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경제 정치 연예 스포츠

[우리금융지주 출범-下] 두 번째 지주사 출범까지 고난 연속

2019-01-16 17:08 | 박유진 기자 | rorisang@naver.com
'120년의 역사는 고객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의 금융 역사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신년사 발언이다. 지난 14일 우리은행은 지주사 전환 채비를 마친 뒤 우리금융지주로 첫 출범식을 가졌다. 1899년 ‘대한천일은행’이라는 이름 하에 설립된 지 120년 만에 이룬 성과다. 본지는 우리금융지주의 지주사 출범 이전까지 약 120년의 역사를 집중 살펴봤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박유진 기자] 2001년 부실은행을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첫 출범한 '우리금융지주'의 지주사 경영은 순탄치 않았다. 기존에 관계가 없던 여러 개의 은행이 자회사 형태로 합쳐지다보니 지주사와 자회사간 마찰이 지속됐다.

출범 전부터 노사 갈등 이어져

2001년 3월 말 한빛은행 노조는 본점 앰블럼 위에 지주사 간판이 세워지는 것에 반발해 지주사 간판을 부수는 행동을 보였다. 23층 꼭대기층에 있던 은행장과 부행장실을 22층으로 옮기는 대신 회장실을 설치하기로 한 것도 반대해 마칠이 일기도 했다.

4월 2일 첫 출범식을 가진 뒤에도 잡음은 끊이질 않았다. 지주사 전환의 첫걸음인 IT 통합 작업을 지주사에서 서두르려 하자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등 개별은행 노조는 크게 반발했다. IT 통합 작업은 '기능 재편' 움직임이라 노사정 합의에 위반된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결국 IT 통합 작업의 경우 연말이 되어서야 진행됐지만 또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글로벌 경영컨설팅 기관 A.T커니사의 컨설팅 결과가 발표되면서부터다. 2002년 4월 2일 A.T커니사는 우리금융 은행 부문 기능재편과 관련해 한빛, 경남, 광주 3개 은행을 통합하고 경남과 광주은행은 각각 지역본부체제로 전환하는 게 좋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는 은행과 지주사가 공동으로 컨설팅을 의뢰하면서 진행된 결과다.

당시 강신철 경남은행장과 엄종대 광주은행장은 통합 컨설팅 방안 수용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뒤 노조는 각각 합병 저지와 집회를 이어갔다. 이후 지주사가 은행들에 법적 조치를 통보하면서 협상이 진척됐고, 윤병철 당시 우리금융 회장이 경남과 광주은행의 법인격과 브랜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전산과 신용카드 사업 등만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하면서 기능재편이 완료됐다.

회장님보다 무서운 예금보험공사

우리금융의 경우 공적자금으로 탄생한 지주사라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1년 출범 당시 예금보험공사는 우리금융 지분의 100%를 들고 있어 그 권한이 막강했다.

예보는 우리금융으로부터 분기별로 정해진 실적을 이행하지 못하면 임원 해임과 직무정지 등의 제재를 가한다는 경영정상화이행각서(MOU)를 받아내 같은 해 평화은행이 퇴출되기도 했다. 당시 평화은행은 고려산업개발 부도 등에 따라 부실이 증가해 MOU 내용을 이행하지 못했고, 직원 감축과 점포 폐쇄 등에 들어섰다. 이후 추가로 적자 사태를 빚어 한빛은행에 흡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2004년 7월에는 우리금융이 MOU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면서 경고 조치를 받았다. 2005년에는 우리금융 임직원에 부여된 스톡옵션이 과도하다고 지적하면서 결국 황영기 당시 우리금융 회장을 포함해 임직원이 스톡옵션 반납을 선언했다. 이는 흑자 달성과 최대 실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지속돼 우리금융 내부에서 반발이 일기도 했다.

2006년 8월 우리은행 노조는 '경영정상화'를 이유로 예보와 맺고 있는 경영이행각서(MOU)에 대한 개선과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이후에도 징계와 임금 삭감 등이 반복됐다.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도 예보는 우리금융의 회장과 행장 겸직 구도를 정해주는 등 인사권에도 개입했다.

인수합병 수시로 기웃…LG카드·삼성생명 고배 마시기도

지주사 전환 이후 우리금융은 자회사 설립을 비롯해 국내에 크고 작은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방카슈랑스 사업이 국내에도 도입된다는 소식에 삼성생명과 방카슈랑스 합작사 설립을 위한 투자계약을 진행하기도 했고, 대형 매물인 LG카드 입찰전에도 뛰어들 것을 선언하기도 했다.

삼성생명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우리금융의 지분 3%를 인수하는 안건이 논의됐지만 2004년 양사의 합작사 설립방안이 취소되면서 전격 무산됐다. LG카드의 인수 건의 경우 대주주인 예보가 우리금융에 입찰 반대 의사를 개진하면서 결국 본입찰전에는 나서지도 못했다.

