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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결 관피아, 관산학 복합체...소비자 무시 정부로비 혈안

2014-06-24 11:40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황근 선문대교수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이 아마 ‘관피아’라는 용어일 것이다. 말 그대로 관료들이 사회 모든 영역을 지배하면서 권력화되고 아울러 거기서 파생되는 이권을 챙겨먹는 현상을 빗대어 나온 말이다. 그렇다고 한반도에서 이런 관료 주도 현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멀리 보면 정도전이 만들어 놓았다는 신권국가 조선왕조에서 시작해 일제관료통치와 해방이후 군사정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역사에 면면히 흘러온 큰 줄기 중에 하나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리어 최근 ‘관피아’가 문제된 것은 정치적 민주화가 진척되면서 관료가 직접 통치하지 않는 명목상의 자율적 영역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즉, 강력한 통치 권력과 이를 뒷받침하던 권위국가체제가 정치적 민주화를 거치면서 다원주의 사회로 이행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많은 다양한 영역들이 국가의 직접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화 혹은 민영화 되었지만, 이들 영역에 관료들이 침투해 들어가면서 여전히 국가나 관료의 통제범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한다.
 

1990년대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이름만 민간자율기구인 ‘00협회’ ‘00위원회’ 같은 수없이 많은 민간자율기구들이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졌다. 심지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위원회 정부’라는 별명까지 붙었었다. 이들 기구들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정부 혹은 관료를 상대로 한 로비가 주 업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들 기구들의 장이나 주요 대외창구 역은 대부분 집권세력과 연계된 정치인 아니면 관련 정부부처출신의 관료들이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관료들을 선호하는 현 정부는 산하기관이나 사업자들의 이익단체들에까지 관료들이 차지하는 정도가 극도로 높아졌다.
 

그러면 이들 민간 이익단체 혹은 사업자들이 관료들을 대거 영입하고 정부부처를 상대로 한 로비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 정부 관료들의 정책결정시스템의 문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주지되어 온 바와 같이, 관료들의 특성은 절대로 소신과 철학이 투철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정권은 수없이 바뀌어도 관료는 영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른바 ‘영혼이 없는 복지부동’이 자연스럽게 생리적으로 체질화되어 왔다.
 

대부분의 정부부처들이 사업자들간에 이해갈등이 높거나 정치적으로 부담이 큰 정책결정을 위해서 이른바 내부에 사업자와 이익집단 대표 그리고 전문가라는 이름의 교수들을 섞어 넣은 ‘무슨 무슨 연구위원회 혹은 연구반’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거룩하게 표현하면, 학술용어로 이른바 ‘조합주의적 정책결정과정’이다. 때문에 이 위원회나 연구반에 사업자 혹은 이익집단들은 해당 부처 관료들과 인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이른바 말이 통하는) 관료출신들을 경쟁적으로 대표선수로 내보낼 수밖에 없다. 관료출신들이 피규제자인 사업자나 무슨 협회같은 이익집단에 포섭되는 구조가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정부위원회에 들어가는 교수들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 특정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해당 부처가 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전문가를 포함시키는 것 역시 이해당사자들간의 안배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전문가 역시 특정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우호적인 사람들로 안배해 이해당사자들에게 추천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해당 분야에서 특정 이익집단으로부터 벗어나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는 위원회에 포함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전문가라는 교수들 역시 이익집단을 대표하는 ‘관피아’의 한 부분일 수 밖에 없다. 때문에 피규제자인 사업자들은 ‘사외이사, 무슨 무슨 자문위원, 무슨 무슨 위원회’같은 형태도 이른바 자기편 교수들을 확보하는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당 정부부처의 책임자나 담당자가 특정 사업자나 이익집단에 경도되어 있다면, 말도 할 것 없이 그런 폐해는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지금의 관피아 문제는 ‘정부관료 + 사업자나 이익집단에 포획된 전직관료 + 특정 사업자와 유착된 전문가 교수’로 구성된 ‘관·산·학 복합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가 대학정책을 취업/산학협력 같은 실용주의에 치중하면서, 대학들이 전직관료들을 교수로 채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목상으로 학생들에게 실무에 필요한 부분을 가르친다는 것이지만, 대학들의 속내는 이들이 정부부처를 대상으로 각종 로비를 통해 정부지원을 많이 받아보자는데 있다. 실제 일반 교수들도 마찬가지지만, 교수평가에서 정부위원회에 얼마나 많이 참여하는가가 이렇게 채용된 교수들을 평가하는 중요 잣대가 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관·산·학 복합체’는 시장에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경쟁해야 하는 사업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도와 법을 통해 이익을 누려보려는 경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실패’인 것이다. 여기서 소비자 주권이나 자본주의적 경쟁은 존재할 수 없고, 국가의 힘만 존재할 뿐이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관료국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 군산학 복합체의 병폐를 연구한 바 있는 크라젠버그(Crazenberg)에 의하면, 이 같은 산학협력체는 ‘계약동거형태’로서 절대 영원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래서 ‘관피아’는 마피아 즉, ‘평소 의리를 강조하지만 최종 심금에서 의리가 작용하지 않는 양아치 조직’과 같은 것이다. /황근 선문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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