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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사퇴, 박근혜정부 '기회주의 약체권력' 우려

2014-06-24 13:19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표정은 의연하고, 목소리 역시 당당했다. TV로 지켜본 그의 모습은 사퇴하는 사람의 분위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하는 등 그동안 직무유기 내지 태업을 해온 국회를 나무라는 대목도 적절했고, “진실보도야말로 저널리즘의 기본”이라고 한 말도 설득력이 있었다. 언론인 출신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로선 응당 했어야 했던 발언이다. 무슨 말을 했느냐 만큼 무슨 말을 하지 않았느냐도 중요한데, 그는 KBS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리라.
소송을 하겠다던 KBS의 이름을 물러나는 자리에서까지 반복하고 싶진 않았으리라. 필자는 그걸 문창극이라는 사람의 됨됨이 혹은 인품이라고 본다. 대신 그는 보다 큰 얘기, 즉 여론정치의 폐해를 언급하는 걸 잊지 않았다. “오도된 여론이 국가를 흔들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그 대목이 매우 함축적이었고, 오늘 사퇴 회견의 하이라이트 발언으로 기억해둘 만하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훌훌 털고 일어서는 자리라서 그의 말은 액면 그대로 들렸다.

오늘 부로 이 나라의 진실은 땅에 떨어졌다

오늘 중도사퇴 기자회견에서 문창극은 그간 제기됐던 의혹에 대한 약간의 소명(疎明)과 함께 '절제된 소회'의 일부도 털어놓았는데, 그래서 남자다운 멋도 일부 남길 수 있었다. 다행이다. 단 여기까지다. 그에 대한 덕담은 이걸로 됐다. 끝내 중도사퇴를 결행한 그의 개인적 거취도 중요하지만, 오늘 사퇴회견으로 이 나라의 진실은, 이 사회의 정의는 땅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는데, 이게 실로 안타깝고 화가 치민다. 이 상황을 어떻게 추스를까 생각하면 정신이 다 아득해진다.
사실 문창극 문제는 정치인의 명예가 걸려있는 사안만이 아니라 너무도 분명한 진실과 거짓의 문제였다. 더 이상 명쾌할 수가 없었다. 선동방송 KBS의 거짓보도에 가짜 여론이 형성되고, 이걸 민심이라고 굳게 믿는 이들이 벌이는 마녀사냥의 광기(狂氣)에 나라가 흔들린 소동에 불과했다. 반복해 말하지만, 공영방송 KBS의 거짓보도가 진정 놀라운 건 총리 임명이라는 헌법적 행위 앞에서 의도성을 가지고 장난을 걸어온 대담성에 있다.

문창극은 좌편향된 언론의 구조를 잘 몰랐다?

때문에 문창극과, 그를 지명한 대통령은 이에 맞서 진실을 수호할 엄숙한 책무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중도사퇴를 반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번 사태의 전체 맥락과 급소(急所)를 충분히 파악치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창극은 자신이 친일파 매국노로 몰린 것을 놓고 크게 억울해 했지만, 멀쩡한 사람을 몰아붙이고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는 좌편향된 언론의 구조와 풍토를 너끈하게 읽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여러 번 전해줬다.
그래도 기대가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뭘 몰랐던 문창극이 이번 일을 계기로 단련되고 각성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 점잖은 유가(儒家)형의 선비에서 거짓선동을 벌이는 이 땅의 좌파와 싸우는 뚝심있는 전사(戰士)로 자라나길 내심 기대했다. 그래서 고질(痼疾) 중의 고질로 굳어진 문화계-언론부문에 대한 개혁의 시동을 거는 모습까지를 보고 싶었다. 이번 퇴임사 말미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꼭 돕고 싶었다”고 했는데, 정 그랬다면 청문회를 통과한 뒤 사회안정의 기본 조건이자, 정국 운용의 관건인 이 사안에 대통령과 함께 올인을 했어야 옳았다.

