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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설립 50주년…무엇을 남겼나

2019-01-13 11:02 | 조우현 기자 | sweetwork@mediapen.com
[미디어펜=조우현 기자]1969년 1월 13일, 훗날 한국경제를 견인하게 될 삼성전자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삼성은 설탕과 모직에서 출발해 비료·전자·석유화학·조선·정밀기계·항공공업·반도체·컴퓨터·유전공학 등 고도화 과정을 밟아온 우리나라 산업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특히 전자산업에 진출한 삼성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양질의 전자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전자업계 간 선의의 경쟁이 이루어진 덕분이다. 사실상 한국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사업 역시 삼성전자의 작품이다.

당시 전자 산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은 “사업성을 검토해본 결과, 전자산업이야말로 기술·노동력·부가가치, 내수와 수출전망 등 어느 모로 보나 우리나라의 경제단계에 꼭 알맞은 산업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1960년대의 전자산업은 외제부품을 수입해 그것을 조립하는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이 회장은 당시 전자 산업에 대해 “품질도 조악했고, 가격도 엄청나게 비쌌다”며 “흑백텔레비전 값도 웬만한 봉급생활자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비싼 수준이었다”고 진단했다.

1976년 삼성그룹 전산실 개장식에서 설비를 둘러보는 이병철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에 이 회장은 전자산업에 진출해 국내의 전자제품 ‘대중화’를 촉진시키고, 수출전략상품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이 회장의 포부와 달리, 그의 목표에 대한 국내 여론은 좋지 않았다. 삼성이 진출하면 한국의 전자 업계는 망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기존 업계는 물론 정치권까지 동원돼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에 대한 저지운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실제로 삼성보다 10년 앞서 금성사를 설립해 선풍기·냉장고·텔레비전·에어컨을 생산하던 구인회 회장이 “우리도 앞으로 전자산업을 하려고 하네”라고 이야기한 이병철 회장에게 “남으니까 하려고 하지!”라며 벌컥 화를 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물론 이 회장은 현실에 굴하지 않았다. 여론에 힘입어 정부의 허가 절차가 지지부진했지만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자산업의 장래성을 설명하고, “이것이 국가적 사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박 전 대통령 역시 이 회장의 뜻에 공감해 전자산업 전반에 대한 개방지시를 내린다.

1969년 12월 1일 제 6회 수출의 날.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수여 받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 /사진=호암자전 제공


그렇게 설립된 삼성전자는 발족 9년만인 1978년, 흑백텔레비전 2백만 대를 생산해 일본 마쓰시타전기를 앞서는 기염을 토한다. 또 연간 생산에서 세계 최고 기록을 수립했고, 1981년 5월에는 다시 1000만대를 돌파했다.

이후 1984년 3월에는 컬러텔레비전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5백만 대 생산을 이뤄냈다. 당시에는 컬러텔레비전 보급이 금지돼 있었지만, 뒤늦게나마 정부는 1980년 말 컬러텔레비전의 시판과 방송을 허락하게 된다.

설립 첫해 3700만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컬러텔레비전을 생산한 1984년 매출 1조3516억 원을 기록했다. 10년 후인 1994년에는 11조5180억 원을 기록했고, 이 해 삼성전자는 업계 2위와의 매출 격차를 2배 이상 벌리며 전자업계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후 2004년(57조6323억원)에는 처음으로 매출 50조원대 이상을 기록했고, 지난 2010년(112조2495억원)에는 100조 원 고지를 넘어섰다. 2017년에는 161조9150억 원으로 역대 최고의 매출을 보였다.  

신입사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 /사진=호암재단 제공


그리고 설립 50주년이 흐른 지금, 삼성전자가 한국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분명해졌다.

이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을 통해 “삼성의 참여가 한국의 전자산업에 어떤 자극과 활력을 주게 됐는지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삼성전자의 출범에 앞서 예견한 대로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수출전략산업의 주종의 하나가 됐다”고 자부했다.

또 “물가의 계속적인 상승 속에서도 유독 전자제품만이 해마다 그 값이 오히려 떨어질 정도로 선의의 경쟁을 했다”고 강조했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 원장은 “우리나라의 전자제품은 내세울만한 것이 없었기에 일본의 제품을 최고로 꼽았고, 이는 고소득층 전유물이었다”며 “삼성이 전자산업에 진출한 이후에야 비로소 모든 국민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양질의 전자제품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기업 간의 경쟁이 결국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격차 없이 향상시킨 것”이라며 “삼성전자 소비자들의 꾸준한 선택을 받아 거대기업으로 성장했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돼 명실상부 한국경제를 이끄는 중추가 됐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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