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호텔이 자사 홈페이지에서 최저가 보상제인 BRG를 소개하고 있다./힐튼 홈페이지
[미디어펜=김영진 기자] 호텔 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 중 'BRG'라는 것이 있습니다. 'BRG'는 'best rate guarantee'의 약자이며 호텔 체인별로 'BPG(best price guarantee)', 'LNF(Look No Further Best Rate Guarantee)' 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금씩 쓰는 용어는 다르지만, 우리 말로는 '최저가 보상제'라고 보면 됩니다.
메리어트, 힐튼, 하얏트 등 세계적인 호텔 체인들은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멤버십 제도를 만들어 등급별로 고객들을 관리하고, 세일을 하고, 포인트 제도를 만드는 등 다양한 전략을 펼칩니다.
이는 글로벌 호텔 체인뿐 아니라 롯데호텔, 신라호텔, 워커힐호텔 등과 같은 로컬 호텔들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입니다.
호텔 충성 고객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BRG'...낮은 가격으로 호텔 투숙 기회로 악용
호텔 업계에서 BRG가 도입된 것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도록 고객을 유인하고 충성 고객들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최근 메리어트에서 해킹 사건이 터지기는 했지만, 글로벌 호텔 체인들이 공식 예약 시스템에 투자하는 돈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만약 A라는 사람이 서드파티 혹인 온라인 여행사(OTA) 등을 통해 호텔 예약을 하면 호텔 측은 해당 여행사에 수수료를 지급해야 합니다. 수수료율에 대해서는 정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20~30%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수료가 왜 이리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OTA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가능한 수수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익스피디아와 호텔스닷컴, 트리바고, 아고다 등 수많은 OTA 들이 엄청난 광고 마케팅을 진행하는 배경에도 이런 높은 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입니다. 글로벌 OTA와 경쟁해 이기는 호텔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호텔 입장에서는 이런 수수료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자사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예약하도록 고객을 유도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유인책 중 하나가 'BRG'였던 것입니다. 만약 OTA보다 더 비싸게 판매했다면 그 가격에 맞춰주는 것을 비롯해 더 낮은 가격으로 투숙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 BRG의 원래 취지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BRG에 대한 부작용도 노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호텔 커뮤니티를 보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글이 'XX호텔 BRG 성공', XX호텔 BRG 성공 방법' 등입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취소 가능으로 객실을 예약한 이후 서드파티에서 공식 홈페이지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찾아 클레임을 넣어 호텔 예약 가격을 낮췄다는 후기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최저가를 찾지 못하면 취소해버리면 그만입니다.
물론 이런 것이 불법도 아니고 편법도 아닙니다. 공식 홈페이지보다 더 낮은 가격을 찾기 위한 노력도 노동의 가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BRG 제도는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한 이후 우연히 서드파티에서 더 낮은 가격을 봤다면 클레임을 제기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공식 홈페이지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을 찾기 위해 수많은 서드파티 사이트를 찾아보고 끝내 더 낮은 가격을 찾지 못한다면 취소하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또 BRG의 조건은 동일 날짜, 동일 룸, 동일 예약조건 등이 있는데 이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클레임을 넣어보고 '성공하면 재수'라는 마인드로 이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번 거절당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될때까지 클레임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 BRG 클레임 제일 많은 국가 '대한민국'...과연 '스마트 컨슈머'일까
호텔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BRG클레임이 제일 많이 들어오는 곳이 '대한민국'이라고 합니다.
BRG 업무는 주로 글로벌 체인 본사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클레임을 넣으면 영문으로 된 메일이 옵니다. 이후 고객의 클레임을 검토한 이후 승인해주거나 거절하는 방식입니다.
어쩌다 본인이 예약한 가격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보고 클레임을 넣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저렴한 가격으로 투숙하고 싶은 마음에 공식 홈페이지 가격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찾을 때까지 끝까지 뒤져본다는 점입니다. 거절 당하면 될 때까지 계속 메일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습니다. 친절이 기본인 호텔로서는 그냥 승인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커뮤니티에는 저렴한 가격이 잘 노출되는 서드파티 정보도 교환하고, 심지어 BRG 승인을 잘해준다는 직원에 대한 정보도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BRG의 피해는 결국 직원과 호텔의 질적 저하
고객 입장에서 자기 입장만을 생각해 이런 클레임을 넣겠지만, 그 피해는 어디로 갈까요. 결국 담당 직원 및 예약한 호텔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것으로 보입니다.
BRG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매우 힘들 것입니다. 이렇게 BRG 제도가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으면서 호텔들은 할인율을 조정한다든지 BRG를 인정해주지 않는 서드파티를 만든다든지 보완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더 낮은 가격을 찾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호텔들도 점점 지능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만약 주로 30만원대 판매되는 호텔에 BRG 승인을 받아 10만원대로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해당 호텔의 질적 저하 및 일하는 직원들의 의욕도 상실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직원들은 체크인할 때 고객이 얼마에 예약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BRG 클레임이 가장 많이 접수되는 국가가 우리나라라는 점이 씁쓸합니다.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으로서는 불법도 아니고 탈법도 아닌, 주어진 제도를 이용해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의 노동 가치도 중요한 만큼 타인들의 노동 가치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만약 30만원대 호텔을 BRG 승인으로 10만원에 투숙했다면, 그 고객은 해당 호텔에 적당한 비용을 지불했다고 불 수 있을까요. 무조건 저렴하게만 이용하면 '운수좋은 날'인가요? BRG를 통해 받은 가격이 그 호텔의 적절한 가격인지, 호텔서 일하는 수 많은 직원들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할 정도로 적정한 가격이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좋은 호텔을 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투숙한 것이 '스마트 컨슈머'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 가격을 받기 위해 피해를 보고 강도 높은 노동력으로 일해야 하는 직원들은 생각해 보셨나요. '과유불급'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펜=김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