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태우 기자] 임단협은 일찍 완료했지만 한국지엠의 노사 갈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 2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발생한 한국지엠 사태가 생산부분과 연구개발(R&D)부문 법인분리 계획에 대한 노사 갈등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회사측은 논란이 지속되며 소비자 불안을 부추겨 판매 회복을 통한 경영정상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 노조(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지난 30일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GM자본의 법인 쪼개기에는 제2의 공장폐쇄 또는 매각 등 꼼수가 내포돼 있다"면서 "법인분리계획은 치밀하게 계획된 구조조정을 위한 포석이라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앞서 지난 7월24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법인분리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회사측이 법무법인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앞세워 노조를 압박하고 임시주주총회를 통한 주총결의를 시도하는 등 법인분리 추진을 본격화하자 2대주주인 산업은행에 이를 저지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는 이날 산업은행에 보낸 요구서한에서 "법인분리를 한다고 해서 회사가치가 상승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도 연구개발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인분리를 하려고 하는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제조업, 특히 자동차산업은 개발, 생산, 판매의 세 가지 큰 축이 기본으로 구성돼야 하는데, 한국지엠은 유럽 쉐보래 판매법인을 없애면서 판매구조는 이미 무너졌다"면서 "이번에 연구개발부문을 떼어내겠다는 GM 의도가 관철된다면 한국지엠은 생산부문만 남게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한국지엠은 GM의 생산하청기지로 전락하게 되고, GM이 생산물량을 배정하지 않는다면 한국지엠의 미래는 없어지고, 소멸되는 구조로 전락하게 된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노조는 "GM의 의도는 반드시 무산시켜야 한다"면서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서라도 저지시킬 것이고, 이를 이해서는 산업은행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이같은 주장을 근거로 산업은행에 이사회 및 주주총회의 반대의견 개진과 비토권을 사용해 GM의도를 무산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같은 노조의 반발은 생산부문과 R&D 부문을 분리해 놓으면 향후 GM의 한국 철수가 쉬워진다는 불안감의 표출로 풀이된다. 기존 구조에서 GM이 한국 철수를 결정한다면 쉐보레 브랜드와 차량 설계 등 지적재산권을 제외하고 생산 부문만 매각하는 게 쉽지 않지만 미리 생산과 R&D를 분리해 놓으면 그런 걸림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측은 법인분리가 한국 철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차량 개발을 위해 GM 본사의 R&D 부문과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유지하려면 별도의 R&D 법인이 존재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에 법인분리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GM 본사가 한국지엠에 개발이나 생산을 배정하기로 약속한 신차는 한국에만 판매되는 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으로 더 많이 팔리는 글로벌 차종"이라며 "그만큼 개발 과정에서 GM 본사와 유기적인 협력 체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제품 개발 업무를 집중 전담할 법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R&D법인 분리는 GM 본사가 한국지엠 경영정상화 방안 마련 과정에서 약속한 아시아태평양 본사의 한국설립과도 연관된다고 덧붙였다.
법인분리에 대한 노사간 입장차가 워낙 큰 만큼 이번 논란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조는 이미 올해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해 내부적으로 회사를 압박할 마땅한 카드가 없는 만큼 장외 투쟁에 주력하고 있어 오는 10월 열리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국지엠 법인분리 이슈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지난해 10월에도 국회 정무위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불거졌던 한국 철수설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 공세를 받은 바 있다.
회사측은 법인분리 논란이 장기화되는 게 회사 경영정상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다.
이미 지난 2월 군산공장 폐쇄 이후 3개월간 한국지엠의 국내 판매는 반토막이 났고, 아직까지 기존 평균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에게 한국지엠 사태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준다면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회사측 판단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조속한 경영정상화를 위해 소비자 불안을 불식시키고 판매에 전력을 다해도 부족한 시기인데 논란이 지속되며 판매 동력이 약화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