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의 조성길 대사대리가 지난해 11월 초부터 공관을 이탈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미 조성길이 이탈리아를 떠났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조성길이 제3국으로 망명했을 경우 다른 서방국가를 포함해 한국에 들어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성길의 잠적 소식이 다 알려진 상황에서 만약 그가 아직까지 이탈리아에 있다면 북한과 외교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따라서 그가 한국이 아니라도 이미 북미나 다른 유럽국가 등 제3의 서방국가에 도착해 있을 수 있다.
정보당국은 특정 국가가 조 대사대리의 망명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도록 하는 신변보호요청을 받아들였다면 이탈리아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외교부 관계자는 3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조성길로부터 어떤 망명요청도 받은 것이 없다”고 했다.
조성길은 전날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밝힌 바대로 4명이 근무하는 북한의 이탈리아 공관의 대사대리로 일했다. 2015년 5월에 3등 서기관으로 부임했다가 1등 서기관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기 만료에 앞서 11월 초에 조성길은 부인과 함께 공관을 이탈해서 잠적한 것으로 파악됐다.
1975년생으로 44세인 조성길은 북한 외교관 가문 출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통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장인인 리도섭은 전 태국 주재 북한대사와 외무성 의례(우리의 '의전')국장을 지냈다. 부친도 북한 외무성 국장 출신이라고 한다. 일부 언론에서 조성길의 부친이 조연준 노동당 검열위원장이라는 주장을 보도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조성길의 잠적으로 북한은 보위부 해외반탐국 요원과 외무성 자체 검열국 요원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파견했을 것이다. 보위부 해외반탐국은 조성길을 체포할 권한도 갖고 있으며, 이탈리아 정부도 이를 승인하게 된다. 외무성 검열국은 공관을 검열하면서 내부 소요 등을 단속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다만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조직지도부가 이탈리아에 파견됐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북한에서 중앙당 서기실은 물론 총정치국과 인민무력부, 국가보위부, 인민보안부를 망라해 사찰하는조직지도부 검열부가 해외로 파견되는 일은 없다고 한다. 대북소식통은 “국가기밀을 상세히 알고 있는 조직지도부가 해외로 파견되는 일은 없다”며 “혹시라도 해외에서 망명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조성길이 ‘김정은 일가’의 사치품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일부 보도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북소식통은 “김정은 일가의 사치품은 당 재정경리부에서 조용히 외국에 나가서 밀수하지 공식 파견된 외교관이 그런 일을 직접 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외교관이 은밀히 본국에서 파견된 재정경리부 직원에게 사치품을 밀수할 루트를 알려줄 수는 있다.
조성길의 잠적으로 북한 당국이 그의 행적을 쫓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겠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격노해 ‘놀가지 색출’ 지령을 내렸을 가능성도 낮아보인다. 대북소식통은 “‘놀가지’는 ‘노루라’는 말로 잘 뛴다고 해서 북한에서 탈북자를 가리키는 말”이라면서 “북한에서 중국, 러시아 대사가 망명했다면 비상이 걸릴지 몰라도 이탈리아 서기관 정도라면 조용히 마무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주 이탈리아 북한대사에 대해서는 2018년 11월20일부터 김천으로 교체됐다고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관계자가 밝혔다고 연합뉴스가 보도됐다. 조성길은 2017년 10월9일부터 대사대리를 맡고 있다가 이번에 교체된 것이다.
조성길의 행적과 관련해 정보당국은 “한국정부에 연락을 취해온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조성길이 이미 한국에 왔다고 해도 현재 대화와 교류가 시작되고 있는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정부는 비밀에 붙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가 작년 11월 부인과 함께 잠적했다. 사진은 조 대사대리가 작년 3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한 문화행사에 참석해 이탈리아 인사들과 함께한 모습./로마 APㆍ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