이 외에 증권사로는 LG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 등의 매물을 검토했고, 2004년 LG증권을 인수하는데 성공해 2005년 우리증권과 합병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늘어난 덩치에 토종자본 기다려…매각 지연·불발 반복

우리금융의 가장 중요한 숙제는 '민영화'였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2001년 지주사 첫 출범 당시 정부는 공적자금 회수 차원에서 경영권에 프리미엄을 붙여 일괄 매각하는 방식을 계획했다. 2003년까지 예보 지분을 50% 이내로 줄이고 잔여지분을 2~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매각하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경영정상화와 M&A로 덩치가 커진 우리금융을 살 수 있는 대상자를 찾기란 힘들었다.  그렇다고 제일은행이나 외환은행처럼 외국계에 지분을 넘겼다가는 투기자본에 매각된다는 책임론도 피할 수 없어 우리금융 내부나 정부 모두 고민이 컸던 상황이다.

결국 우리금융은 2010년 이전까지 네 차례 매각이 지연되고 불발되는 고초를 겪었다. 이후 정부가 지방은행을 별도로 매각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과점주주 형태로 지분을 쪼개 팔는 방안을 계획해 2016년 민영화에 성공하게 됐다. 

민영화 이후 우리은행은 우리카드와 우리종합금융, 우리FIS, 우리프라이빗에쿼티자산운용 등을 자회사로 편입해 금융지주사로서의 재도약을 기다렸다. 이후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지주사 전환을 승인받아 올해 1월 14일 지주사로서 공식 출범하게 됐다.

다음은 우리금융지주 첫 출범 시기부터 민영화 이전까지의 일지.


▲ 2001년 3월 23일 = 금융감독위원회 금융지주회사법 규정에 따라 우리금융 설립 인가.

▲ 2001년 3월 30일 = 우리금융지주 한빛은행에 둥지 틀면서 한빛 노조와 충돌. 기존 한빛은행 앰블럼 위에 지주사 간판 세워지고 한빛 측 은행장과 부행장실 꼭대기층인 23층에서 22층으로 내려가면서 기싸움.

▲ 2001년 4월 2일 = 출범식 치르고 업무 개시.

▲ 2001년 6월 9일 = 그룹 출범에 따라 자동화기기, 인터넷, 텔레뱅킹 통해서는 4개 은행간 수수료 면제.

▲ 2001년 6월 11일 = 제26차 노사정위원회, 지주사 통합의 시발점인 IT 통합 작업을 추진하려 회의 열었지만 결론 못 짓고 해산. 노조는 IT 통합 작업은 기능 재편 움직임으로 노사정 합의에 위배된다며 강력히 반발.

▲ 2001년 6월 14일 = 자회사인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노조, 지주사 추진 IT 통합에 연말까지 미참여하겠다고 선언.

▲ 2001년 6월 20일 = 자회사였던 평화은행 고려산업개발 부도 등에 따라 부실 증가해 직원 200여명 감원 예고. 부실로 인해 1분기에 이어 6월 말에도 .



▲ 2001년 7월 2일 = 한빛은행 이사회 개최한 뒤 예보와 우리금융의 MOU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이견 보인 뒤 조건부 승인 의결.

▲ 2001년 7월 2일 = 평화은행은 직원 200명을 감원하고 점포 10개 폐쇄 단행. MOU에 따라 구조조정 발표. 상반기중 1인당 영업이익 2억원을 달성해야 했지만 1분기에 600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경영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결국 구조조정.

▲ 2001년 7월 4일 = 경남은행 노조, 예보-우리금융 MOU 소식에 반발해 기자회견 개최. 지난해 12월 노사가 약속한 ‘내년 6월까지 경영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합의문 내용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경영권 침해임을 강조. 미철회 시 향후 지주사 방침에 따르지 않고 규탄대회, 총파업 등도 불사한다고 선언. 경남은행 경영진들도 성명 발표.

▲ 2001년 7월 5일 = 광주은행 대강당에서 치루기로 한 기업설명회(IR)가 광주은행 노조의 저지에 따라 무산. 6일 예정돼 있던 경남은행 IR도 노조 측이 원천봉쇄하겠다고 밝히면서 훗날 무산.

▲ 2001년 7월 6일 = 코스닥위원회는 ‘제14차 코스닥위원회’를 통해 평화은행의 ‘외환리스에 대한 등록취소’ 결정.

▲ 2001년 7월 7일 = 평화은행은 월간 거래량 1000주 미만이 6개월간 지속되는 등 거래실적이 부진하고 자본전액 잠식 등이 지속돼 외환리스에 대한 등록이 취소됨.

▲ 2001년 7월 11일 =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노조 우리금융 앞에서 MOU 체결 반대 집회 개최.

▲ 2001년 7월 12일 = 한빛은행 이사회 열고 ‘경영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별도 합의서 작성 통해 우리금융-한빛 MOU 체결 승인.

▲ 2001년 7월 31일 = 광주, 경남은행 이사회 열고 한빛과 같은 합의서 작성 통해 MOU 체결에 합의. IT 통합 작업에 가속도.

▲ 2001년 8월 31일 = 윤병철 우리금융 회장 간담회 통해 2003년 상반기 중 우리금융 증권거래소에 상장 완료하고 그해 하반기 중 공적자금 상환해 민영화 시기 1년 이상 앞당기겠다고 선언. 9월 중 전산분야(IT 자회사), 11월에는 자산관리회사(AMC), 연내에 독립신용카드법인 설립 계획 공언.

▲ 2001년 9월 1일 = 민간주도의 최초 지주사 '신한금융지주' 출범.

