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유진 기자] "병원엔 다녀오셨고요? 서울엔 이번 주 눈 소식 있는데 해남에도 눈이 온다니까 조심하세요. 잘 때 따뜻한 옷에 물도 놓고 주무시고요."
서울시 용산구 소재 NH농협은행 고객행복센터에서 근무하는 김혜림 씨의 상담 내용이다. 다른 상담사들이 고객 민원 상담으로 분주한 금요일 오후 4시, 그는 전라남도 해남군에 거주하는 강순자(가명·70세)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짧게나마 안부 인사를 전했다.
매주 1회, 2~3명의 농촌 거주 어르신을 대상으로 짧게는 3분가량 통화를 한다는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한 어르신이 전화를 받지 않자 걱정 어린 한숨을 쉬었다.
김 씨는 "연락이 잘되던 분이 갑자기 전화를 받지 않을 땐 걱정이 든다"며 "처음 시작했을 땐 보이스피싱인 줄 알고 나무라는 어르신들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요즘엔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는 어르신들도 많아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 고객행복센터 상담사들이 농촌 어르신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예림, 김서윤 상담사의 모습/사진=미디어펜
현장에서 또 다른 상담사인 김서윤 씨를 만났다. 2015년부터 센터에서 근무한 그는 베테랑 상담사로 최근 가슴 아픈 일을 겪었다. 2년간 꾸준히 안부를 나누던 어르신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 씨는 "어느 순간 할아버지께서 점점 귀가 안 들린다고 얘기하시더니 나중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서 "뒤늦게 가족분이 입원했다고 연락을 줘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처음 뵀는데, 결국 그 뒤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리던 그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중에는 친해져 하루에 30분도 통화하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니 정말 당황스럽고 슬펐다"면서 "아드님께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지난 2008년부터 만 70세 이상 농촌 어르신 1500여명을 대상으로 '말벗서비스'라는 독특한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단순 금전 지원이나 방문 봉사활동이 아닌 은행 소속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수시로 어르신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인사를 나누는 서비스다.
서비스 시행 배경에 대해 남수진 NH농협은행 고객행복센터 인바운드상담팀 팀장은 "농촌에서 거주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자녀가 출가해 홀로 지낸다"며 "어르신들의 적적함과 외로움을 달래주고 고독사 예방 차원에서 서비스를 실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서울시 용산구 소재 행복센터에서 근무하는 상담사 700여명이다. 이들은 매주 1~2회, 독거 어르신 대상으로 각각 안부 인사와 생활 정보, 금융사기 대응 방법 등을 안내하고 있다.
'말벗서비스'를 실천하는 상담사들은 어르신들과의 상담 내용을 항상 메모해 지자체 등에 특이사항을 전달한다/사진=미디어펜
서비스 통화 내용의 경우 주로 어르신들의 특성상 건강 상태 점검이나 날씨 등이 주를 잇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 보이스피싱 예방 교육이나 계절별로 예방접종 내용 등은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서 만든 스크립트를 토대로 제공되고 있다.
김연주 NH농협은행 고객행복센터전략팀 과장은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와 서울지방보훈청을 통해 어르신들을 추천받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 서비스를 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나온 불편사항과 특이사항 등에 대해서는 별도로 체크한 뒤 지자체에 관련 정보를 인계하고, 통화 중 돌발상황발생 시 긴급출동 서비스로 종합지원체계를 마련 중이다"고 설명했다.
남수진 고객행복센터 인바운드상담팀 팀장은 "주말이나 1년에 한 번 외부에 나가는 거창한 행사가 아니라 업무하는 휴식시간에 봉사활동을 하니 상담사들도 싫은 기색이 없다"며 "상담을 인연으로 직접 어르신들의 댁을 찾아가 청소를 돕고 식사를 함께하거나 계절별로 필요한 선물을 가져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올해에만 수차례 말벗서비스 대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 바 있다. 지난 8월 NH농협은행 주재승 부행장을 비롯해 디지털금융부문 직원들은 경기도 부천시 독거노인지원센터를 방문해 휴대폰 선풍기와 삼계탕을 제공하는 행사를 가졌다. 이후 11월에는 충북 음성군 음성농협을 찾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네일아트와 같은 꽃단장 서비스를 실시하기도 했다.
[미디어펜=박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