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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폐기 안 될" 북핵 앞에 솔직해지기

2018-09-21 10:35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석 언론인

언론 정말 너무한다. 이 나라가 북핵에 깔려 죽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이 순간에 곁가지 얘기로 도배하거나 거짓-위선에 찬 보도 행태를 반복하는 걸 보면 환멸뿐이다.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된다"며 장밋빛 약속을 반복하는 정부도 문제이지만, 호들갑 떠는 언론도 못지않게 문제다.

문재인-김정은 평양회담에서 이 나라 언론이 물어야 했을 질문은 첫째도 비핵화, 둘째도 비핵화, 셋째도 비핵화였다. 북핵 폐기의 실질적 진전이 있었나를 따지는 게 핵심 중의 핵심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기준에 비춰 김정은이 19일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고자 적극 노력해 나아가기로 확약했다"는 발언은 헛소리에 불과했다.

그는 4월 판문점 선언과 6월 트럼프-김정은 회담 공동성명에도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즉 엊그제 구두 약속은 동어반복이며,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별도의 문제란 뜻이다. 이런 와중에 단연 돋보인 게 태영호의 발언이다. 그는 19일 저녁 채널A에 출연해 정곡을 찔렀다.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비핵화에 국한해 보자면 평양공동선언은 기존 1,2차 문재인-김정은 회담에서 진전된 게 없다는 냉정한 평가다. 결정적인 건 결국 북한이 "비핵화로 포장된 핵보유국"으로 간다는 비관적 전망인데, 이게 위력적이었다. 북핵 포기는 불가능하며, 한국은 들러리만 선다는 경고와 함께 문재인 정부에 이런 조언도 했다.

"북이 핵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정부가 국민 앞에 진솔하게 밝히라." 비핵화에 큰 진전이 있는 것처럼 포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쉬쉬해온 '불편한 진실'을 까발리는 솔직함 없이는 불가능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발언으로 불이익을 받아도 좋다는 비장함도 깔려있다. 그걸 전직 외교관 태영호쯤이 되니까 외교적 수사(修辭)로 포장했을 뿐이다. 단 한국민이 잘 못 알아들을까봐 이런 말을 덧붙이길 잊지 않았다. 김정은을 세 번 만나 속내를 확인해보니 핵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우리가 바라는 핵 포기란 종국적으로 없을 것임을 한국정부가 일단 털어놓으라.

그 점에 대해 국민들이 동의를 해줄 경우 핵 폐기란 불가능한 목표 대신 핵 관리라는 현실적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하라는 조언까지 했다. "국민이 원하는 게 평화라면, 차라리 현실적 접근을 하겠다"고 선언하라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한국사회의 위선을 깨는 폭탄급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평양사진공동취재단


직후 검색해보니 그는 북한이 비핵화로 포장된 핵보유국으로 갈 위험성을 반복해 경고해왔다. 그걸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완전한 비핵화) 아닌 'SVID'(suffici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충분한 비핵화)라고 표현했다. 그 얘길 자신의 책 <3층 서기실의 암호> 출간 기자회견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도 있었다.

그가 볼 때 핵 폐기에 기초한 합의는 불가능한데, 이유는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 안전 보장이란 김일성 일가의 세습통치 보장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핵 폐기 과정을 절대권력을 허무는 과정으로 안다. 때문에 그걸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그걸 염두에 두고 <3층 서기실의 암호>를 다시 읽었더니 전에 안 보이던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저들은 5년 전 제7차 당대회에서 핵보유국임을 이미 선언했다. 즉 게임을 일단 끝낸 것이다. 그리곤 한미 두 나라의 북핵 에 대한 면역(免疫)을 키우는 단계로 돌입했다. 방법은 인도-파키스탄처럼 표면상 핵 동결 선언을 한 뒤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이중전략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단기간에 핵실험을 서둔 뒤 바로 실험중지를 선언했다. 물론 미국 5개 핵보유국이 길길이 뛰었다. 그러다가 2001년 9.11 사태 직후  인도-파키스탄의 협력이 필요해진 상황에서 자연스레 유야무야됐다. 이 모델을 원용하는 전략을 5년 전 김정은이 모두 짜 놨다.

즉 '굳히기 단계'가 바로 지금인데, 정말 고맙게도 문재인 정부가 중재자를 선언하며 김정은의 도우미로 나섰다. 태영호의 조언은 그런 들러리 역할을 그만 두라는 것이다. 핵 포기란 없을테니 차라리 핵 폐기 대신 핵 관리로 선회하라는 조언은 그 때문이다. 문제는 있다. 국민이 과연 그걸 받아들일까? 그건 별도의 문제다. 그렇다면 남은 옵션은 두 가지다.

문재인-김정은이 한 편이 되어 대한민국 국민과 미국 설득에 끝내 성공하는 경우다. 유감스럽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자신들을 민족세력, 통일세력, 평화세력으로 포장할 경우 우리가 그걸 받아들일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 그 경우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노예의 삶을 우린 각오해야 한다.

물론 반대의 가정도 가능하다. 문재인-김정은을 공모세력으로 규정하는 새로운 인식의 반전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태영호의 말처럼 완전한 핵 폐기는 환상이나 온전히 폐기하려면 군사적 옵션 밖에 길이 없다는 쪽으로 대세가 바뀌는 것이다. 이래저래 대한민국은 갈림길에 서있다.

어쨌거나 이 나라 언론은 정상이 아니며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찼는데, 그런 환경을 정말 못 참아 했던 사람인 소설가 조지 오웰의 말을 들어보자. "거짓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 혁명적 행위다." 그게 맞다. 태영호는 홀로 깨어 혁명적 행위를 한 셈이다. 당신에게 경의를 표한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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