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의 박근혜 대통령 리더십 해부 (2)-그는 박정희의 유산을 이해하는가?
지난 2개월 세월호 참사, 문창극 파동을 거치며 박근혜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離反)이 예측했던 것보다 빠르고, 큰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법과 원칙이 사라진 떼법 천하의 사회, 민중주의(평등주의)에 함몰된 무책임한 지식인 그룹과 언론 집단이 뒤엉킨 복합위기의 국면이다. 이런 난맥상을 콘트롤할 정부는 기회주의적 좌우합작 정권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항구적 불안사회 대한민국의 구조와 변화 가능성을 짚어보기 위한 시대로 연속칼럼 ‘박근혜 리더십 연구’를 내보낸다. 칼럼은 ①박근혜는 정말 포퓰리스트인가? ②그는 박정희의 유산을 이해하는가? ③사회전반의 지식정보 오염 정화(淨化)가 관건이다 등 3회로 나눠 싣는다. 이번이 두 번째다. <편집자주>
▲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
2012년 대선 때 당시 야당의 과거사 공세에 몰리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그렇게 밝혔다. “국민대통합, 100% 대한민국, 국민 행복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비전”이라는 발언도 그때 했는데, 그런 공허한 말과 함께 아버지 박정희의 가치는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일을 전후해 박근혜 후보는 서울 현충원의 김대중 묘소를 찾았고, 봉하마을도 참배했다. 박정희에게 반대했던 지학순 대주교의 묘소, 분신 노동자 전태일의 동상을 찾는 행보도 잊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좌파적 가치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가?
그렇게 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면 성공한 전략이라고? 필자인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물론 당시 박근혜 후보로선 몸 낮추는 것이 전술상 옳았으리라. 노무현의 악명 높은 발언대로 “우리 현대사는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고 5000만 국민이 굳게 믿고 있는 자기 부정과 모멸의 좌파 역사관이 너무도 대세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러 정황과 물증으로 보아 지금도 여전히 그가 좌파적 가치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으며, 그게 박근혜 포퓰리즘의 뿌리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일테면 대선 출정식 때 그는 “국가는 발전했고, 경제는 성장했는데 행복은 커지지 않았다”고 했다. 안철수 류(類)의 얼치기 좌파 정치인들이 약육강식의 폐해를 강조하고, 정글 자본주의가 어쩌고를 반복하는 발언과 너무도 닮은꼴이다. 실제로 그는 “원칙을 잃은 자본주의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는 말도 자주 했는데, 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덜하는 증거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바꾸겠다”고 한 선언도 뭔가 개운치 않았는데, 이윽고 경제민주화 구호와 복지 정책도 잇달아 나왔다.
그가 부인했던 5·16, 유신은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가 맞다
이런 식의 포퓰리즘적 발언을 “대한민국은 세계사적으로 기적의 나라”라는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발언과 대조해 보라. 발상과 접근부터 구분된다. 정치인 박근혜가 선대(先代) 대통령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은 꽤 많은데, 이승만-박정희로 이어진 건국(建國)혁명-부국(富國)혁명에 대한 확신부족도 그 때문이다. 5·16과 유신은 헌법가치를 훼손했다는 발언도 좌파의 수정주의적 현대사 인식 앞에 투항한 모양새에 불과하다. 사실 5·16,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한 갑론을박은 지금 거의 의미없다.
분명히 해둘 건 괜한 정치적 분탕질이나, 고만고만한 난쟁이 학자들의 헛소리가 아니라면 5·16, 유신은 현대사를 결정지었고, 그래서 엄연히 ‘대한민국적 가치’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그걸 너끈히 수호해야 옳지만, 박근혜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어느 나라도 모두 그러한데, 지난 회에 잠시 언급했던 영국의 마가릿 대처의 경우 역시 그랬다. 그는 ‘영국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졌고, 그래서 끝내 성공했다.
