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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칭송위?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2018-11-22 14:13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조우석 언론인

요즘 가장 거북한 것 중의 하나가 지난 7일 '김정은 위원장 서울 방문을 환영한다'는 취지로 결성됐다는 백두칭송위원회다. 서울 광화문에서 개최한 연설대회에서 "남과 북은 서로 고무 찬양해야 마땅하다", "김정은은 천리안을 가진 것이냐" 등의 발언을 주고받는 활동부터 눈살이 찌푸러든다.

행태도 어쩌면 그렇게 이북을 닮았는지 무슨 꽃술이란 걸 흔들어대며 광주 등 전국에서 '꽃물결 공연'을 이어간다고 한다. 무엇보다 '백두칭송'이란 용어 자체가 거북하다. 김일성의 백두혈통을 의미하는 백두라는 표현은 평균적 국민들을 질겁케 만들고 있다.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등이 그 단체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그럼에도 저들이 활동을 멈추지 않는 배경엔 민족주의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백두는 김일성 가계만이 아니라 민족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에 좌파는 절묘하게 그 용어를 골랐다. 누구도 거역 못하리라고 믿은 것이다. 또 있다. 이 나라 현직 대통령이 백두산 매니아이니 마음 놓고 백두의 깃발을 들었다.

다 기억하디시피 지난 가을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 등반을 했는데, 그걸로 민족 만세의 신탁(神託)을 완성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추정의 증거도 있다. 평양 방문 직후 SNS에서 "우리는 함께해야 힘이 나는 민족"이란 문구로 시작한 추석 인사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유로 백두의 숨겨진 함의(含意)가 나는 영 불길하다.

왜 하필 이북에서 장난치는 백두 타령, 백두산 신화에 우리가 놀아나야 하는가? 이게 우연일 리 없다. 백두산 신화의 완성은 남북한 모두 1987년에 이뤄졌다는 게 이영훈 교수의 통찰력인데, 이 지적은 그가 엮은 <해방전후사의 재인식1>에 등장한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국민주권연대와 한국대학생연합 주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 환영 백두칭송위원회 결성 선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연합뉴스


우선 그해는 북한에서 이른바 구호목(口號木)이 발견됐다고 법석 떨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이른바 항일투쟁을 할 때 백두산 밀림의 나무껍질을 벗긴 뒤 항일 슬로건을 새겼다는 것, 그런 그걸 대대적으로 발견했다는 호들갑이다. 내용은 김일성-김정숙(아내)-김정일을 3대통운(大統運)으로 칭송하는 따위인데 그게 무려 8만여 그루라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치졸한 수준의 상징조작에 불과하지만 그걸로 김정은이 권력을 이어받지 않았던가? 그거야 그렇더라도 남한 땅에서 백두산 신화의 완성이 1987년에 이뤄졌다는 건 무슨 뜻일까? 그건 시인 고은의 장편 서사시 '백두산' 발표 개시 연도인데, 이걸로 백두 민족주의가 드디어 모습을 윤곽을 잡았다.

양반 댁 아씨와 꼴머슴이 신분을 초월해 사랑에 빠진 뒤 야반도주를 하는 걸로 이 시는 시작한다. 둘은 하필 백두산 밀림에 숨어들어가 아기장수 바우를 낳고 직후 갓난아기와 함께 백두산 천지에 오른다. 눈여겨 볼 건 천지 물에 아기를 세 번 담궈 액운을 씻는 대목이다. 이후 김바우의 독립과 혁명의 활동 그리고 비극적 죽음으로 종결되는 게 대하시 '백두산'이다.

김바우가 김일성인가? 누구나 묻겠지만, 그건 오버다. 고은이 아무리 얼빠진 좌파라고 하지만, 그렇게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다만 문학적 모호함 속에서 그렇게 유추할 소지를 함축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하시 '백두산'으로 백두산은 민족주의의 성지(聖地) 반열에 성큼 올랐다는 점이다.

누구도 거역 못할 소구력을 가진 이름이 백두다. 그래서 조선의 근본이자, 우주다. 차제에 확인해 보니 이 대하시에 나타난 민족주의를 다룬 박사 석사 논문만도 수두룩하니 우린 모두가 민족주의 병에 단단히 걸린 꼴이다. 그러니까 백두칭송위원회까지 감히 설치고 있지만, 그들의 숨겨진 속내, 얼빠진 정치의식을 짐작케해주는 건 역시 문학 쪽이 아닐까 한다.

노무현 시절인 2005년 이른바 남북작가회의란 게 북한에서 열리고 시인 고은, 평론가 백낙청, 소설가 황석영 등은 무슨 종교적 의식처럼 백두산 등반을 하며, 천지 앞에서 거창한 시 낭송을 했다. 그게 예전에 사망한 시인 김남주의 '조국은 하나다'이다. 열 말이 필요 없다.

왜 13년 전 남북의 문인들이란 자들이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한 해돋이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감격에 겨워했는지는 작고 시인 김남주의 그 으스스한 시가 말해준다. 다음은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조국은 하나다"를 외치는 저들의 반미-반일의 반외세주의 그리고 반기업주의의 정치의식을 잘 가늠해보시길 바란다. /조우석 언론인

조국은 하나다(全文)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 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탄생의 말 응아응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말 아이고아이고에 이르기까지
조국은 하나다 라고
갓난아기가 엄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엄마 엄마 위에도 쓰고
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 가지는 인간의 길
오르막길 위에도 쓰고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고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오 조국이여
세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여 이름이여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당신이 맨 먼저 보게 되는 천정 위에도 쓰고
눈을 감으면 한밤에
맨 나중까지 떠 있는 샛별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축복처럼
만인의 배에서 차오르는 겨레의 양식이여
나는 쓰리라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다에 가서 쓰리라 모래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세월이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가슴에 내 가슴에 수 놓으리라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도록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외치리라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벽에 대고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식민지의 낮과 밤이 쌓아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 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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