▲ 2001년 9월 19일 =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정부 소유 조흥은행과 우리금융지주의 일부 지분에 대한 조기매각 방안 논의. 정부 지분 일부를 선택형 교환사채(EB·오페라본드) 발행을 통해 조기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해 매각소위에 넘겨 결정하는 계획 수립.

▲ 2001년 9월 28일 = 우리금융 IT 자회사 ‘우리금융정보시스템’ 주식회사 설립 완료. 한빛은시스템을 자회사로 편입.

▲ 2001년 10월 = MOU 이행이 어려워진 평화은행 결국 2002년에 한빛은행에 흡수합병할 것을 예고.

▲ 2001년 11월 1일 = 한국노총은 흡수합병 소식에 철회 요구, 합병 반대 투쟁 예고.

▲ 2001년 11월 15일 = 평화은행 이사회 통해 한빛은행과 합병 승인. 평화은행의 법인격을 우리금융 신용카드 자회사에 승계하는 방식으로 승인. 통합에 따라 신용카드 업무 제외한 커머셜 뱅킹 부문 한빛은행에 통합되고 부실자산은 AMC 자회사에 이전. 법인격은 우리금융 신용카드 자회사에 승계돼 신용카드 전업사가 설립.

▲ 2001년 11월 21일 = 하나은행과 제일은행의 합병 추진.

▲ 2001년 11월 31일 = 평화은행은 한빛은행에 흡수합병돼 역사속으로.

▲ 2001년 12월 1일 = 우리금융은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서 이사회 및 경영전략회의 가진 뒤 2002년 사업 계획으로 상반기에 생명보험사 신설을 목표 설정. 외국자본과 합작해 최소 자본금 300억원 규모로 설립한다는 계획. 2003년 금융권에 도입 될 방카슈랑스를 위한 준비 작업.

▲ 2001년 12월 4일 = 평화은행은 발표를 통해 은행 부문을 근로자금융사업본부로 재편할 것을 예고. 근로자본부는 정부의 근로자관련 기금과 근로자대출 업무를 전담.

▲ 2001년 12월 21일 = 우리금융자산관리 출범. 자회사 보유 1조6000억원 규모의 부실자산 처리 논의하고자 설립.

▲ 2001년 12월 28일 =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감독원) 정례회의 연 뒤 한빛-평화 분할합병과 평화은행 여신전문금융사 전환 인가. 신탁 부문 분할해 한빛에 합병하고 나머지 신용카드 부문을 전업카드회사로 전환 계획. 평화은행에서 전환되는 신용카드사는 한빛은행을 포함해 다른 자회사가 영위하고 있는 신용카드 부문을 이관받아 지주회사 내 통합 신용카드 자회사로 운영 계획.

▲ 2002년 1월 17일 = 이덕훈 한빛은행장, 3월 주주총회에서 한빛은행의 이름을 우리은행으로 바꿀 것을 예고.

▲ 2002년 1월 18일 = 정부는 경제정책조정회의 열고 공적자금 투입된 서울, 조흥, 한빛(우리금융) 은행의 경영을 조기에 정상화한 뒤 지분매각 통해 민영화 앞당기기로 결정. 우리금융은 5~6월 경 상장할 것을 예고.

▲ 2002년 1월 18일 = 한빛과 조흥, 서울은행의 최고경영자(CEO)가 예보 동의없이 직원의 임금을 올렸다가 예보로부터 주의조치 받음. 윤병철 우리금융 회장과 이덕훈 한빛은행장은 주의조치, 위성복 조흥은행장에 대해서는 금감위에 조치 의뢰.

▲ 2002년 1월 25일 = 재정경제부, 공적자금 투입 은행 정부 지분 매각 2002년께 본격화하기로 예고. 우리금융은 내년 말까지 정부지분을 50%이내로 줄이고 잔여지분은 2~3년에 걸쳐 단계적 매각 추진. 뉴욕증시 상장도 추진.

▲ 2002년 1월 25일 = 금감위, 우리종금의 증권업 겸업 허가.

▲ 2002년 2월 4일 = 우리신용카드 출범.

▲ 2002년 3월 14일 = 한빛은행 이사회 열고 자회사인 한빛증권(상장)과 한빛투신운용(비상장)을 각각 1124억, 568억원에 매각키로 결의. 우리금융지주회사가 손자회사인 한빛증권과 한빛투신운용을 총 1692억원에 인수해 자회사로 승격시킨다는 계획 하에 추진.

▲ 2002년 3월 26일 = 광주은행은 ‘광주은행의 독자생존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실시. 한빛은행과의 통합 기능재편 논의 즉각 중단 촉구. 지역은행으로서의 생존 목소리 높여.

▲ 2002년 3월 26일 = 한빛은행의 우리은행 행명 변경 놓고 노조 반대 일자 한빛 측 공청회 개최.

▲ 2002년 3월 28일 = 우리금융, 한빛투신운용 자회사로 편입. 

▲ 2002년 4월 1일 = 윤병철 우리금융 회장 지주사 출범 1주년 맞아 기자간담회 가진 뒤 6월까지 경남·광주은행의 신용카드부문을 통합해 우리신용카드 출범하고 외국 카드사 투자 유치하겠다고 선언.

▲ 2002년 4월 2일 = AT커니사(社)는 3일 한빛은행과 경남.광주은행이 통합하고 경남.광주은행은 지역본부체제로 전환하는게 최적의 기능재편 방안이라고 발표.

