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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엘리트주의 홍명보추락, 스포츠언론이 방조

2014-06-30 09:46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안타깝게도 홍명보 감독은 또 다른 MB로 낙하했다. 월드컵 3번째 무승을 삼켜야 했던 순간 손흥민이 울었고 기성용도 목이 멨다. 아파하는 선수들을 부축했지만 영원한 리베로 홍감독 자신의 명예를 일으켜 세울 이는 모든 매체를 헤집어도 찾기 어려웠다. 그가 상파울로 경기장을 떠나며 ‘좋은 경험’ 운운한 인터뷰는 너무 초라하게 꺾여 버린 패장에 대한 연민마저 불살랐다.

“월드컵은 경험이 아니라 증명하는 곳”이라고 깨끗하게 반박한 해설자 이영표의 돌직구가 바로 거대한 민심이었으니까. 어느 매체가 정치인도 아닌 홍감독을 MB라 부르며 실패한 리더 주장을 들고 나온 것도 화풀이와 자학이 뒤엉켜 끓고 있는 국민 정서에 다름 아니다. 물론 축구 망쳤다고 전 현직 대통령까지 오가는 리더십 논란으로 비화하는 건 너무 한 확산적 사고라고 손사래 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뉴 MB 케이스가 궁핍한 리더 시대를 허덕대고 있는 우리에게 딱 좋은 보약이 될 참고서라는 충정은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리더는 난세의 영웅 그 이상이어야 한다. 이순신 장군도 백범 선생도 안중근 의사도 모두 광채의 얼굴을 가진 영웅들이었다. 지독히도 어두운 난세였으니 구국의 영웅이 필요했고 말 달리는 선구자가 새벽 지평을 넘어와 횃불 밝혀야 했다. 어둠과 적을 물리친 초인들이다.

김구 선생을 ‘사랑스러운 테러리스트’라고 묘사한 작가 최인훈 말대로 이들은 명확한 소임을 안고 영혼을 던진 터미네이터형 리더들이다. 스스로 촉이 되고 탄환이 되어 적을 파괴한 인물들이었다. 그렇게 난세가 지나면 또 다른 유형 영웅과 리더가 나타나게 된다.

2002년 히딩크 감독. 난세의 영웅이면서 왕인박사와 같이 실질적인 가르침을 준 리더였다. 히딩크는 당시 1승만이라도 올려 한 좀 풀자는 한국 사람들 쫄아 버린 기개부터 쫙 펴 주었다. 한국축구협회장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목표요? 내 목표는 월드컵 우승입니다”. 네덜란드 상인다운 흥정이었던 지간에 이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본능이 새 역사를 걷어 올렸다.

   
▲ 브라질 월드컵의 한국팀 감독 홍명보는 원칙을 깨는 것쯤은 개의치 않는 지독한 불통과 자만의 리더였다. 1승에 대한 타는 목마름도 없던 귀공자감독, 축구계 미인이었을 뿐이다. 히딩트의 반에 반도 못되는 허명의 리더였다. 스포츠언론들은 이런 그를 침묵으로 묵인하는 카르텔을 형성했다. 이제 썩은 엘리트주의는 분리수거하고 타는 목마름으로 무장한 진짜 리더를 찾아야 한다. /화면 SBS-TV 캡처

머리를 쓰면서 공을 차라. 파벌과 학연 없다. 실력 본위다. 쫄지 말라. 실력과 기량에서 밀리면 둘 셋 모여 압박한다. 최전방 공격수도 당연히 수비 가담한다. 기본 체력부터 끌어올린다. 등등. “2002년 대회 직전 훈련을 마쳤을 때 우리는 무슨 사육당한 맹수처럼 변해있었다”는 유상철 선수 회고가 풋풋할 정도다. 이렇게 준비된 공포의 국가대표였으니 4강 신화까지 밀고 올라갈 원동력이 살아 있을 밖에.
 

대회 후에도 히딩크 리더십은 이어졌다.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을 유럽 무대로 인도했고 한 동안 네덜란드 지도자들이 한국 팀을 이끄는 화란 축구 즐거운 식민지를 경험케 했다. 이런 리더십은 축구를 넘어 전 사회적으로 퍼져 나간 세련된 실사구시 선진 모델이 되어 주었다. 낡아버린 기존 틀을 혁파하고 새 양식을 정립했으니 나폴레옹형 리더 쯤 되겠다.
 

이런 대찬 히딩크 리더십이 나폴레옹형 리더 유형으로 꽃피워 한국 땅에 뿌려 졌고 12년이 쌓였는데도 2014 브라질 참패로 돌아온 것은 정말 괴이하다. 더구나 홍감독은 모든 적통에서 제 1인자이고 축구계 주류 중에서도 선두, 즉 메인스트림 엘리트가 아닌가. 온갖 지원을 다 받았고 삼성전자 광고 후원까지도 한 몸에 두른 최강 엘리트가 왜 히딩크 절반, ‘반딩크’도 못 하고 마는 무기력함을 보이고 말았는가?
 

