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호텔의 이그제큐티브 타워 스위트룸./사진=호텔롯데
[미디어펜=김영진 기자] 지난달 20일 리뉴얼 오픈한 서울 반포의 JW메리어트 호텔의 지향점은 '진정한 럭셔리', '차원이 다른 럭셔리'로 정했습니다. 또 이달 리뉴얼 오픈한 소공동 롯데호텔의 '이그제큐티브 타워' 역시 '강북 최고의 럭셔리 호텔'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강남권에 시그니엘 호텔이 있다면 강북권에서는 롯데호텔의 이그제큐티브 타워가 최고 럭셔리 호텔이 되겠다는 포부인 것이지요.
국내 특급 호텔들이 기존 5성급에 머물지 않고 6성급. 7성급 호텔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는 이미 글로벌 호텔 체인들에서는 진행되고 있었고 선진 도시에 진출해 있는 호텔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서울은 그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에 속합니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이론'과 같은 유명 학자들의 소비와 욕망에 관한 이론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본능은 만족하지 못하고 점점 더 높은 욕구를 추구합니다. 소비도 소유 중심에서 경험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명품 브랜드들이 선호되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옷은 SPA브랜드를 입으면서도 여행과 맛집을 열심히 다니는 것과 유사하다 볼 수 있습니다.
5성급 호텔에 만족하지 못하고 6~7성급 호텔들이 생겨나는 배경 역시 호텔 기업들의 이윤 추구 뿐 아니라 인간의 욕구가 낳은 산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랜드 하얏트보다 더 높은 파크 하얏트, 웨스틴 보다 높은 세인트레지스, 힐튼보다 높은 콘래드, JW메리어트보다 높은 리츠칼튼이 생겨난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나라도 점점 더 럭셔리 호텔에 대한 니즈가 증폭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호텔들이 너무 많아지면서 더 남다르고 럭셔리하고 희소성이 있는 브랜드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JW메리어트 서울과 롯데호텔 이그제큐티브 타워 이외에도 여의도에는 아코르 계열의 럭셔리 호텔인 페어몬트가 오픈을 준비 중입니다. 압구정에도 하얏트 계열의 럭셔리 부띠크 호텔인 안다즈가 오픈을 위해 열심히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2020년 리뉴얼 공사에 들어갈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도 인터컨티넨탈 브랜드를 빼고 리츠칼튼이나 월도프 아스토리아를 넣을 것이라는 설이 돌고 있습니다. 파르나스 호텔 측은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지만 리뉴얼 공사를 시작하기 이전에 브랜드를 확정지어야 하기 때문에 내년 중반 쯤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 외에도 서울역쪽에 샹그릴라 호텔이 생길 것이다, 삼성동 현대차 GBC 타워에 럭셔리급 호텔 브랜드를 넣을 것이라는 등 여러 설들이 많습니다.
서울, '럭셔리 호텔의 무덤' 오명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울은 호텔업계에서 '럭셔리호텔의 무덤'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쟁쟁한 럭셔리 브랜드들이 서울에 진출했지만 철수했거나 브랜드 위상에 맞지 않게 무너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몇 년 전까지 강남에는 세계 최고 럭셔리 브랜드로 꼽히는 리츠칼튼 호텔(현 르 메르디앙 서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리츠칼튼은 그 명성에 어울리는 시설과 서비스를 보여주지 못해 고객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줬다고 합니다. 전 세계 리츠칼튼 중 매우 낮은 평가를 받은 호텔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 호텔은 리뉴얼 공사 이후 리츠칼튼 보다 몇 단계 낮은 브랜드인 르 메르디앙이라는 간판을 달고 오픈을 하게 됐습니다.
광장동에 있던 워커힐 소유의 W호텔도 리뉴얼 공사 이후 W 브랜드가 빠지고 비스타 워커힐로 리뉴얼 오픈했습니다. W 브랜드는 스타우드(현 메리어트) 계열의 럭셔리 부띠크 호텔로 전세계 도시 중 가장 핫한 지역에 주로 위치해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W호텔은 도심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광장동에 오픈하면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었죠.
