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9일 서울 여의도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공영방송 KBS에 수신료의 가치를 묻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이번 공영방송 KBS를 해부하는 2차 토론회다. 현진권 원장은 "KBS가 세월호 참사보도와 문창극 낙마보도등과 관련해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방만경영과 자사이기주의에 대한 반성과 자정 노력이 없이 수신료인상을 추진하고 있어 국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부실 늑장및 선정적 보도 등과 관련한 청와대의 외압 논란에 이어 문창극 총리후보자에 대한 악의적이고 편파적인 보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주제발표를 한 황근교수는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하고, 상업방송과 구별도 되지 않는 공영방송 KBS의 수신료제도는 존재의미가 없어졌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황근 선문대 교수의 <KBS의 문창극 보도가 왜 문제인가>라는 발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황근 선문대 교수
지난 달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인사청문회도 못해보고 낙마하면서, 대한민국 정치는 다시 또 큰 혼돈에 빠져버린 느낌이다. 정파적 이익에 따라 혹은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한국사회가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인식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치권은 물론이고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KBS의 보도는 우리 언론이 가지고 있는 썩은 고리를 살짝 드러낸 부분이 아닌가 싶다.
6월 4일 '세월호 보도’ 여파와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청와대 해임 압력 폭로 기자회견으로 길환영 전 사장이 중도 해임되고, 사장 부재상태에서 나온 총리후보자 문창극씨에 대한 '과거 발언 폭로’기사는 온 나라를 혼동과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야당은 물론이고 일부 여당정치인들까지 사퇴를 압박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신임 총리 한 명 임명 못하는 무능력한 정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았던 대통령지지도가 40%이하로 추락했다는 보도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문제가 된 KBS의 보도는 이렇다. 6월 11일 저녁종합뉴스시간에 첫 세 꼭지로 '문창극, 일 식민지배는 하나님 뜻, 발언파문’ '문창극,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 ···· 민족 DNA’ '문창극, 선거 국면마다 노골적 정치편향 컬럼 논란’ 기사를 연이어 내보내고 있다. 얼핏 제목만 보면, 문창극은 친일파이고 우리 민족을 비하하고 또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된 인물로 생각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각각의 기사 속에 문창극 총리후보가 교회에서 했던 강연 중에 정말 자극적인 부분만 발췌한 soundbite를 끼워 보도하고 있다.
“····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 하나님의 뜻이 있는거야” “남북분단을 만들어 주었어 ····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 그 보도만 보면, 그 강연히 '일제침략이나 남북분단이 우리 민족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시련’이라는 맥락은 온데간데 사라져 버린 것이다. 흔히 저널리즘에서 가급적 피해야 한다는 '단절적이고 비맥락적 보도’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KBS가 그리고 수재급(?)은 되어야 할 수 있다는 KBS기자들이 이 같은 저널리즘의 ABC를 모를 리 없다. 또 입사 이후 적지 않은 교육과 취재경험을 거치면서 그런 정도는 체질화되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식이하의 '악의적으로 편집된 보도’가 버젓이 톱뉴스로 나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현재 KBS 내부가 뉴스 게이트키핑 과정이 붕괴되어 있거나 특정 정치이념이나 정파성에 의해 지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KBS가 공영방송의 가치를 저버리고, 특정이념에 치우친 방송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보도와 길환영 전사장 퇴진, 문창극 총리후보자 낙마와 관련해 악의적 보도가 나오는 것은 임직원들이 특정 정파와 이데올로기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KBS의 정치지형화와 자사 이기주의가 결합된 왜곡된 공영방송이 현재 KBS 문제의 핵심이다. |
즉, 공정하고 객관적인 뉴스를 내보낼 수 없을 정도로 정치화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 왔던 정권의 방송장악이나 통제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내부 종사자들의 정치적 편향성에 의해 KBS가 지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위장된 편견이 더 위험하다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하자, 그동안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KBS 내부의 문제점과 개혁 목소리가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수신료거부와 공영방송 KBS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부랴부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공정여부를 심의하겠다고 하자 야당과 진보적 좌파단체들은 일제히 심의자체가 언론탄압이고 언론장악 의도라며 저항하고 있다. 아마 지금 선출 과정 중에 있는 후임 사장이 임명되고 나면, 이 문제는 다시 재 점화 되어 더 극심한 내홍을 겪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 자유경제원은 9일 <공영방송 KBS에 수신료의 가치를 묻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황근 선문대교수,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조우석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왼쪽부터) |