▲ 2002년 4월 8일 = 강신철 경남은행장, 엄종대 광주은행장은 한빛은행 통합 컨설팅 방안 수용 반대의사를 표명. AT커니사에 수정안 제출할 것을 요구.

▲ 2002년 4월 9일 = 우리금융 증권거래소에 상장심사 청구

▲ 2002년 4월 19일 = 윤병철 우리금융 회장, 광주와 경남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 경제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등 98명 앞으로 서신 발송, '두 은행을 한빛은행과 통합하더라도 대형은행의 장점과 지역특화은행의 기능을 결합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서신.

▲ 2002년 4월 25일 = 한빛은행 상장폐지 신청. 지주사인 우리금융 상장폐지 신청에 따른 조치로 그달 27일 상장폐지 처리.

▲ 2002년 5월 16일 = 우리금융은 새 그룹 로고(CI) 마련하고 한빛은행 강당에서 CI 선포식 개최.

▲ 2002년 6월 7일 = 경남·광주은행 노조는 우리금융과의 협상중단 선언. 통합과 일부 기능재편에 대해 대화 단절 선언하고 독자생존 예고.

▲ 2002년 5월 20일 = 한빛은행, 우리은행으로 사명 변경.

▲ 2002년 5월 31일 = 경남은행 노조는 마산역에서 강제 합병 저지 및 지역경제 사수 위한 '영·호남 금융노동자 총궐기대회' 개최.

▲ 2002년 6월 1일 = 우리금융의 공모주 경쟁률 최종 23:1 기록. 당초 6:1이었던 수요예측치를 크게 웃도는 수치.

▲ 2002년 6월 4일 = 우리금융은 우리은행과 경남, 광주은행 통합 지연 시 해당 은행들에 법적 조치 통보.

▲ 2002년 6월 14일 = 윤병철 우리금융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경남, 광주은행의 법인격과 브랜드 그대로 유지한 채 전산 등만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힘.

▲ 2002년 6월 24일 = 우리금융 상장 첫날. 시초가 6400원으로 확정 후 장 개시 후 6700원에 거래.

▲ 2002년 6월 26일 = 우리금융 상장 이틀만에 공모가 이하로 하락. 주간사 증권사들이 시장조성에 나서기로.

▲ 2002년 7월 2일 = 우리금융, 은행연합회에서 광주, 경남, 한빛은행 등 자회사 기능재편안 발표. 광주, 경남은행의 법인격 유지키로 합의. 자회사인 광주, 경남은행은 IT와 신용카드 부문을 통합하는 대신 독립 법인격을 유지키로 결정.

▲ 2002년 7월 26일 = 금감위는 정례회의 열고 우리금융지주의 우리증권 자회사 편입에 대한 예비인가안 의결.

▲ 2002년 8월 30일 = 금감위는 우리금융의 우리증권 자회사 편입을 승인.

▲ 2002년 9월 11~12일 = 우리금융은 광주은행 본점서 광주, 경남, 우리 3개 자회사 기능 재편 위한 ‘3차 기능재편 추진위원회’를 개최.

▲ 2002년 12월 17일 = 우리금융은 17일 외자유치를 통한 대우증권 인수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공시.

▲ 2003년 1월 2일 = 우리금융은 경남과 광주은행의 전산업무를 그룹 내 IT(정보기술)서비스 자회사인 우리금융정보시스템으로부터 아웃소싱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

▲ 2003년 1월 6일 = 금감원은 광주은행이 카드사업부문을 우리금융지주 자회사인 우리카드에 양도하기 위한 예비인가를 신청했다고 발표. 

▲ 2003년 1월 7일 = 우리금융은 현대증권 인수를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공시.

▲ 2003년 1월 13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우리신용카드가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광주은행 신용카드 사업 영업양수의 건을 원안대로 의결했다고 공시.

▲ 2003년 2월 11일 = 우리금융은 우리은행의 미국 현지법인인 우리아메리카은행이 팬아시아은행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

▲ 2003년 2월 14일 = 예보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정부의 우리금융 보유지분을 올 해 말까지 50%미만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발표. 국내외 전략적투자가와 기관투자가에 대한 매각과 해외주식예탁증서(DR)발행을 병행할 것도 약속.

▲ 2003년 2월 24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경남, 광주은행의 IT인력을 그룹내 IT자회사인 우리금융 정보시스템으로 이전.

▲ 2003년 2월 24일 = 우리은행에 전산장애 발생.

▲ 2003년 3월 7일 = 우리은행 전산시스템 UPS사고와 관련해 우리금융정보시스템 표삼수 사장을 비롯한 회사 경영진 일괄 사표.

▲ 2003년 3월 18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 우리신용카드가 4318억원 규모의 신용카드 채권을 입찰을 통해 일괄매각키로 했다고 공시.

▲ 2003년 3월 28일 = 우리금융은 방카슈랑스 사업을 위해 삼성생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공개.

▲ 2003년 5월 7일 = 우리금융의 뉴욕증시 상장이 주가침체 등으로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연기.

▲ 2003년 5월 20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우리종합금융의 매각을 검토했지만 이를 철회하고 우리은행에 피흡수 합병시킨다고 공시. 우리종금 노조는 고용 승계에 대한 불만 제기.

