 ‘방송의 독립성’을 명분으로 포장해왔던 것이다. 그
렇지만 이제는 이처럼 명분과 실제가 전혀 다른 왜곡된 공영방송구조를 개혁해야할 때가 되었다. 그래야만 KBS가 실제 주인인 국민들의 방송이 될 수 있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