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박사의 박정희대통령과 한국의 경제발전 심층분석(2)-도그마화한 자기안경만으로 보는 박정희비판들
대한민국 산업화와 제조업강국 신화를 창출한 박정희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어떤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60년대이후 한국의 고도성장을 가져왔는가? 박정희의 성공원리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의 경제개발과 성공에 중요한 벤치마킹이 되고 있다. 빈곤과 가난에 허덕이는 개도국을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책적 철학과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박정희연구의 최고권위자인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가 박정희의 통치철학과 경제발전 성공원리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
반박정희 논리의 허점들
▲ 좌승희 KDI초빙교수, 미디어펜 회장
반박정희논 리는 다양한 관점에서 제기되고 있고 논리적으로 난공불락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이 모든 논리가 각 자의 이론이나 이념에 비춰 박정희 정책이나 그 성공이 수반한 결과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도그마화된 자기안경으로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그럼 이들이 기준으로 삼고 있는 이론이나 이념은 옳은 것인가, 혹은 다른 말로 그럼 이들 이론이나 이념을 따르면 궁극적으로 경제발전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부정적이면 이들의 평가는 올바른 평가일 수 없고 실사구시적 학문태도와는 거리가 먼 그저 자기도그마에 빠진 자기만족적 평가에 그치고 만다.
질문1: 자유시장 만의 힘으로 성공한 경제가 있는가?
경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소득증대현상은 19세기 산업혁명이후 최근 200여년의 역사에 불과하며, 인류는 그 이전까지 수천만 년을 겨우 생계유지도 어려운 빈곤 속에 살았다. 그럼 전문화와 교환경제의 맹아가 싹튼 1만 5천 년 전의 수렵과 채집시대이후 산업혁명이전까지 소위 시장경제 속에서 살아온 인류는 왜 그리도 오랜 세월동안 말사스적 빈곤의 함정에 빠져 가난을 못 벗어났는가?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 앞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중국에 100만대이상의 생산기지를 운영중이다. |
지금의 서구 선진국들은 19세기 산업혁명을 통해 경제적 도약을 이루던 시절 시장제도를 도입하면서도 왜 모두가 정부의 산업육성정책에 매달렸는가? 20세기이후 경제도약을 이룬 나라는 왜 하나같이 덜 시장중심적인 나라에서 대부분 산업육성정책을 통해 일어섰는가? 오늘날 지구상에 북한 말고 시장경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도 지구상 200여개의 나라 중 일인당 소득이 만불을 넘어 배고품의 문제를 해결한 나라가 1/4 정도에 그치고 있음은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도처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시장경제가 널려있지 않은가? 도대체 시장은 다 어디가고 지구촌 곳곳의 가난은 방치되고 있는가?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들과 주류 경제학은 이들 질문에 대해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의 근본은 경제적 자유와 사유재산권제도이다. 정부가 할 일은 이런 제도적 창치를 마련할 뿐 산업정책 등을 통해 직접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가시적 경제발전성과를 보여 온 대 다수의 나라들은 왜 한결같이 경제적 자유의 신장보다 정부의 산업정책을 중시해온 나라들인가? 지금의 중국은 얼마나 경제적 자유를 허용하고 있는가, 연평균 9%넘는 30년간의 성장이 자유시장경제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오늘날 선진국들마저도 국제기구를 통해 공식적으로는 정부의 개입을 금지하면서도 왜 한결같이 눈에 보이게 안보이게 산업육성정책을 시행하고 있는가? 자유시장경제론자들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도 시원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이론은 이상의 관찰과 질문에 대해 별 신통한 설명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불행하게도 시장경제이론은 “주어진 자원과 부의 최적배분원리”로서 최상의 정치성을 뽐내어 경제과학(economic science)이라고 노벨상까지 받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새로운 자원과 부의 창출원리”, 즉 경제의 발전이론으로서는 현실 설명력을 잃고 있다.
이론상의 시장, 즉 완전경쟁시장은 이미 신처럼 도그마화가 되었으나 아직도 빈곤과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의 경제성장과 발전의 해법은 오리무중인 셈이다. 배분경제학(allocation economics)을 넘어 더 높은 차원의 발전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은 아직도 암중모색 중이다. 또한 자유는 그 자체로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일 수 있지만 이것이 자동으로 경제발전을 보장하지도 않는 것이다. 자유도, 경제학이 그리는 시장도 경제발전의 충분조건이 아닌 것은 물론 필요조건인지도 명확치 않은 실정이다. 자유시장경제론의 시각에서 박정희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 자본주의경제는 기업경제다. 주식회사 기업제도의 혁신을 통해 진화한 경제체제다. 자본주의 발전이후 기업의 경제력집중없이는 경제가 성장한 사례가 없다. 민주주의가 정치를 넘어 경제분야까지 지나친 평등을 추구하면 경제발전과 성장은 정체된다.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가운데)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신라호텔에 마련된 삼성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중국 시안에 7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공장을 짓는 등 대중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앞줄 왼쪽)이 시주석을 안내하고 있다. |
질문2: 선(先) 민주화가 경제발전을 가져온 경우가 있는가?