가장 큰 원인 독소는 우쭐하는 허명, 즉 엘리트주의에 있다는 분석이다. 히딩크와 홍감독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엘리트라는 세 글자다. 히딩크는 선수 시절 화려하게 꽃 피우지 못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명문 PSV 에인트호벤에 입단했지만 주전 자리도 제대로 얻지 못했다고 한다. 보통 선수였고 태클 감행으로 선수생활을 접은 트라우마도 있었단다. 그가 왜 항상 승리에 목마르다고 했는지 이해할 만도 하다.
 

이와 달리 홍고집 별명까지 얻는 홍명보감독은 완전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만 20살에 국가대표가 되었고 A매치 136게임, 월드컵 4회 출전, 아시아 선수 최초로 브론즈볼 수상(2002) 등 화려한 업적을 해냈다. 지도자로서도 내내 맨 앞줄에 그가 있었다. 이 굉장한 스포츠계 미인은 우리가 다 아는 엘리트 중 엘리트인데 어느새 실망스럽고 초라하고 고집불통이며 실패한 리더로 추락해 있다. 이런 패퇴를 두고 숱한 이유를 캐고 쓸어 담아 나가겠지만 아주 울림이 큰 분명한 메시지 하나는 꼭 짚어봐야 한다.
 

바로 “엘리트는 없다”는 서릿발이다. 우선 그는 모두가 다 아는 것을 정작 본인은 모르는 불통의 심벌이 되어 버렸다. ‘저는 남의 생각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홍감독 말은 얼마나 지독한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 찬 캐릭터인지를 잘 보여준다. ‘선수들이 좋은 경험을 ...’ 이라 한 16강 탈락 시점 발언은 그가 얼마나 절실하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타는 목마름 없이 평가전을 했고 헝그리 정신없이 브라질로 떠났고 뼈아픈 각성과 미안함 없이 작별할 따름이었다. 워낙 축구계 귀공자이고 미인이니까 그저 우아하게 ‘굿바이... 다시 만나요’라고 만 커뮤니케이션 하니 결국 난세의 스트레스로 남고 말았다.
 

싸움하기도 전에 져버린다고 홍감독의 주저앉은 리더십은 이미 선수 명단 발표 때부터 불거졌다. 스스로 “원칙을 어긴다...”며 특정 선수 발탁을 옹호했을 때 우리 사회가 너무나 관대했다. 당시 언론도 팬심도 과정이나 원칙쯤은 무시했다. 그가 성공해야할 지도자 자리에 올라 원칙을 깨도록 묵인한 우리 스포츠 언론들 전부에게 허명 엘리트 리더 도피를 도운 방조죄를 물어야 한다. 아주 분명하게 원칙 준수라는 덕목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언론이 없었다는 것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침묵의 엘리트주의 카르텔로 지목해 책임 지워야 한다.
 

불통과 자만으로 무너진 리더지만 다그치기에는 오랜 스타로서 정든 마일리지가 너무 많다는 동정론도 있다. 하지만 이런 관대함과 절연하는 저력을 보여줘야 난세의 영웅을 모실 수 있다. 준열하게 잘못을 털어내는 직언을 하고 새겨야 진짜 리더를 키울 수 있다. 축구야 미풍이지만 학교, 군대, 기업, 단체, 정부, 국가 지도자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몽땅 그 알량한 엘리트 우월감에 취해 원칙과 기준을 깔보는 습성을 고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난세 또 그 다음 난세만 쭉 뻗은 캄캄한 터널만 기다릴 뿐이다.
 

이번 월드컵 향연에서 경험하듯이 난세의 영웅은 별에서 온 그대처럼 뚝 떨어질 리 없다. 히딩크로부터 전수 받았으면 더 갈고 닦아 난세의 영웅 그 이상 가는 정주영 리더십, 김대중 김영삼 리더십 정도 닮아가는 토종 리더를 벌써 배출했어야 했다. 히딩크 반에 반도 못한 안일한 국가대표 리더를 세워놓고 대신 내 자신 종아리를 내리치는 심정으로 스포츠 언론, 미디어산업 관계자들에게 고한다.

청문회도 못하고 단 1승도 못하는 썩은 엘리트주의 일랑 분리수거해버리고 자신부터 낮은 데로 낮은 데로 임하소서. 거기 현장에서 뒹굴어 승리와 성공을 향한 타는 목마름을 지닌 진짜 리더를 찾고 북돋우며 내세워 영웅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이렇게 크게 보고 깊게 생각하는 언론이 아니라면 오직 편법과 반칙만 횡행하는 난세의 패장, 난파선 등지는 못난 리더들만 득세하고 집권해대는 흉한 한국을 고칠 방법이 없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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