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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이 부른 '냉면' 살리기와 '목구멍' 죽이기

2018-11-06 15:40 | 문상진 기자 | mediapen@mediapen.com
[미디어펜=문상진 기자]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숨은 조연은 냉면이었다. 당시 옥류관 평양냉면을 대접하며 김정은은 "…멀리 온, 멀다고 말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한 마디로 은둔의 독재자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기웃거리는 줄까지 길게 늘어섰으니….

5개월 후인 9월 평양에서 열린 3차 남북 정상회담. 이날 오찬은 대동강 변의 옥류관 본점에서 열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도 특별수행단에 포함됐다. 냉면을 먹는 장면이 텔레비전을 통해 생생히 전해졌다.

한번에 2000여명이 식사를 할 수 있고 하루 평균 1만2000 그릇의 냉면을 판다는 옥류관. 북한 종업원들이 분주히 냉면을 나르는 모습도 빠지지 않았다. 남북회담의 조연역할을 또 이렇게 냉면이 해 내는구나 심을 정도로. 그렇게 평양냉면은 남북화해의 상징으로 친숙하게 다가오는 듯했다.

그리고 한 달 보름여 흐른 지금 냉면은 목에 가시가 됐다. 지난달 29일 국정감사장에서 북한 이선권이 대기업 총수들을 향해 면박을 줬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가 대기업 총수들을 향해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설마스러운 말을 했다는 것.

이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달콤한 환상을 깨게 만드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목구멍'이란 단어는 모욕적 꾸짖음이다. 아랫사람 부리듯 해도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더욱이 둘러앉은 밥상머리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 참담하고 치욕스러움이란….

정부가 나서 이선권에 따지고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과 여론이 폭발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 이어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정보위 국감에서 "냉면 발언이 사실이라면 무례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분명히 짚어야 될 문제"라고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루 이틀 지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조 장관은 건너건너 전해 들었다면 슬그머니 발을 빼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직접 대기업총수에게 확인전화를 돌렸다. '들은 바 없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전했다.

평양 방문중 옥류관 테이블에 앉은 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 구광모 LG회장, 최태원 SK회장(왼쪽부터). /평양공동취재단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밉다. 홍 원내대표는 적폐청산에 앞장서고 있는 권력자다. 대기업 총수 대부분은 현 정부에서 재판을 받았고 재판중이다. 반기업정서는 차치하고라도 대통령마저 '김정은 대변인' 소리를 듣는 마당에 누가 감히 '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상 '입단속'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직접 나서서 이선권의 막말을 두둔하는 발언도 했다. "말이라는 게 앞뒤 맥락을 잘라버리면 칭찬이 비난이 되기도 하고 비난이 칭찬으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남쪽 예법이나 문화와 좀 다르다고 해도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에서 받았던 엄청난 환대를 훼손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앞뒤 맥락을 살핀다고 뱉은 말이 아니 한 말이 되는 건 아니다. 예법과 문화 운운하며 에둘러 감싸는 모습이다. 예법은 아마도 남한보다는 북한이 엄격할 것이다.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청와대 대변인까지 나서는 걸 보면 했을 개연성에 무게가 실린다.
 
냉면을 먹다 봉변당한 기업인들은 북한에서 요청한 손님인 동시에 대통령의 수행단이다. 대통령의 환대만 보이고 우리 대표 기업인들의 모욕은 보이지 않나 보다. 기업인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이 모욕을 당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현실 직시와 우리에 대한 신뢰다.

왜 지금 대한민국은 북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왜 조급증을 내는가. 정말로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건 어느 쪽인가. 기울어진 운동장, 편향된 생각이 중심추를 찾지 않는 한 현실은 참담하고 미래는 암울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기우러진 추를 바로잡지 않으면 '하나'를 논할 수 없다. 갈등은 분노로 치닫는 과정이다. 지금 남북관계는 가족보다 이웃집과 내통하는 모양새다. 그로 인한 내부의 분열이 문제다. 남북 관계에 세계가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일방적인 과속 질주는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당당해 져야 한다.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된다. 숱한 도루의 실패 경험은 학습된 의혹이다. 국민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참담한 일이 되풀이 되어선 안된다. 평화는 구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상호 신뢰가 우선돼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봐선 안된다.

따지고 보면 냉면은 정치와 경제 같은 복잡한 이념과 사상이 녹여 있지 않다. 그저 음식이고 문화다. 평양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인 냉면은 실향민들에겐 그리움이고 향수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겐 언젠가는 그리되었으면 하는, 아니 그리되어야 하는 희망쯤을 담은 음식이다.

그쯤이면 끝나고도 남아야 할 냉면이 이제는 아마 역사의 기록에 남을 듯하다. '냉면과 목구멍'이라는 부끄러운 기록으로. 어영부영 넘어 갈 일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람까지 나서서 냉면 '살리기' 목구멍 '죽이기'에 훈수를 두어선 안된다.     

10월29일 국정감사 회의록에 명기된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는 어쨌든 살아있는 기록이다. 등장인물들이 남긴 어록들이 코미디인지 아닌지는 언젠가 밝혀질 것이다. 앞뒤 맥락이 잘렸든, 농담으로 한 말에 죽자살자 달려든 건지. 그때쯤이면 냉면 사리 추가 의혹도 풀릴 것이다. 그리고 2018년도 판 '과속 스캔들'의 흥행성패도.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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