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준 기자]한미연구소(USKI) 폐쇄 과정에 청와대 수뇌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25일 제기됐다. 북한 전문 사이트 ‘38노스’를 운영하던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는 지난 4월 한국 정부의 예산지원 중단으로 문을 닫은 곳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된 대외경제연구원의 내부문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일 대외경제연구원 관계자의 청와대 보고 당시, 홍일표 행정관은 “정책실장께서 알고 싶어하는 것 큰 틀에서 워싱턴 내에서 한국의 이익을 제고할 싱크탱크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전략임”이라고 했다.
김 의원 측은 “이 말은 명백히 장하성 정책실장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 있어서 보고가 이뤄졌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청와대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대외경제연구원이 먼저 와서 보고했다는 지금까지의 청와대 입장은 거짓이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날 보고는 홍 행정관 뿐 아니라 이태호 통상비서관과 차영환 경제정책비서관 등 청와대 주요 관계자들에게도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 비서관은 당시 “금번 보고자료로는 정책실장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발언했다고 김 의원 측은 전했다.
청와대는 올해 4월 한미연구소 폐쇄 결정이 논란이 되자 “청와대에서 먼저 요청한 것이 아니고, 대외경제연구원에서 보고하겠다고 연락 왔고, 사전에 접촉은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나아가 청와대는 당시 한미연구소 관련 사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도 검토했다. 2일 홍 행정관에게 보고한 대외경제연구원은 보완 지시를 받고 9일 자료를 보완해 추가 보고를 했다. 이 때 홍 행정관은 “VIP께 올라가야 할 보고서작성도 고려 중”이라고 발언했다.
김 의원 측은 “한미연구소 소장 교체 및 개혁 문제가 기존 주장대로 국회의 문제 제기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 청와대 정책실장과 여러 비서관 뿐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 보고까지 검토할 정도로 중대한 정권 차원의 관심사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해석했다.
대외경제연구원이 작성해 두 차례에 걸쳐 보고한 보고자료도 한미연구소장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이 입수한 보고자료를 살펴보면 보고서 개혁방안의 첫머리가 ‘소장교체 관련’ 내용이었고, 보고서의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실제 청와대 보고 이후 일주일 뒤인 11월 15일 공식서한 전달됐고, 소장을 직접 교체하는 방식이 아닌 올해 3월 연구소를 폐쇄하고 한국학 연구기능만 남기는 방식의 소장 교체가 이뤄졌다.
김 의원은 “한미연구소 폐쇄 과정은 과정 전반에 홍 행정관은 물론, 장 정책실장과 여러 수석실 비서관 등 정권 수뇌부가 각별한 관심을 갖고 깊숙이 개입돼 있음이 드러났다”며 “국익의 손상을 감수하면서 무리하게 우리 소중한 공공외교안보 자산을 증발시킨 것은 전형적인 직권 남용과 권력 남용에 해당하며, 현 정권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할 사안”이라고 일갈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김종석의원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