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오후 북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박영환(85) 할아버지가 남측 박봉임(89) 할머니와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다./뉴스통신취재단
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둘째날인 25일 오후 북한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북측 박봉렬(85) 할머니가 남측 동생 박춘자(77) 씨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뉴스통신취재단
[금강산공동취재단·미디어펜=김소정 기자]26일 금강산에서 개최된 작별상봉은 시작부터 눈물바다가 됐다. 또다시 기약없이 헤어져야 하는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안타까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눈물을 흘렸다.
북측의 언니 박영희씨(85)를 만난 남측의 박유희씨(83)는 “다시 만날 날이 또 있겠지? 이게 무슨 불행한 일이야. 가족끼리 만나지도 못하고”라며 눈물을 쏟았다. 영희씨는 “통일이 되면”이라고 동생을 달랬지만 유희씨는 “그전에 언니 죽으면 어떡해”라고 말하고 오열했다. 영희씨는 “내 죽지 않는다. 죽지 않아”라며 동생을 달랬다.
남측의 누나 김교남씨(91)는 북측의 동생 김점룡씨(87)와 마지막 만남에서 부모님 산소 가는 길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우리가 만난 것을 알면) 엄마, 아버지가 좋아할 거야”라고 말했다. 점룡씨는 누나의 말에 “내가 가야 하는데... 구정에 가야 하는데”라며 눈물을 훔쳤다. 누나 역시 동생을 바라보며 “아이고...”라며 허공만 바라봤다.
북측의 정선기씨(89)와 남측 정영기씨(84) 남매는 이번 상봉 기간 동안 어색함을 잘 풀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별이 눈앞에 다가오자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듯 동생 영기씨가 오빠 선기씨 품에 안겨 눈물을 쏟으며 오열했다.
선기씨는 동생의 쓰다듬으며 “오래비가 지혜롭지 못했다. 내가 죄를 지었다. 큰 죄를 지었어”라며 동생을 달랬다. 선기씨는 6.25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 명목으로 인민군에 차출된 뒤 소식이 끊겼다. 영기씨는 “드디어 오늘이 왔구나”라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고, 선기씨도 “내가 미안하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남측 최고령자 강정옥(100·여)씨의 북측 동생 강정화(85)씨는 “(언니가) 사망했다 생각했는데...너무 좋다”며 울먹였다. 그러자 정옥씨는 “아이고 감사합니다. 같이 삽시다”라며 동생과 헤어져야 한다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정화씨는 “그러면 얼마나 좋겠냐”며 “마음은 그러나 할 수 없지 작별해야 돼”라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손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가족들도 많았다. 목원선(85)씨와 원구(83)씨는 북측 형 목원희(86)씨에게 집주소가 써진 봉투 뒷면에 “사랑하는 우리 형님 잘 뵙고 돌아갑니다”라며 “부디 행복하고 다시 뵐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라고 적었다.
상봉행사 2회차인 이번에는 북측가족들이 먼저 버스를 타고 금강산호텔을 떠나면서 남북 가족들이 작별하게 된다.
북측의 형 임기산씨(87)와 만난 남측의 동생 임홍근씨(81)는 작별상봉이 끝난 뒤 형이 타고 갈 버스 번호를 확인하며 마지막까지 형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싶어 했다. 홍근씨가 “버스 몇번이야”라고 물어보자 북측의 조카 임춘선씨(52)는 말없이 손가락 아홉 개를 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이날로 지난 20일부터 시작된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와 2회차 행사가 모두 끝났다. 이산가족들의 이날 마지막 일정은 작별상봉 겸 공동오찬으로 마무리됐으며 남북 이산가족은 버스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오후 1시20분 귀환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