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송강호 "'택시운전사' 이미지 벗으려 '마약왕' 선택? 아닙니다"

[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송강호로 시작해 송강호로 끝난다. '마약왕'을 본 관객들의 주된 반응이다. '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 그간 친근한 캐릭터로 사랑받아온 송강호는 1970년대 아시아를 제패한 전설의 마약왕 이두삼으로 분해 압도적인 열연을 펼쳤다. 한국영화사의 상징 같은 그가 다시 한 번 전설을 썼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소재로 대중분들과 소통하려 할 땐 벅차기도 하지만, 그런 지점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밝혔다. '마약왕'은 실제 마약유통사건들을 모티브로 제작된 만큼 강한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생겼다는 송강호다.

"하지만 마약왕이라고 강렬하게 나온 타이틀이 영화의 본질은 아니라고 봐요. 마약을 소재로 했지만 이 영화는 비뚤어진 욕망, 집착, 파멸, 한 사람의 굴곡진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마약 세계를 해부하는 건 아니거든요."

일부 적나라한 묘사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붙기도 했지만, 격동의 드라마를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장치였다는 설명이다. 이두삼이 약물에 취하는 모습 등은 경험한 바가 없어 연기하는 데에도 고충이 따랐다고.

"실제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기하려니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더라고요. 그게 또 실감이 나야 하니까. 기술적으로 참 어려운 지점이었어요. 참고할 만한 것도 전무하죠. 활자화된 자료는 있지만 큰 도움은 안 됐어요. 배우는 이걸 체화해서 표현을 해야 하니 딜레마가 있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지난 10년간 정의로운 얼굴로, 소시민의 표정으로 관객들을 웃기고 울렸다. '넘버3',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를 사랑하는 팬들이라면 마약왕 송강호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분명 반가울 테다. 송강호 역시 과거의 모습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어 즐거웠다고 한다.

"'택시운전사'가 소시민의 모습이라 정반대에 있는 인물을 연기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을 너무 좋아하고, 간결하면서도 파워 넘치는 연출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때마침 작업을 하게 됐어요. 소재가 무섭긴 하지만 새로운 모습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관객분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촬영장에선 정말 신났고, 저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캐릭터가 다혈질적인 구석도 있지만 시원하고 호탕하기 때문에 즐겁게 작업했습니다."

'관상'으로 호흡했던 조정석과의 재회도 반가웠다. 송강호는 "'관상' 때부터 조정석 씨와는 이상하게 친형제처럼 즐거웠다"며 "이번에는 대치하는 캐릭터인데, 그게 또 재밌더라. 촬영하면서도 '이 친구 참 잘한다' 느꼈다"고 촬영 후일담을 전했다.

영화 후반부 이두삼의 방백 장면은 '마약왕'의 압권으로 꼽힌다. 서사가 인물이 아닌 사건 위주로 전개되는 만큼 '승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는 송강호. 연기의 밀도감을 끌어올리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인물의 내적인 고통과 비뚤어진 집착이 뒤엉켜서 덕지덕지 붙어있는 느낌. 그 장면만 보면 꼭 연극을 보는 것 같죠. 원래는 대사도 두 마디 더 있었어요. 그게 양식적으로, 멋으로 보여드리려는 게 아니라 이두삼의 외로움과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장면이거든요. 그래서 아주 길게 찍었는데 조금 압축(편집)이 됐더라고요."

올해 가장 경쟁이 치열한 연말 극장가 속 '마약왕'의 흥행을 바라지만, 다양한 한국영화가 선전하는 현상이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송강호. 그는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점칠 수도 없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말과 함께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촬영장에서의 책임감을 전했다.

"원하는 작품, 원하는 사람들과의 작업이 제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절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고. 조율을 할 수 없는 직업인 것 같아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대로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은데… 요즘 촬영장에선 제가 항상 선배예요. 저보다 연배 있으신 분들이 간혹 계시지만 1순위에서 2순위 정도는 되거든요. 그만큼 책임감이 커지고. 이런 것들이 제게는 조금 각성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