오늘날 민주주의는 하느님의 경지에 이르러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절대적 선이 되었다. 그래서 심지어 모든 경제문제에도 “민주”라는 접두어나 접미어가 최상의 인기 용어가 되고 있다. 경제발전에 있어서도 민주주의가 선결되어야 경제가 발전한다는 주장이 인기를 얻고 있다. 물론 이는 자유시장론과 결합하여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이다. 2차대전 이후 독립한 많은 나라들 중에 시장경제와 서구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여 경제적으로 성공한 나라가 몇이나 되는가? 감히 별로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역으로 지난 세기 가시적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들이 진정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한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국은 물론 중국, 싱가폴, 대만이 민주주의를 해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반론으로 홍콩을 거론할지 모르나 이는 영국의 복제품에 불과하여 후진국 경제개발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같은 관점에서 오늘날 선진화된 서구 선진국들이 19세기 도약과정이 오늘날 같은 민주질서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오늘날 서구 선진민주국가들의 경제는 본받을 만큼 역동적으로 잘 나가고 있는 것인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혹은 경제발전은 친구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 후꾸야마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역사발전의 끝이라했는데 아마도 크게 성급한 결론이 아닌가 싶다.
후꾸야마는 수년전 “역사의 종언”이라는 책을 통해 인류역사의 발전은 이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승리를 끝으로 이념과 체제경쟁이 종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허지만 아직도 시장경제는 물론 민주주의는 서로 충돌하면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나아가 경제발전은 친구가 되기 어려운가? 우선 이들의 원리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그 원리로 하지만 후술하는 바와 같이 시장은 항상 결과의 불평등을 만들어냄으로써 동기부여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끄는 장치이다. 시장경제는 경제적 불평등이 그 기본원리이다.
따라서 민주정치가 정치영역을 넘어, 즉 정치적 평등을 넘어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게 되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나아가 경제발전은 같이 갈 수가 없게 된다. 오히려 민주정치가 경제발전의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는것이다. 이제 정치개혁보다 시장경제개혁을 먼저 한 중국이 이와 반대로 개혁을 한 러시아나 여타 동구권 체제전환국들보다 더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이유를 알 수 있으리라.
이제 정치학계, 정치경제학계, 정치계의 민주지상주의가 경제발전의 장애가 될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박정희의 권위주의정치가 어떻게 경제발전과 양립할 수 있었는지도 어느 정도 보일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도그마로 박정희를 혹은 경제발전문제를 보는 것은 뭐라 할 수 없겠으나 민주화가 되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옳은 명제가 아님을 명심하면 좋을 것이다.
질문3: 기업의 성장과 경제력의 집중 없이 경제가 발전하는 예가 존재 하는가?
자본주의 경제는 기업경제다. 자본주의 경제는 주식회사 기업제도의 혁신을 통해 진화해온 경제체제이다. 그리고 그 발전도 기업의 성장발전을 통해 견인되어왔다. 오늘날 국가간 일인당 소득의 순위와 포춘 500대, 1000대 일류기업의 보유 순위와 대기업비중(경제력 집중)의 순위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후술하는 바와 같이 기업의 성장 없이 경제발전은 없다. 성공하는 기업에의 경제력 집중 없이 성공한 경제가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혹자들은 대만을 반대예로 들겠지만 이는 적절한 예가 아니다. 대만은 개발 초기 본토로부터 이주한 국민당정부가 민간대기업의 독점방지와 경제적 평등을 주창한 손문의 민생경제를 실현한다고 대규모 중화학공업과 소위 민생산업 등, 기간산업을 국영화하면서, 민간자본은 노동집약적 중소기업부문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들 중소기업들이 초기에는 과거 점령국인 일본의, 그리고 나중에는 점차 미국 등 선진국 기업의 하청기업으로 특화하게 되었다.
특히 여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대만통치를 위해 현지 민간대기업의 출연을 환영하지 않았던 국민당 정부의 이념과도 관계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만의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생태계는 일종의 인위적 결과로서 경제도약의 견인차 역할을 지속하기가 어려웠으며, 80년대 이후 경제성장의 정체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현지인 집권세력이 등장하여 민간 대기업 성장을 장려하면서 90년대 이후에는 ICT 산업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크게 신장되어, 대만의 GDP 대비 10대 제조대기업의 매출액은 2000년 14.5%에서 2011년 71.3%로 급증하고 있다.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이 글은 <회보 박정희> 제40호의 "박정희 대통령의 성공원리는 '정치의 경제화'"라는 기고문을 수정, 증보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