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해결은 한 치의 진전도 없이 남북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 등 잔치 분위기만 띄웠던 한 해의 말미에 국내에선 청와대 특감반의 '불법사찰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에서 활동했던 김태우 수사관이 제기한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문재인 정부 DNA에는 민간인 사찰이 없다'고 단언했지만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 수사관을 '미꾸라지 한 마리'라며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청와대의 조치와 야당의 대통령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등에 대한 검찰 고발을 "범죄자 주장에 근거한 정치공세"라며 국회 운영위원회 소집 요구를 거부한 더불어민주당의 막말이 김 수사관의 '폭로'의 수위를 높이는 도화선이 되었을 것이다.
'불법사찰 의혹'은 청와대와 김 수사관 간의 진실게임의 문제가 아니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을 검찰에 고발해 놓고 압박하고 있지만, 불법사찰 여부의 문제는 청와대와 김 수사관 간의 진실게임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정권의 적법성과 도덕성이 걸린 문제이고, 대통령과 이 정권이 국민의 신뢰를 잃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가볍게 부인하며 김 수사관을 족쳐대면 해결되는 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자유한국당이 조국 민정수석, 박형태 반부패비서관, 이인철 특별감찰반장을 직권남용으로, 임종석 비서실장을 직무유기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기에 이르렀고, 뒤이어 검찰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압수수색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이번 압수수색이 검찰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정세나 국내 정황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 최근에는 '블랙리스트', '적폐' 운운하며 전 정부 관련 고위공직자들을 대거 형사처벌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속속 제기되고 있다. 김 수사관의 계속되는 폭로와 관련 자료들에 비해 청와대의 어설픈 해명이나 '모르쇠' 태도가 의혹을 더 키우고 있고, 자칫 '불법사찰'과 '블랙리스트'의 '미투(me too)운동'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국내정세가 이 지경인 가운데 "실체가 없는 가불 행사", "대통령의 여론 조작용"이라는 야당의 비판 속에 정부가 서둘러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서 북한측은 그들이 주장해온 고려연방제를 뜻하는 '통일연방'을 운운했다. 이럼에도 정부가 남북 철도 연결에 집착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철도가 연결되면 연방제 남북통일이 성사된다는 생각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21일 낮 청와대 집현실에서 정책기획위원회를 비롯한 국정과제를 추진하는 직속기구 및 대통령 자문기구 위원들과 함께한 오찬 간담회에서 국정과제위원회별 추진성과 및 향후 계획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청와대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라는 망상(妄想)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은 경제성 측면에선 망상(妄想) 수준의 계획이다. 철도와 도로 연결에 소요되는 천문학적 비용 문제는 차치(且置)하더라도, 우선 대량수송 국제물류에서 철도는 수송량이나 운임에서 선박과 경쟁이 안 된다. 현재 해운업계에는 2만TEU급 컨테이너선(船)이 등장했고 곧 2만8000TEU급 선박도 등장할 예정이다.
2만TEU 선박이란 20피트 컨테이너 2만 개를 싣는 배를 말하는데 철도 운송의 경우 화물열차 1 편성 당 통상 20피트 컨테이너 60개 정도를 수송할 수 있다. 작년 7월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고용량 이단적재 화차 기술'을 발표했지만, 이 기술이 실용화되더라도 열차 1편성 당 이단적재 화차 20량 운행으로 총 120TEU를 운송할 수 있을 뿐이다.
여객 운송 사업도 마찬가지다. 황량한 시베리아 경치를 보겠다는 사람 외에 기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으로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톡을 연결하는 시베리아횡단 철도는 그 길이만 9300km에 달하고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1만km가 넘는 거리이다. 12시간 내에 갈 수 있는 유럽을 최소 열흘 이상 밤낮으로 기차 속에 갇혀 여행할 관광객이 얼마나 되겠는가?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출발하는 열차(1435mm 표준궤 열차)가 소련영토를 운행하려면 광궤철도(1520mm)를 운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러시아 국경에서 환승(換乘)이나 환적(換積)을 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 없이 그대로 러시아 철로를 달릴 수 있는 기술을 최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하여 지난 12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93차 국제철도연맹(UIC) 전체총회에서 화물철도 서비스 분야에서 최우수상(Best Award)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추가 투자와 시일이 소요됨은 물론이다.
올해의 사자성어 '임중도원(任重道遠)'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매년 전국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로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를 선정하는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의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선정했다.
'임중도원'의 경구(警句)가 현 정부의 정책과 무능을 비판하는 것이란 의견도 일부 있었다고 하나, "문재인정부가 개혁과제를 중단 없이 추진해 달라는 당부를 담았다"는 일부 언론의 평처럼 현 정부의 외교정책, 대북정책, 안보정책, 경제정책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교수들이 "산적한 난제들을 굳센 의지로 잘 해결해 나가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이처럼 교수들까지 나서서 현 정부를 격려하는 구호를 띄우는데도 국민의 국정지지율은 계속 하락하는 추세이니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인 모양이다.
하향곡선의 국정지지도(國政支持度)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지난 5월 역대 대통령 최고의 국정지지도인 84%를 기록했다. 영웅 탄생 수준의 경이로운 지지도라 할 수 있다. 그랬던 절대적 지지도가 불과 6개월만에 40%대로 뚝 떨어졌다. 그런데도 청와대의 분위기는 '내로남불' 기고만장의 기세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DNA'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12월 21일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부정평가 46%로 긍정평가(45%)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월 24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47.1%로 또다시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어서 여론조사업체 '알앤써치'가 12월 26일 발표한 12월4주차 여론조사 결과에는 문 대통령 국정에 대한 긍정평가는 지난주보다 6.9%포인트 떨어진 42.9%였으며 부정평가는 52.8%였다. 응답자 중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불신하는 국민이 더 많다는 결과이다.
'당랑박선(螳螂搏蟬)'의 교훈을 되새겨야
올해의 사자성어가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니 '당랑박선(螳螂搏蟬)'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사마귀(螳螂)가 매미(蟬)를 잡으려 엿보다가 자기를 노리는 까치가 있음을 모른다'는 뜻의 「장자(莊子)」 외편(外篇)에 나오는 말이다. 매미는 사마귀가 노리고, 사마귀는 까치가 노리고, 까치는 장자(莊子)의 화살이 노리고, 장자는 밤나무 밭 주인이 밤을 훔친 도둑으로 알고 노리고 있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탐하다 바로 뒤에 닥칠 화(禍)를 깨닫지 못한다는 가르침이다.
국내 정치는 대립과 보복의 끝이 안 보이고 경제는 앞이 안 보인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한일관계나 돌발 행동을 일삼는 김정은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를 예측하기 힘들고 중국의 이율배반과 억지도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한다. 위의 교훈에서 보듯이 우리의 내우외환 상황의 맨 뒤에는 핵폭탄을 가진 자가 우리의 급소를 노리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는 국민들은 청와대의 DNA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고 불안하다. 정권이야 5년만에 바뀔 수도 있지만 한 번 무너진 경제는 수십 년이 걸려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상가지구(喪家之狗)의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