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한반도의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의제로 삼은 남북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남측 대통령으로서 11년만에 방북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담판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열렸던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미간에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는 만큼 이번 문 대통령의 방북은 중대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이번에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제시될 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도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또는 남북이 바라는 연내 종전선언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치러야 할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고려할 때 이번에 나올 비핵화 조치에 따라 2차 북미정상회담이 곧바로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북미간 종전선언과 핵신고에 대한 입장차를 좁혀야 한다. 북한은 ‘선 종전선언’으로 체제 보장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핵신고와 검증 절차부터 요구하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대북특사단의 2차 방북 이후 기대됐던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불발되면서 문 대통령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지금까지 북한은 미국의 종전선언이 우선되어야 다음 비핵화 수순을 밟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문 대통령도 북한이 이미 ‘미래 핵’은 제거했다고 평가하며 이제 ‘과거 핵’을 제거하려면 미국의 상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이제 북한이 더 한걸음 나아가야 할 일은 ‘미래 핵’뿐 아니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핵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북한이 좀 더 추가적인 조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것이 북미간의 교착 원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시한인 2020년까지 비핵화 달성에 우선 합의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임기 내’ 제안은 폼페이오 장관이 먼저 언급한 것이지만 김 위원장도 지난 5일 우리측 대북특사단을 만났을 때 제시했다.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여전히 종전선언을 선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서 이번에 문 대통령이 몇 가지 시나리오의 중재안을 마련해 방북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27일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한 뒤 걸어나오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17일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 발전 △비핵화를 위한 북미대화를 중재하고 촉진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 신뢰구축을 위한 포괄적 합의의 세가지를 꼽았다.
이날 임 비서실장은 언론브리핑에서 비핵화 의제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고, 어렵고, 어떤 낙관적인 전망도 하기 어렵다”면서 “비핵화 의제는 남북간 실무적인 논의로 안 되는 것이므로 양 정상이 만나 얼마나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임 비서실장은 “문 대통령이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핵신고 리스트 제시와 검증 절차에 대해 설득할 것인지도 전혀 예측하기 어렵다”며 “다만 김 위원장보다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더 많이 알기 때문에 미국의 고민과 생각을 잘 전달하고 솔직하게 의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임 비서실장은 “과거 남북 정상간 회담에 비핵화 의제가 올라온 적이 없다. 그동안 북한이나 미국도 비핵화 의제는 북미간 협상 의제로 여겨왔다”는 말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논의의 어려움을 전했다.
다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첫날 오후에 한차례 진행되고 이어지는 환영만찬에다 다음날 오전에도 추가 정상회담이 예정된 만큼 임 비서실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일반 회담처럼 상투적인 형식보다는 실질적으로 대화하는 회담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선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북한의 입장도 들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최소한 ‘선 종전선언’ 이후 진행될 ‘비핵화 로드맵’의 윤곽이라도 도출해야 이어지는 유엔총회 계기 한미정상회담에 나설 카드를 마련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말한 ‘트럼프 임기 내’ 추진될 비핵화 과정이 제시되고 그 결말이 적어도 불가역적이어야 남북미가 함께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외신들도 문 대통령이 이번 방북이 결코 가벼운 걸음이 될 수 없는 점을 전망했다.
AP통신은 16일 “4월 1차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에 대한 전쟁의 두려움을 감소시켰고, 5월 2차 남북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견인했다면 문 대통령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가장 거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면서 “북미 간 비핵화 관련 모호한 합의를 뛰어넘는 실질적인 내용을 끌어냄으로써 북미 대화를 본궤도에 올려놔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분석했다.
같은 날 블룸버그 통신은 16일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와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다소 흔하지 않고 대담하며 창의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도록 설득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