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북한 리선권이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한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핀잔을 줬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기업 총수들이 북측 단장으로부터 이른바 '막말'을 들었음에도 이에 대한 사과 요구는커녕 묵인하려 했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거다.
30일 국회 등에 따르면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29일 열린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평양 남북 정상회담 당시) 옥류관 행사에서 대기업 총수들이 냉면을 먹는 자리에서 리선권이 불쑥 나타나 정색하고 '아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했다"며 "보고 받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답하며 이를 시인했다. 정 의원은 "왜 그런 핀잔을 준 것이냐"고 물었고, 조 장관은 "북측에서는 남북 관계 속도를 냈으면 하는 게 있다"고 설명했다. "(리선권을) 혼내야 될 것 아니냐"는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 질문에는 "제가 그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며 "짚고 넘어가야겠다 생각은 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리선권과 같은 테이블에는 손경식 경총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반강제'로 정상회담에 동행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측 단장으로부터 '막말'까지 들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정부에 대한 여론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 중인 S씨는 "문재인 정부가 이미 기업인들을 못살게 굴고 있으니 세계 최빈국 북한 조차 기업인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며 "이 나라의 발전과 번영에 기여한 기업가들이, 전 세계를 누비며 존경받는 기업가들이 왜 저런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켜주지도 못할 거면서 기업인들을 왜 데려 갔는지 모르겠다"며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던 정부 구성원들이야 말로 냉면이 목구멍에 넘어갔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회장(왼쪽부터)이 지난 9월 평양 방문 중 만찬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다./사진=평양공동취재단
경기도 분당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전 세계 어디서든 최상급 예우를 받는 우리 기업 총수들이 권력에 의한 강요로 시간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국제사회에서 '불량 국가'로 꼽히는 북한의 일개 관리로부터 홀대와 막말을 듣고 왔다"며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쩔쩔매고 있으니, 한국 기업인들이 그런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K씨는 "정부가 그룹 총수들을 대동한 평양 방문의 목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며 "그렇지 않고서야 전쟁터 볼모처럼 무슨 연유로 저런 타박을 받아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서 K씨가 언급한 '목적'은 기업의 '대북 지원'을 의미한다.
경기도 시흥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L씨는 "처음부터 기업인들의 방북이 이해가 안 됐지만, 그런 막말까지 듣고 왔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애초에 정부가 기업인들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마치 북한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 같다"며 "그간 (북한으로부터) 무시만 받고 이뤄놓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을 만든 정부가 책임지고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또 기업 총수들에게 저지른 북한의 '무례'는 결국 북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기업인들을 평양에 '억지로' 동행시킨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투자나 관심을 '부탁'해도 부족한데, 되레 북한 관계자가 핀잔을 준 것은 기업인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데려 갔으니 책임지고 사과를 해야 한다"며 "북한의 이 같은 무례는 대북 투자에 결국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