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결정은 '답정너'였다?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기준 변경에 대해 '고의적 분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없다'던 결론을 2년여 만에 뒤집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며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시가총액 22조 원, 국내 유가증권시장 6위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상장 폐지 심사까지 받게 됐다. 상장 폐지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것이 지배적인 전망이지만 8만 개미들은 패닉에 빠졌다.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국내 바이오 의약 산업계도 망연자실이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법인의 검찰 고발과 대표이사 해임 권고, 과징금 80억 원 부과 등의 제재를 결정했다. 외부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에는 중과실 위반으로 과징금 1억7000만 원을 부과했다. 해당 회사의 감사업무를 5년간 제한하고 회계사 4명에 대한 직무 정지를 건의하기로 했다. 안진회계법인은 과실에 의한 위반으로 당해 회사에 대한 감사업무를 3년간 제한하기로 했다.
최고 수준의 제재다. 2년여 전 문제가 없다던 당국이 갑자기 돌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작용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2016년 12월과 2017년 2월 금감원은 참여연대가 제기한 삼성바이오 회계 문제에 대해 들여다본 뒤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낸 바 있다.
끝난 것처럼 보였던 문제가 다시 불거진 건 정권 교체를 목전에 둔 2017년 3월 삼성바이오에 대한 특별감리에 착수하면서다. 그리고 1년여 만에 '고의 분식회계'로 판단을 뒤집었다. 증선위의 결정에 앞서 참여연대와 정치권의 공세가 계속됐다. 내부 핵심문건이 사전에 유출되면서 '정치적 판정'은 이미 끝났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지난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재감리 안건 논의를 위한 증선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며 질문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판단이 뒤집힌 것도 문제지만 최고 수준의 제재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국제회계기준 원칙에 어긋나지 않고 다만 일부 요소를 고려하지 못한 실수의 문제에 대해 최고 징계를 내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중론이다. 석연치 않다.
국제회계기준상 회계처리는 일차적으로 경영자, 이차적으로 감사인이 결정하며 여러 각도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아니라 기업에 유리하게 해석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삼성바이오 측은 "회계 기준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며 행정소송을 통해 맞대응을 예고했다.
삼성바이오 제재에는 민주주주의 근간인 '일사부재리의 원칙'마저 깨졌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감사보고서를 제출했다. 금감원은 문제 삼지 않았다.
2016년 2월 참여연대가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자 금감원은 회계조사국의 자체조사, 한국공인회계사협회 감리를 거친 후 같은 해 12월과 2017년 2월 참여연대 측에 ‘혐의 없음’이라는 회신을 했다.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정권교체를 목전에 둔 2017년 3월 국회 정무위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금감원은 1개월 만에 특별감리에 착수했다. 1년 여만인 올해 5월 금감원이 언론에 "삼성바이오와 담당 회계법인에 회계 기준을 어떻게 위반했는지 알려줬다"며 사실상 '고의적 분식'에 무게를 뒀다.
주가 폭락과 함께 삼성 죽이기라는 비판이 금감원을 향해 쏟아졌다. 이후 증선위의 최종 판단을 돕는 감리위와 증선위 회의가 8차례나 열렸다. 그래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증선위는 지난 7월 "금감원의 문제제기에 더 구체성이 필요하다"며 재조사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3개월 뒤 삼성바이오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180도 입장이 바뀌었다. '코드 결정' 의혹을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증선위의 이번 결정은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 회계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만큼, 모회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 가능성이 제기된다. 엘리엇이 제기한 ISD도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와 연결돼 있다.
엘리엇은 전임 정부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개입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엘리엇이 한국 정부에 청구한 배상액은 7억7000만 달러에 달한다. 증선위의 삼성바이오에 대한 제재가 엘리엇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빌미가 될 것이란 우려다.
국내 바이오산업의 생존도 위협 당하고 있다. 회계가 조작됐다는 판단은 바이오산업 전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해외 기관투자가들은 국내 바이오업체 투자 비중을 줄일 것이다. 국내 투자자들도 등을 돌릴 것이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하는 '코드 판결'이 국가 미래성장 동력의 엔진을 멈추게 하고 있다. 그래서 사태는 정부가 키우고 매는 기업이 맞는다는 소리가 나온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