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임창용(42)이 KIA 타이거즈에서 방출됐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감이다.
지난 24일 KIA 구단에서 임창용 방출 소식을 전했다. 임창용에게 재계약 포기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의아했다. 임창용이 왜 KIA에서 버림을 받는 것일까.
사실 임창용의 나이로만 보면 현역 유니폼을 벗는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 내년 시즌이면 만 43세가 되는 임창용이다. 24년간 프로 생활을 하며 국내 무대를 호령했고, 일본에서도 위세를 떨쳤으며, 잠깐이지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도 올랐던 임창용이다. 하지만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구위는 전성기 때보다 떨어진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실력으로 보면 임창용은 KIA에서 방출될 이유가 없다. 조계현 단장은 "젊은 후배들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결정"했다고 임창용과 내년 계약을 포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임창용은 KIA에서 젊은 후배들의 기회를 막고 있었는가. 아니다. '후배들의 앞길을 막는다'는 것은 실력이 후배들보다 못한데도 경력이나 나이를 앞세워 엔트리 한 자리를 차지하고 경기 출전 기회를 얻을 때나 쓸 수 있는 말이다.
과거의 명성이나 업적은 빼고 임창용의 올해 성적만 놓고 보자. 임창용은 올 시즌 37경기에 등판해 5승 5패 4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5.42를 기록했다. 평범한 성적이지만 아주 나쁜 기록도 아니었다.
임창용은 기록을 훨씬 뛰어넘는 많은 역할을 해냈다. 중간계투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뒷문 쪽에 문제가 생기자 마무리를 떠맡았다. 후반기 들어 팀 선발진에 공백이 생기자 이번에는 11년 만에 다시 선발투수로 뛰었다. KIA 마운드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든 달려가 해결을 해주는 '임반장'같은 역할을 해냈다.
팀 내 어느 젊은 후배 투수가 임창용 대신 이런 역할을 해냈을 것인가. 이렇게 열일 해낸 임창용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한 후배가 있다면 누구인지 묻고 싶다.
물론 KIA는(또는 조계현 단장이든, 김기태 감독이든) 표면적으로 든 이유 외에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임창용의 방출을 결정했을 것이다. 비록 임창용이 여전히 웬만한 후배 못지않게 좋은 공을 던지고 체력도 유지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틀을 보고 미래를 위해 선수단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임창용을 전력 외로 분류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KIA는 임창용과 재계약 포기를 덜컥 발표하기에 앞서, 어떻게 임창용을 떠나보낼 것인지를 고민했어야 한다. 임창용이라는 이름 석 자에 담긴 가치, 한·미·일 통산 1000경기에 출전하며 쌓은 업적 등을 고려하면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방출을 통보하고 발표를 서두른 것은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임창용은 방출 통보를 받은 다음날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난 KIA에서 은퇴식 같은 걸 바란 것도 아니었다. 은퇴식을 해준다고 해도 내가 사양했을 것이다. 그냥 고향 팀에서 선수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소박한 꿈만 가지고 있었다. 구단에서 나에게 선택권이라도 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구단 방침은 이런데 은퇴를 하겠느냐', '지도자 연수를 다녀오겠느냐', '다른 구단에서라도 더 뛰고 싶으면 자유계약선수로 풀어주겠다'면서 나에게 의사라도 물어봤다면 나 스스로 고민을 하고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만 솔직히 그게 좀 섭섭하다."
임창용이 한 말이 결코 개인적인 욕심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KIA 구단에서 먼저 고려해줬어야 할 일을 대신 말한 것 같다. KIA는 방출 결정에 앞서 임창용에게 은퇴할 뜻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주고, 은퇴한다면 지도자 연수를 알아봐주고, 현역으로 계속 뛸 의사가 있다면 자유롭게 풀어줘야 했다. 시즌 중 불거졌던 소문처럼 임창용이 김기태 감독과 불화를 겪었고 그런 갈등이 방출의 주원인이라고 해도 이 정도 배려나 절차는 필요했다.
임창용은 현역으로 뛰면서도 '레전드' 수식어가 어울리는 몇 안되는 스타 플레이어다. KBO리그 통산 760경기 출전해 130승 86패 258세이브 19홀드 평균자책점 3.45를 기록했다. 역대 최다승 7위, 세이브 2위(1위 오승환 277세이브)에 랭크돼 있고 김용수(126승-227세이브)와 함께 100승과 200세이브를 모두 넘긴 유이한 선수다. 일본프로야구(238경기)와 메이저리그(6경기) 경력을 보태 한·미·일 통산 1000경기 돌파 금자탑을 쌓기도 했다.
임창용에게는 큰 과오도 있었다. 해외원정 도박 파문을 일으키며 2015년 삼성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KBO로부터 시즌 절반 출전정지 징계를 받고 은퇴 기로에 서 았던 임창용에게 손을 내밀었던 팀이 바로 KIA 타이거즈였다.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KIA가 우승한 후 동료 선수들이 임창용을 헹가래치고 있다. /사진=KIA 타이거즈
임창용이 처음 프로 생활을 시작한 팀, 고향 연고의 팀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던 임창용에게 손을 내밀어준 것이다. 그렇게 임창용은 다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지난해 통합우승의 영광을 함께하는 등 3년간 KIA 소속으로 뛰었다.
3년 전 임창용에게 베풀었던 KIA의 호의가, 이번 방출 건으로 인해 퇴색되고 말았다. 그저 필요할 때 갖다 쓰고 소용없게 되자 버리는 얄팍한 계산에 의한 선수 한 명 활용법이었을 뿐임이 드러났다.
임창용은 선수생활을 이렇게 고향팀에서 버림받은 채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은 듯하다.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연봉 상관없이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임창용을 필요로 하는 팀이 있을지, 아니면 그대로 은퇴하게 될 지는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고향팀에서 현역 마지막을 보내며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는 임창용의 희망은 사라졌다.
1000경기에 출전한 레전드 투수를 용도가 다했다고 헌신짝 버리듯 방출한 KIA, 유감이다.
[미디어펜=석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