그런데 이 보도가 왜 문제인가를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언론학을 전공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한번쯤을 들어 보았을 데니스 맥쾌일(Dennis McQuail)이라는 학자는 언론사가 가진 편견을 각각의 언론사가 '의도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와 '그 편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네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즉, 의도적이면서 편견을 공개하는 형태로서 각각의 언론사가 가진 사시(社視)나 편집방침(copy policy),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소유구조나 구성원들의 속성에서 발현되는 편견, 그리고 언론사나 언론인 스스로 내재화되어 편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견을 '이데올로기(ideology)’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맥쾌일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한 편견은 사실상 의도성을 가진 편견이지만 겉으로는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그는 '선전(propaganda)’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번 KBS의 문창극 후보관련 보도는 전형적인 '정치적 의도성을 가지고 객관보도라는 형태로 위장된 선전’인 것이다. 더구나 사시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신문이나 인터넷 언론과 달리 방송 특히 공영방송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을 부여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질 상업주의 언론이나 정파적 성향이 강한 마이너 언론들이나 하는 폭로저널리즘(muckracking journalism) 방식으로 그것도 당사자의 반론이나 균형성이 무시된 보도를 한 것은 분명 선전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왜 대한민국 민주주의 위기인가?
그러면 이 같은 현상은 왜 발생한 것인가? 그것은 KBS의 내부의 게이트키핑 시스템, 더 본질적으로 KBS의 정치적 파행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지적되어 온 KBS의 문제점은 너무나 많다. 방만한 경영, 고임금구조, 비효율성, 자사이기주의 등이 지적되고 있지만, 가장 많은 지적은 역시 KBS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의문일 것이다. 이번 KBS 사장 퇴출사건 역시 그 뿌리에는 공영방송 KBS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쫓겨난 사장 =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자’이고 '사장을 쫓아낸 노조와 구성원들 = 정치적으로 독립된 자’라는 잘못된 이분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미 지난 20여 년 간 몇 차례 정권교체가 거치면서 KBS 내부는 철저하게 정치 지형화 되어 버렸다. 즉, 많은 구성원들이 특정정파와 함께 부침하는 현상이 만연되어 버린 것이다.
특히 1998년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정부는 친화력이 강한 인사들로 KBS 조직을 철저히 재구조화시켰다. 실제 김대중정부는 특정 신문사 출신들을 중용하였고,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말’ '시사저널’ '한겨레신문’ 등 이른바 좌파언론사 출신들을 경력직으로 대거 채용하였다. 이들은 현재 KBS 좌파조직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사원행동’의 주 구성원들이다. 아울러 조직효율화를 이유로 '수직적 직급제’를 폐지하고 '직급과 관계없는 순환보직형태의 팀장제’를 도입해 간부직원의 책임성과 수직적 통제력을 크게 약화시켜버렸다.
이 때문에 2008년 보수정권이 다시 집권하고 새 사장을 임명해도 철저하게 착근되어 있는 정치지형화의 뿌리를 뽑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리어 이명박 정부 내내 진보성향 노조가 주도한 사장퇴진, 프로그램 투쟁 등을 통해 내부적 정치적 갈등만 더 증폭되었던 것이다. 실제 '인민해방군가 작곡가인 정율성’을 미화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는 등 지속적인 정치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 같은 정치 투쟁의 백미는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과 연대해 장기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당시 야당지도부까지 참석한 파업출정식에서 노조위원장이 '야당과 손잡고 정권을 교체하자’고 선언하고, 노조간부가 야당 선거공조대책회의에 참석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문창극 후보관련 보도’는 사장공백상태에서 좌파노조가 주도한 KBS 보도시스템의 붕괴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편파보도인 것이다. 즉, 내부의 정치적 갈등구조가 드러난 것이지, 정치적 사장과 KBS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구성원들의 투쟁이라는 선악구도가 절대 아닌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적으로 독립되지 못한 KBS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KBS의 정치지형화와 자사 이기주의가 결합된 왜곡된 공영방송이 현재 KBS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정치권력이 바뀌고 정치지형도가 바뀔 때마다 KBS의 정치적 독립성과 보도공정성 문제가 항상 불거져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공영방송 KBS 저널리즘의 위기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인 것이다. /황근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