▲ 2003년 5월 29일 = 우리금융은 우리은행이 우리종금을 흡수합병하기 위한 합병추진에 관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고 공시. 합의서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우리종금의 자산, 부채 및권리의무를 포괄승계하고 인원 승계는 별도 협의하는 방안.

▲ 2003년 6월 3일 = 우리은행은 모스크바에 사무소 개설.

▲ 2003년 7월 2일 = 우리금융은 주주총회를 열어 우리은행과 우리종금을 1:0.0355의 비율로 합병하는 것을 승인.

▲ 2003년 7월 16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경남은행은 카드사업 부문의 제3자 매각을 추진해 왔으나 매각조건 등이 맞지않아 매각진행을 철회했다고 공시.

▲ 2003년 8월 29일 = 우리카드 연체율 10% 기준 달성 못해 적기시정조치 대상에 오른 사실이 금감원 점검 결과 뒤늦게 밝혀짐.

▲ 2003년 9월 29일 = 우리금융 미국주식예탁증서(ADS) 등록,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

▲ 2003년 10월 2일 = 우리금융은 우리카드 경영진에 대해 연체율 사태 등을 근거로 문책.

▲ 2003년 10월 9일 = 우리신용카드는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민종구 우리은행 개인고객본부장을 신임 사장에 선임. 카드사 조기 정상화, 조직 쇄신 차원에서 교체 실시.

▲ 2003년 10월 12일 = 우리금융은 우리카드 처리와 관련, 우리은행과의 재합병(카드사들 분사없이 은행에 흡수합병)을 주장한 우리은행 임원에 대해 중징계 결정.

▲ 2003년 10월 13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우리은행과 체결한 경영계획이행관리약정서(MOU)에 따라 지난 2분기 MOU 이행실적을 점검한 결과, 부적절한 회계처리 등이 발견됨에 따라 우리은행 이덕훈 행장에 대해 엄중주의 경고조치를 요구했다고 공시.

▲ 2003년 10월 14일 = 우리은행은 금감원에 부실채권 매각관련 회계처리 자료를 제출, 부적절한 회계처리로 1983억원의 순이익을 과소계상했다는 우리금융 지적에 대해 금감원의 유권해석을 의뢰하기로 결정.

▲ 2003년 11월 6일 = 금감원 자산유동화회사(SPC) 회계처리 방식과 관련해 ‘SPC에 대한 회계법인실사를 거쳐 우리은행의 상반기 결산보고서를 수정하라’는 유권해석 실시.

▲ 2003년 11월 25일 =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예보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금융 지분 매각을 위해 국내외 주간사로 동원증권과 삼성증권, 리먼브라더스, CSFB 등 4곳을 선정. 공자위는 내년 초 예보가 갖고 있는 우리금융 주식 86.7% 가운데 일부를 해외주식예탁증서로 전환해 해외 투자자에게 넘길 것을 예고.

▲ 2003년 11월 26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우리카드 증자설 및 우리카드와 우리은행과의 합병설'에 대한 조회공시 답변을 실시. 우리카드에 대한 증자규모, 방식, 시기 등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나 확정된 것은 없다고 공시. 또 우리은행과 우리카드의 합병, 우리카드 지분 매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

▲ 2003년 12월 12일 = 우리금융은 우리카드의 정상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4번째 이사회를 열고 우리은행과의 합병을 의결키로 결정. 두 회사 합병 이후에도 카드 부문은 독립사업본부 형태로 운영, 우리카드 브랜드도 지속 사용. 

▲ 2004년 1월 9일 = 소공동 롯데호텔서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우리금융지주 인수 위해 3조 규모의 연합 컨소시엄(사모펀드) 조성하겠다고 밝힘.

▲ 2004년 1월 14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우리카드를 우리은행과 광주은행에 분할합병 시키기로 결정. 종전 광주은행에서 양수받은 카드부문을 광주은행에 분할합병하는 방식으로 되돌려주고 나머지 자산과 부채 등 권리의무 일체를 우리은행으로 흡수합병키로 계획.

▲ 2004년 1월 16일 = 우리금융지주의 지분 3%를 삼성생명에 매각하는 방안이 정부 차원에서 공식 검토.

▲ 2004년 1월 16일 = ‘이헌재 펀드’는 3월 말부터 우리금융 인수협상 나선다고 밝힘. 2003년 12월 이헌재 당시 부총리는 우리금융지주 인수 위해 3조 규모의 사모펀드 조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음.

▲ 2004년 1월 30일 = 우리금융 노조 설립추진위원회는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에 노조 설립 신청서 접수

▲ 2004년 2월 5일 = 우리금융은 자회사인 우리은행이 우리신용카드를 흡수합병키로 결의했다고 공시. 합병비율은 1:0.3581.

▲ 2004년 2월 10일 = 이헌재 전 장관 2000년 8월 물러난지 3년 6개월만에 경제부총리로 입성해 ‘이헌재 펀드’ 사태 종지부.

▲ 2004년 2월 24일 = 우리금융은 삼성생명과 방카슈랑스 합작사 설립을 위한 투자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고 공시.

▲ 2004년 2월 27일 = 금감위는 우리은행과 우리카드의 합병, 광주은행과 우리카드의 분할합병을 각각 예비인가. 광주은행과 우리카드의 분할합병 비율은 1:0, 우리은행과 우리카드의 합병비율은 1:0.3581.