   
▲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24일 끝내 중도하차했다. 박근혜정부가 이번 일을 계기로 거짓 여론과 선동에 굴복하면서 기회주의적 약체정권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보수우파의 민심이반도 커질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론압박에 또 다시 휘둘리다니…

이 모든 기대가 사라진 지금의 상황은 6년 전 MBC PD수첩 광우병 사태보다 더 고약하다. 많은 이들이 사건 초기부터 ‘광우병 시즌2’라고 걱정한 것도 그 때문인데, 앞으로 좌파의 입맛과 이념에 안 맞으면 누구라도 ‘딱지’ 붙여 생매장당하는 풍토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가히 오웰리안 소사이어티가 이 땅에 완성되고, 거짓과 부정의 앞에 눈을 감는 침묵의 카르텔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진보 강박증이 우심한 게 한국사회인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좌파가 사실상 통치-지배하는 이런 전체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이 둘은 수렴되고 있는 중이다) 그룹은 더욱 된서리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젠 우파 정부의 보호막이란 것도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된서리를 맞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 다시 된서리를 세게 맞은 듯하다. 그는 세월호 사태 때 가짜에 불과한 ‘슬픔과 분노의 여론’이 주는 압박을 극복치 못했는데, 이번에도 여론몰이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대통령이 지지율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사실 지난 1주일여 청와대는 총리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보다는 중도사퇴하도록 유도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보도를 지켜보면서도 설마 싶었고, 쉬 믿기지가 않았다. 실은 청와대가 뒤에 숨어 조종을 하는 대신에 스스로 전면에 나섰어야 옳았다. 이런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통에 대통령이 민심 혹은 여론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고,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으니 무기력하기 짝이없다는 지적이 연달아 나왔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간잽이로 알려진 안철수가 사돈 맺자고 하는 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농담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실기(失機)하지 않으려면 기회는 아주 없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온 21일 저녁 서울공항이 그 최상의 무대였다. 복잡한 말이 필요 없었다. 단지 이렇게 몇 마디만 강단있게, 뚝심있게 전하면 됐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문창극 구하기에 올인했어야

“제가 없는 동안 벌어진 총리 후보자 논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순방 중 풀 동영상을 직접 검토했지만, 아무런 문제를 발견치 못했습니다. 그가 식민사관을 가진 분이 아니라 극일(克日) 의지를 가진 애국자라는 걸 새삼 믿게 됐습니다. 국민들께서 오해를 거둬주시면, 저는 임명동의안 및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보내겠습니다. 국회는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일을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총리가 필요합니다.”
그건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TV조선에서 했던 발언 수준(“풀 동영상을 보고 나는 감동 받았다”)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가짜 여론을 되돌리기에는 적절한 계기였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책임있는 리더, 결단을 내리는 지도자의 모습을 회복했을 것이다. 사실 당시는 청문회를 정면돌파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상당히 조성됐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보도본부장 이진숙이 이끄는 MBC가 풀 동영상을 금요일 저녁에 방영하면서 여론이 돌아섰고, 청문회 통과도 한 번 해볼만 하다는 관측이 꽤 많았다.

   
▲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지난 24일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사퇴와 관련, 박근혜대통령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의 회견을 하고 있다.

지금은 우파 쪽에서 민심 이반이 일어날 수도 있는 위험상황

그러길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와대가 취한 액션은 아무 것도 없었다. 눈치보기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문창극의 사퇴 회견은 최악의 결정이었다. 멀쩡한 사람 문창극이 자진사퇴를 하도록 조종하는 모습은 분명 정의롭지 못했고, 당당한 것과 거리가 멀었다. 누구는 그런 행태가 너무 비열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자기 식구들 하나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여론정치의 외압에 굴복해 참과 거짓 사이를 오락가락하다니…. 지금 일부 우파인사들은 분노와 격앙된 모습은 상상 그 이상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이라던 우파 쪽에서 민심 이반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일정하게 지지철회도 예상된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라는 캐치프레이즈도 무색해졌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다시 위기다. 그것도 구조적인 위기가 분명하다. 누구보다 당찬 결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던 박근혜 정부의 배신 아닌 배신 때문이다. 기회주의적 약체 정부로 평가되던 이명박 정부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하는 지적이 지금 일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 무조건 우호적이던 우파 운동이 문창극 파동 이후 어떻게 바뀔 지도 한 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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