장충동의 반얀트리 호텔도 비싼 가격으로 인해 우리에게 럭셔리 호텔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럭셔리 호텔 브랜드는 아닙니다. 방콕 반얀트리는 일박에 10만원 대에 투숙도 가능할 정도입니다. 이 브랜드는 리조트 호텔에 가깝고 스파로 유명한 호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포지션이 럭셔리에 맞춰져 있었지만 오너기업인 현대그룹의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만족스러운 시설과 서비스를 기대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여의도의 콘래드 호텔 역시 힐튼 계열의 럭셔리급 호텔 브랜드로, 오픈 초기 큰 기대를 모았지만 고객들에게 그 급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해 실망감을 준 호텔입니다. 가격 정책도 급격하게 빨리 무너진 호텔이었습니다. 광화문의 포시즌스호텔도 전 세계 진출해 있는 포시즌스에 비하면 비즈니스급 호텔에 포지셔닝이 돼 있습니다.
JW 메리어트 서울 1층 로비./사진=센트럴시티
롯데호텔이 럭셔리 브랜드로 런칭한 잠실의 시그니엘도 그들이 럭셔리 브랜드 호텔이라고 알리는 것이지, 전 세계가 인정하고 고객들이 인정하는 럭셔리 호텔 브랜드는 아직 아닙니다. 실제 시그니엘 후기들을 보면 롯데월드타워 최상층에 위치한 메리트는 크지만 수영장의 시설도 떨어지고 고객들에게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삼성동의 파크 하얏트도 글로벌 파크 하얏트 호텔들에 비하면 규모도 작을 뿐더러 삼성동이란 위치상 비즈니스호텔에 가깝다고 인식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최근 몇 년 사이 오픈한 호텔 중 힐튼부산이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탁 트인 바다 전망과 넓은 수영 시설 등으로 인해 고객들이 지속적으로 찾고 있고 호텔 가격도 지속 상승하고 있죠.
그나마 개인적으로 국내 호텔 중 럭셔리 급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은 포시즌스호텔, 파크하얏트 서울, 시그니엘호텔, 서울 신라호텔 등이 아닐까 합니다.
왜 럭셔리 호텔 성공하지 못할까
왜 서울에서는 럭셔리 호텔이 성공하지 못하고 '럭셔리 호텔의 무덤'이라는 오명이 생겨났을까요. 호텔은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고 시설과 서비스만 고급화한다고 럭셔리가 되는 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봤는데, 우리의 국민성은 그렇게 친절한 것 같지 않습니다. 호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들도 그렇고 호텔을 찾는 고객들도 그 급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국내 호텔에 투숙해서 최고의 서비스로 기억되는 호텔은 거의 없습니다. 친절하지 못하고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직원들을 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성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가 아닌, 매뉴얼대로의 서비스는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매뉴얼대로만 해도 중간은 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방콕이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되고 글로벌 체인 호텔들의 집결지가 된 배경은 '천사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친절한 태국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겁니다.
호텔에서 만나는 한국 고객들도 매너 없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호텔 내에서 시끄럽게 한다거나 클럽 라운지에 있는 음식들을 가져가기도 하고, 무리한 서비스를 요구하며 직원들에게 큰 소리 치고 반말까지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호텔은 최저가로 이용하기 원하면서 막상 호텔에 가서는 '뽕을 뽑겠다'는 각오로 체크인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블랙 컨슈머' 고객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호텔 직원들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비스가 아닌, '껍데기뿐인 서비스'로 인해 불쾌함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텔 오너들은 숙련된 직원을 뽑고 교육 시킬 정도로 투자를 하지 않고, 직원들은 낮은 임금으로 인해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악순환이 우리나라에 럭셔리 호텔이 정착하지 못하는 배경으로도 여겨집니다. 그 외에도 서울이 럭셔리 호텔 브랜드들이 들어설 정도의 국제적인 도시의 위상을 갖추지 못한 측면도 클 것입니다.
럭셔리 호텔은 가격만 비싼 호텔이 아닌 그 나라나 도시의 서비스 문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보여 집니다. 또 관광 도시로서의 위상도 올라간다고 보입니다.
조만간 안다즈도 강남에 오픈하고 페어몬트도 여의도에 오픈할 예정입니다. 언젠가 서울에도 리츠칼튼, 월도프 아스토리아와 같은 최고급 호텔 브랜드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호텔 기업들이 새롭고 고급화된 브랜드를 늘리고 싶어 하고 인간의 욕구가 이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우리는 럭셔리 호텔을 경험할 성숙한 태도를 준비해야할 것으로 보여 집니다.
[미디어펜=김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