▲ 2004년 2월 28일 = 우리금융 회장 후보 공모에 윤증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최명주 한국IBM 금융섹터 부사장, 최연종 전 한국은행 부총재 등 15명 지원서 접수.

▲ 2004년 3월 2일 = 우리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 후보자 면접 착수

▲ 2004년 3월 4일 = 우리금융 차기 회장 유력 후보였던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삼성증권에 사표 제출. 이에 따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는 산업자본인 삼성그룹 출신의 황 사장 회장 선임 부적절하다고 성명 발표.

▲ 2004년 3월 5일 = 광주, 경남 노조는 성명을 내고 우리금융 회장 선임 및 지주회사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 ‘신임 회장의 행장 겸임’ 반대 표명.

▲ 2004년 3월 7일 = 우리금융은 차기 후보로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 단독 추대.

▲ 2004년 3월 8일 = 황영기 내정자는 1년간 회장-은행장을 겸직키로 결정.

▲ 2004년 3얼 9일 = 우리금융은 광주은행 신임행장 후보에 정태석 교보증권 사장, 경남은행장 후보에 한미캐피탈 정경득 사장을 단독 추천.

▲ 2004년 3월 10일 = 노조와 행추위가 행장 내정자에 대해 반발하면서 황영기 내정자가 직접 노조와 면담 실시.

▲ 2004년 3월 12일 = 우리금융은 이사회를 열고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을 회장으로 선임.

▲ 2004년 3월 18일 =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에 이종휘 부행장과 민종구 우리신용카드 사장 추천.

▲ 2004년 3월 24일 = 광주은행은 정기주주총회 열고 정태석 교보증권 사장 선임 발표.

▲ 2004년 3월 25일 = 경남은행장에 정경득 한미캐피탈 사장 선임.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논평 통해 "황영기씨는 97년 1월부터 99년 7월까지 삼성생명 전무로 재직하면서 이재용씨에게 부당이득 제공, 삼성자동차 부당지원 등으로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문책경고를 받았다"며 "이에 대한 형법상 배임죄의 공소시효가 아직 남아있는 만큼 당시 삼성생명 이사들과 함께 황 행장을 고발하겠다"고 주장.

▲ 2004년 3월 25일 = 우리금융은 LG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중 1곳을 인수하겠다고 공식화. 삼성생명에 대한 지분 매각 및 합작사 설립방안에 대해서는 재검토 의사를 표명.

▲ 2004년 4월 4일 = 우리금융의 민영화 시인이 2005년 3월에서 연기됨.

▲ 2004년 4월 6일 = 우리금융은 6일 LG투자증권 인수와 관련 지난 2일 매각 주관은행인 산업은행에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발표.

▲ 2004년 4월 8일 = 우리카드 합병작업 마무리되던 중 카드 직원 2명의 400억 횡령 도주 사건 발생. 이들은 2003년 12월부터 2004년 3월까지 4개월간 400억원을 횡령했고 선물옵션 등의 투자금으로 모두 소진한 뒤 해외로 도주.

▲ 2004년 4월 28일 = 우리금융과 우리증권은 이사회를 각각 열고 지주사인 우리금융이 자회사인 우리증권의 지분을 100% 인수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

▲ 2004년 4월 29일 = 민종구 우리은행 수석부원장은 우리카드 대표이사 재직 당시 발생한 400억 횡령 사건과 관련해 도의적 책임 통감하고 사퇴.

▲ 2004년 5월 6일 = 우리금융은 6월 말 예정된 DR(주식예탁증서) 및 신주발행을 검토. 한투, 대투 등 증권사 인수 비은행 업무 확대 위한 신규 자금으로 사용하고자 결정.

▲ 2004년 5월 7일 = LG투자증권 인수 관련 우리금융지주, 미래에셋컨소시엄, 서울증권, 대만계 증권사 등 4곳은 매각 주간사인 KDB산업은행에 입찰제안서를 제출.

▲ 2004년 5월 14일 = KDB산업은행은 LG증권 우선협상대상자에 우리금융지주와 대만 유안타증권을 복수 선정.

▲ 2004년 5월 18일 = 우리금융, 임시주총 열고 정관 변경.

▲ 2004년 5월 18일 = 우리금융, 삼성생명과 합작사 설립 않기로 하면서 3% 지분 매각 건도 함께 무산.

▲ 2004년 5월 20일 = 민유성 우리금융 재무담당 부회장 사의 표명.

▲ 2004년 6월 20일 = 예보는 MOU 이행에 따른 목표치 미이행과 관련해 우리금융 측에 임금인상 등 일체의 복리후생 개선 금지 조치 통보. 우리은행, 광주은행, 한투증권, 대투증권도 약정 이행 부진으로 ‘주의’ 통보.

▲ 2004년 6월 25일 = 금융감독원은 우리카드 횡령 사고와 관련 전현직 임직원 23명 문책할 것 통보.

▲ 2004년 7월 7일 = 우리금융은 LG증권 인수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 2004년 7월 21일 =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은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서 간담회 가진 뒤 민영화 일정 계획대로 2005년 3월 말까지 달성 약속. DR 발행 관련해선 하반기 예정대로 추진 의사 표명.