▲ 박근혜대통령은 선친 박정희정신을 잊어서는 안된다. 박정희대통령은 정치의 경제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창출했다. 1/n식의 분내는 모두를 망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포퓰리즘을 거부했다. 박정희대통령의 유산을 부인한다면 경제는 대 재앙에 빠질 수 있다. 박근혜대통령이 2일 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 그룹 회장과 만나 환담하고 있다. 안종범 경제수석(박대통령 옆)이 배석해서 경청하고 있다. |
대처 총리는 좌파에 물든 영국인의 영혼까지 바꾸려 했다
그가 겨냥했던 영국병 고치기의 “진정한 목표는 영국인의 마음과 영혼을 바꾸는 것”이었다. 정치공학(工學)의 차원을 넘어서 근본적 수술이었고, 그래서 좌파적 가치관에 대한 대청소 작업이었다. 아담 스미스의 나라에서 좌파가 오래 집권하며 생긴 돈 버는 것에 대한 괜한 비아냥하는 풍조와 부(富)에 대한 적대감, 복지의 그늘 뒤에서 거지 근성을 키우는 태도, 평등 지상주의에 대한 강박증, 영국 역사에 대한 괜한 죄의식을 가르치던 학교교육 모두를 바꿔야 한다고 그는 봤다.
그게 서양사학자인 서울대 박지향 교수가 펴낸 <중간은 없다-마가렛 대처의 생애와 업적>(기파랑 펴냄)에 나오는 핵심 내용의 하나이니 챙겨 읽으시길 권한다. 우리와 영국 사이에 풍토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다고? 그건 하나마나한 헛소리다. 어차피 구조는 같으며, 또 국가 개조를 언급했던 큰 그릇의 지도자에게 주어진 책무는 변하지 않는다. 그만큼 중요한 게 또 있는데, 오늘은 그걸 말하고 싶다.
대통령은 속류(俗流) 지식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많은 먹물들이 박정희를 이렇게 말한다. “박정희가 경제만큼 성장시켰고, 여러모로 애를 썼던 게 사실이야.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정치만큼은 아니잖아? 쿠데타로 집권했고, 절차적 정의(due process)를 어긴 유신은 또 뭐야?” 그렇게 말하는 게 속류(俗流) 지식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도 온 사회에 가득 찬 이런 생각, 지식정보의 오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이들 속류 지식인들이 생각 못하는 건 따로 있다. 박정희가 만일 유신을 단행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이다. 그 경우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지도자에 그쳤을 것이고, 오늘 전자-석유화학-자동차-조선-기계공업을 자랑하는 중공업의 나라, 제조업 강국의 한국은 없다. 그게 상식 아닐까? 국민소득은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도 못 미쳤을 것이고, 아니 그 이전에 북한에게 먹혔을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 이런 가정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좌승희 박사의 탁견 “박정희 정치의 핵심은 ‘정치의 경제화’”
“다른 건 몰라도 박정희가 정치만큼은 좀 문제 있다”는 고정관념부터 해체시켜야 한다. 그래야 정치 따로, 경제 따로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서 박정희가 제대로 보인다.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를 지상의 가치로, 종교로 생각하고 있다. 대학교수 대부분이 그렇고, 박근혜 대통령 본인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정치란 기본적으로 배분(配分)을 말하고 평등을 내세우는 속성이 기본적으로 있다. 그런 속류의 인식에 함몰되는 사람은 겨우 ‘작은 정치인’에 그치거나, 아니면 사회주의적 지향을 품게 된다.
정치의 논리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앞세우는 습관이 있고, 명분 그럴싸한 지역 안배나 균형발전 따위를 중요시한다. 아차 하면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로 흐를 여지를 항상 안고 있는 법인데, 그걸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의지로 막아섰던 게 박정희 정치의 핵심이고, 경제발전의 요체였다. 그게 ‘정치의 경제화’이다. 표를 얻기 위해 명분 그럴싸한 평등을 말하고, 균형을 외치는 걸 끝내 거부했고, 입술을 깨문 것이다. 박정희가 그랬고, 대처 총리 역시 그렇게 했다. 즉 우리가 알아온 고식적 정치행위를 거부한 것이다.
