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응 경총 전무 |
상반기 최고 유행어는? ‘특급 칭찬’도 오답은 아니겠지만 한 배우의 재조명을 넘어 불신과 실망이 난무한 현 사회적 분위기의 역설로까지 평가받는 ‘의리’가 보다 정답이라 하겠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리’로 치자면 최저임금은 단연 대표감이다. 최저임금 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나아가 국민경제에 이바지한다는 제도의 목적은 얼마나 선의로 가득한가. 그러나 만일 지나치게 높은 인상의 최저임금 탓에 오히려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어떤가? 그런 최저임금이 오히려 그 보호대상을 궁지로 몰게 된다면 한번쯤 그 ‘의리’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최저임금은 지난 2001년 1,865원에서 2014년 5,210원으로 약 2.8배 상승했다. 연평균 8.9%의 인상률이다. 이는 같은 기간 명목임금인상률 3.8% 대비 2.3배 높은 수치다. 생계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물가상승률 2.9%보다는 3배 이상 높고, 같은 기간 노동생산성 증가율 4.7%도 넘어선다. 이처럼 최근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상회하는 수치를 보이며 적정수준과 큰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결과, 2001년 2.1%였던 최저임금 영향률이 2014년 14.5%까지 급증했는데 이는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3~5% 정도인 것에 비하더라도, 전통적으로 높은 최저임금을 고수하고 있는 프랑스의 10.6%에 비하더라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우리 근로자의 14.5%가 최저임금근로자인 셈이다. 올해 또 높은 인상률로 결정되면 우리의 최저임금근로자 비율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그 대상 근로자를 넘어, 다른 근로자의 임금까지 동반 상승시킨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덩달아 임금과 연동된 사회보험 등 간접인건비까지 오른다. 특히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의 98.7%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 87.9%가 30인 미만 영세기업에서 근무한다는 점에서, 급격한 인건비 상승은 대부분 영세 중소기업의 몫이다. 이는 기업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자칫 근로자들의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도가 보호하고자 하는 바로 그들을 배신했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은 대목이다.
▲ 민노총 등 노동계가 과도한 최저임금인상을 요구하며 29일 서울 종로 보신각등에서 총파업시위를 벌였다. 최저임금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8.9%나 급등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은 요즘 유행하는 '의리'를 지키기는데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노동생산성을 훨씬 웃도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영세자영업자의 무더기 도산을 가져오고, 청소원, 경비원 등 중장년 일용및 특수직들의 일자리를 없앨 수 있다. 청년들의 취업도 어렵게 한다. 의리를 지키려다 정작 일자리가 필요한 사회적약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민노총 등 노동계가 29일 오후 보신각 주변에서 최저임금 인상 요구, 생활임금 쟁취등을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벌여 극심한 교통혼잡을 초래하고 있다./뉴시스 |
인상률만 높아 문제인가. 제도적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지난 2007년 아파트경비원처럼 휴식과 근로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감시 단속적 근로자들을 최저임금법 적용 대상으로 편입시키자, 대량 해고 사태가 속출했고, 일자리를 잃은 아파트경비원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광역시 택시 업종의 기본 임금이 대폭 상승하고, 시 군 면 단위 열악한 택시업체들이 연쇄도산을 우려하는 상황에 처한 이면에는 2009년 7월부터 택시 산업의 초과운송수익금이 최저임금의 산입범위에서 제외된 배경이 있다. 사납금 외에 근로자가 모두 가져가는 초과운송수입금을 최저임금 계산에서 제외시킨다면 택시사업주는 정말 최저임금을 맞추기가 불가능해진다. 외국인근로자에게는 기숙사와 식비를 지원하는데도 이러한 경비는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
막대한 인건비 부담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영세 자영업자들, 실직과 취업난으로 고통 받는 사회적 계층의 양산. 이쯤 되면 저임금 단신근로자 보호라는 최저임금 선의의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다.
최저임금제도 본연의 기능 회복을 위한다면 올 해, 나아가 최소 몇 년 동안 최저임금 안정이 불가피하다. 현 최저임금 수준은 최저생계비 개념을 넘어 어느 정도 문화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표준생계비에 가까운 금액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적용대상과 감액적용 규정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열악한 노동시장 현실과 다양한 취업계층의 구직수요를 반영할 수 있다. 55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최저임금이 감액 적용될 수 있도록 법령에 근거를 마련한다면 고령자 고용 확대의 유인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 산정 시에는 고정상여금, 현물급여, 숙식비 등을 포함해야 한다. 이 제도가 중소기업의 입장을 반영하고 실효성 있게 논의되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사전에 지급시기, 금액 등이 확정된 소득을 제공한 경우 그 가액을 적절히 평가해서 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노사가 의결과정에 참여하는 현행 위원회 방식도 소모적인 대립과 지리멸렬한 파행만을 되풀이한다. 노사의 의견 진술을 바탕으로 정부나 공익위원이 직접 결정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보다 생산적이고 효과적이다.
매년 데자뷔처럼 반복되는 노사의 최저임금 갈등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명분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더욱 민감하다. 기업이 최저임금 얼마 올려주는데 그토록 야박하냐는 힐난은 수백만 소상공인들의 어려움과 일자리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보다 훨씬 감성적인 공감을 얻는다.
미국이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려 하니까 우리도 그만큼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도 잘못된 주장이다. 미국은 최저임금을 매년 올리지 않는다. 심지어 10년 이상 동결하기도 한다. 몇 년 만에 올리는 것을 보고 우리도 저렇게 올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최저임금은 기본적으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높을수록 좋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부작용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세 자영업자들, 생계와 부양을 위해 재취업이 절실한 중장년 고령층과 오늘도 구직활동에 여념 없는 청년세대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게 ‘팩트’다.
최저임금 수준의 인상만이 능사가 아니고, 제도의 현행유지만이 답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시대적 상황과 변화에 따라 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용하고, 유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경고다.
최저임금의 안정과 제도 개선은 최저임금제도가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한 최선이자, 우선 과제다. 최저임금이 높아질 수 있도록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