▲ 2004년 7월 21일 = 예금보험공사는 예금보험위원회 열고 1분기 경영이행약정(MOU)을 달성하지 못한 우리금융에 대해 관련 임직원들에 대한 인사 조치 권고 등 경고 조치를 실시.

▲ 2004년 7월 23일 = LG증권 매각전서 대만 유안타증권이 인수 포기하면서 우리금융지주가 단일 우선협상대상자로 등극.

▲ 2004년 8월 6일 = 우리금융은 그동안 불거졌던 대우증권 인수설 관련해 “타당성에 대해 검토한 적 있으나 현재 검토가 중단된 상태”라고 조회공시 답변.

▲ 2004년 8월 20일 = 우리금융, KDB산업은행에 LG투자증권 인수 관련 최종인수제안서 제출.

▲ 2004년 8월 24일 =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매각 소위원회를 열고 다음달로 예정된 우리금융 지분 15%에 대한 해외 DR 발행을 논의한 결과 이를 유보하기로 했다고 발표.

▲ 2004년 9월 9일 =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은 월례조회를 개최한 뒤 DR발행 지연에 따라 예금보험공사 보유지분 가운데 3억달러 규모를 블록세일을 통해 매각한다고 밝힘.

▲ 2004년 9월 11일 = 우리금융은 KDB산업은행과 LG투자증권 인수협상 끝에 인수 가격, 경영권 보장 방안 등에 대해 최종 합의

▲ 2004년 9월 15일 = 우리금은, LG투자증권 주식 2587만7487주를 취득하기로 이사회 결의.

▲ 2004년 9월 30일 = 우리은행은 2002년 12월부터 2400억원 들여 개발 착수한 차세대 시스템을 첫 가동.

▲ 2004년 10월 26일 = 우리금융은 LG투자증권, 우리증권과 합병하기 전 안정적 지분 확보 차원에서 LG투자증권의 지분 5.73%를 추가 매입할 것을 밝힘.

▲ 2004년 11월 4일 = 우리금융, LG증권 인수대금 마련 차 유상감자안 결의하면서 우리증권 노조는 반발. 노조는 사장실 점거하고 이사회 저지.

▲ 2004년 11월 5일 = 우리증권 노조 합병반대 찬반투표 거쳐 16일에는 파업할 것을 선언.

▲ 2004년 11월 10일 = 김효석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20명 우리금융 매각 시한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의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

▲ 2004년 11월 17일 = 예금보험공사는 뉴욕에서 우리금융 지분 매각 관련 기업설명회(IR) 진행.

▲ 2004년 12월 6일 = 우리증권 노조는 ‘유상증자 철회’와 ‘고용보장’ 외치며 파업 돌입

▲ 2004년 12월 8일 = 우리증권 노조는 LG증권 자회사 편입 승인 편법으로 이뤄졌다고 주장. 지난 11월 26일 금융감독위원회가 이 편입을 승인했으나 자회사 지분 30%이상 소유 규정과 '금융지주사 종합평가등급 2등급 이상'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

▲ 2004년 12월 24일 = 우리금융은 2975억9110만원 상당의 LG투자증권 주식 2587만7487주에 대한 취득을 마무리.

▲ 2005년 1월 3일 = 우리증권은 파업 4주 만에 우리금융과 고용안정 등이 담긴 협의안을 도출하는데 성공. 파업 철회.

▲ 2005년 1월 7일 = 우리증권은 7일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잇따라 열고 보통주 1400만주를 주당 1만1000원에 소각하는 형태의 유상감자 안건을 상정해 의결. 감자비율은 42.5%, 감자 이후 자본금은 947억8206만원, 발행주식총수는 1895만6413주로 각각 축소.

▲ 2005년 2월 2일 = LG투자증권과 우리증권은 2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합병계약서에 조인. LG증권이 우리증권을 흡수하는 형태로 4월 1일 공식 출범하기로 결정.

▲ 2005년 3월 2일 = 우리금융은 이사회 통해 황영기 25만주, 지주 임원 49명에게 163만5000주의 스톱옵션 부여키로 함.

▲ 2005년 3월 13일 = 정부와 예보, 우리금융 스톡옵션에 반발.

▲ 2005년 3월 16일 =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 결국 예보 반대에 25만주 스톡옵션 반납 선언. 이후 사외이사들도 반납 결정.

▲ 2005년 3월 28일 = 정기 주총서 임원진 스톡옵션 부여 안건 부결.

▲ 2005년 12월 1일 = 하나금융지주 출범. 국내 지주사는 우리금융, 신한금융, 동원금융 4강 체제로 개편.

▲ 2006년 1월 16일 = 재정경제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006년 공적자금 회수 기본계획'을 의결하고 예보가 보유 중인 우리금융지주 지분 77.97%(6억2845만주) 가운데 일부를 올해 안에 블록세일을 통해 매각할 뜻을 밝힘.

▲ 2006년 1월 17일 = '우리프라이빗에퀴티(PE)' 출범

▲ 2006년 1월 20일 = 우리은행 전산시스템 이상으로 창구 업무 마비.

▲ 2006년 3월 15일 = KT&G와 아이칸의 적대적 M&A 우려에 따라 우리금융은 우수 토종기업 지원하는 이른바 백기사 펀드 '토종기업혼합형펀드' 출시. 홍보 문제때문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고 받음.