“정치는 내가 막을 것이니 임자들은(경제관료들은) 경제개발에만 전념하시오!”
1/n씩 균등 지원이란 모두가 못 사는 지름길이다
그건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 회고대로, 박정희가 자주 경제관료들에게 했던 말이다. ‘정치의 경제화’라는 철학을 그 이상 간략하게 표현할 수 없는데, 꼭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개발연대에는 정치가 경제를 막지 않았다. 고도성장이 꽃을 피웠다. 수출기업이란 이유 때문에 1/n씩 균등 지원을 한 게 아니라 수출 실적이 우수한 기업에게 크게 몰아주는 차등 지원을 단행했고, 그래서 놀라운 성공을 거뒀다. 새마을운동도 그랬다. 가난한 마을이라서 퍼주기식 지원하는 게 포퓰리즘인데, 박정희는 그렇게 하길 거부했다.
정치권은 물론 관료들까지 그렇게 해야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아우성을 쳤는데도 박정희는 그 정반대로 했고 그래서 대박을 일궈냈다는 게 역사의 진실이다. 그런 놀라운 의지는 정치적 바보나, 종종 PhD병(病)에 걸리는 책상물림 학자들의 눈에는 독재 혹은 전횡으로 비춰지겠지만, 진실은 따로 있는 법이다. 실은 그건 경제학자 좌승희 박사(미디어팬 회장)의 탁견이다. 박정희가 “정치를 막은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막아 민주주의교(敎)의 도그마를 위배한 게 아니다. 나눠 먹고, 갈라 먹으며 작은 박수를 받고 끝내지 않겠다는 ‘큰 정치’였다는 점을 좌 박사가 자신의 경제철학으로 입증한 것이다.
국가적 원칙과 헌법적 가치에 대한 총체적 점검을
반복하지만, 지금처럼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균형과 사회적 형평이란 명분을 잠시 접은 채, 예견되는 정치적 불이익을 각오한 채 정면 돌파를 한 것이 박정희 정치의 핵심이다. 이후 세상은 거꾸로 갔다. 경제민주화 조항이 헌법에 명문 규정된 것은 1987년 헌법 개정 당시로 우리는 알고 있다. 실은 1980년대 초 민주화의 바람을 무시할 수 없었던 신군부 때부터 대기업과 재벌규제를 시작했다.
박정희 재임 18년 간 몸에 밴 ‘정치의 경제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연출해냈는데, 포퓰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전두환 정부 이후는 거꾸로 가기를 작정한 셈이랄까? 실은 그게 한국경제 문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지금껏 2~3%의 저성장에 시달리는 이유다. 안타깝다. 왕년의 한국경제가 성장과 배분을 모두 이룩했다는 건 세계은행이 확인한 점인데, 이후 지금껏 우리는 그걸 모두 잊기로 작정했다.
‘박정희 반대로’는 개혁이 아닌 함께 망하는 길
박정희 반대로 가는 걸 개혁이라고 확신하고 있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의구심을 애국우파 인사들은 품고 있다. 그게 지금 조기 레임덕이 언급되는 박근혜 정부 위기의 핵심 요인이라고 나는 믿는다. 반복해 말하지만, 그가 말한 국민대통합과 100% 대한민국이란 환상이거나, 아니면 허구에 불과하다. 당초 정치적 센티멘털리즘이나 포퓰리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용 역시 빈곤하며 모두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엄연히 구호와 정책은 달라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라도 국가적 원칙과 헌법적 가치에 대한 총체적 점검 작업을 지금 우리는 대통령에게 고대한다. 그가 내세운 국가 개조는 너무 큰 얘기고, 그래서 적지 아니 공허하다. 쉽게 말해 잊기로 했던 박정희의 가치를 회복하는 게 정치인 박근혜가 사는 길이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길이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