▲ 2006년 8월 8일 = 우리은행 노조는 예보와 맺고 있는 경영이행각서(MOU)에 대한 개선이나 폐지가 이뤄지지 않으면 강력투쟁에 나서겠다고 시사.

▲ 2006년 9월 4일 =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위특위 전체회의에 출석. 정부 지분(77.9%) 매각과 관련, "시간을 두고 매각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언급. 2008년 3월까지로 예정된 민영화 법정시한이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 제기.

▲ 2006년 10월 18일 = 예보는 위원회를 열어 우리은행의 특별 격려금 지급과 관련 황영기 회장 등 경영진 2명에게 경고 조치. 4명은 자체 징계하도록 결정. 우리은행이 같은 해 3월27일 임직원에게 초과 성과급 474억원을 지급한 것에 이어 4월3일 특별 격려금 395억원을 추가 지급해 벌어진 일. 징계 받은 경영진은 MOU에 따라 향후 성과급의 15% 삭감 조치.

▲ 2006년 11월 7일 = 광주상공회의소, 광주은행에 대한 인수 의사와 계획 표명

▲ 2006년 11월 30일 = 국내 최초의 역외투자은행인 '홍콩우리투자은행' 탄생

▲ 2007년 1월 21일 = 우리은행이 중국 지점을 현지법인으로 전환.

▲ 2007년 1월 24일 = 우리금융은 차기 회장 인선작업에 착수. 서울 명동 본점에서 이사회를 열고 사외이사 3명과 외부전문가 3명, 예보 측 1명 등 7명으로 구성된 회장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을 선임.

▲ 2007년 1월 26일 = 예보, 우리금융의 회장-행장 겸직 지배구조 분리하기로. 다만 은행 이사회 의장은 겸직키로 결정.

▲ 2007년 1월 30일 = 우리금융 차기 회장 후보 공모 시작.

▲ 2007년 2월 1일 = 우리은행 노조 우리금융 회장 선임 관련 '낙하산 인사 반대' 성명서 배포

▲ 2007년 2월 23일 = 우리은행 노조 행장 인선 관련 '낙하산 인사 저지 투쟁' 돌입한 뒤 삭발식 단행.

▲ 2007년 3월 5일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노) 산하 4개 은행 노조 공동 기자회견 개최.소속 기관장들에 대한 낙하산 인사를 강행 시 파업 예고.

▲ 2007년 3월 7일 = 우리금융 차기 회장 후보에 박병원 전 재정경제부 제1차관 내정.

▲ 2007년 3월 9일 = 예보 보유중인 우리금융 지분 78% 중 28%를 시장 상황에 따라 블록세일, 공모 등의 방식으로 가능한 한 조속히 매각토록 추진. 매각시한 2008년 3월까지로 1년 연장 계획.

▲ 2007년 3월 21일 = 우리은행장 후보에 박해춘 LG카드 사장 내정

▲ 2007년 6월 21일 = 블록세일로 국내외 기관투자자에 지분 5% 매각. 예보 지분은 78%에서 73%로 변동.

▲ 2009년 11월 = 블록세일로 국내외 기관투자자에 지분 7% 매각. 예보 지분은 37%에서 66%로 변동.

▲ 2010년 4월 9일 = 블록세일로 국내외 기관투자자에 지분 9% 매각. 예보 지분은 66%에서 56.97%로 변동.

▲ 2010년 10월 29일 = 첫 매각 공고

▲ 2010년 12월 17일 = 매각 불발에 민영화 작업 중단. 지방은행 분리 매각도 중단. 과점주주 방식 매각론 대두.

▲ 2011년 5월 18일= 2차 매각 공고

▲ 2011년 8월 17일 = 예비입찰제안서 마감 결과 유효경쟁 미달로 매각 중단. 사모투자전문회사(PEF)인 MBK파트너스와 새마을금고의 컨소시엄 한 곳만 참여의사 전달.

▲ 2012년 4월 30일 = 3차 매각공고

▲ 2012년 7월 27일 = 예비입찰자 없어 매각 중단. 유력 인수 후보자였던 KB금융지주, MBK파트너스 컨소시엄, IMM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 미참여.

▲ 2013년 6월 26일 = 4차 매각 방안 발표. 경영권과 소수지분 입찰 방식으로 변경.

▲ 2014년 11월 28일 = 인수 후보자였던 중국 안방보험만 참여하고 교보생명 불참하면서 유효경쟁 미달.

▲ 2015년 7월 21일 = 과점주주 매각 방식으로 선회. 과점주주는 특정한 지배주주는 없지만 4~10%씩 지분을 보유한 다수의 주주들로 구성되는 지배구조.

▲ 2016년 8월 24일 = 과점주주 방식으로 매각 개시.

▲ 2016년 9월 23일 = 예비입찰 마감. 총 18곳 투자자 참여.

▲ 2016년 11월 13일 = 본입찰 마감 후 7개 투자자가 29.7% 지분을 매입. 동양생명 4%, 미래에셋자산운용 3.7%, 유진자산운용·키움증권·한국투자증권·한화생명 4%, IMMPE 6%

[미디어펜=박유진 기자]
관련기사
종합 인기기사
© 미디어펜 All rights reserved.